한국, 60여년 전에 비해 餓死위험 줄어… 성장은 貧者위해서도 필요

    •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

입력 2015.11.14 03:04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기근(饑饉), 춘궁기(春窮期), 보릿고개. 적어도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들리지 않는 단어들이다. 하지만 1950년대와 1960년대엔 흔한 말이었다. 당시에는 하루 한 끼조차 먹기 어려운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오죽하면 가장 넘기 힘든 고개가 보릿고개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2015년 대한민국은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이뤘다. 6·25전쟁 직후인 1953년 우리나라의 연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66달러에 불과했다. 지난해 1인당 GDP는 약 2만8000 달러로 62년 만에 약 424배 뛰었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성장을 구가한 셈이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추진한 성장 드라이브 정책의 역할이 컸다. 식생활을 포함한 국민 생활수준도 향상됐다. 육류 등 동물성 식품 1일 평균 섭취량은 1969년 32.0g에서 2013년 323.8g으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끼니 대신에 영양 과잉을 걱정할 정도가 됐다. 경제 성장 덕분이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은 영국 출신의 앵거스 디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소비, 빈곤, 복지에 대해 연구한 공로로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는 성장과 불평등에 대한 디턴 교수의 연구를 두고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불평등이 경제 성장의 중요한 원동력이었다'는 해석이 디턴 교수의 연구를 왜곡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디턴 교수의 입장이 부유세(富裕稅)로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학 교수와 비슷하다는 시각도 있다.

시시비비를 가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여럿 있다. 성장 담론은 나쁜 것일까. 불평등은 과연 경제 성장을 촉진했을까. 사회 취약 계층의 빈곤 문제는 우리나라도 풀어야 할 숙제인데 해법은 무엇일까.

한국, 60여년 전에 비해 餓死위험 줄어
Getty Images/멀티비츠
경제 성장이 불평등을 초래하는 원인은 아니다. 경제가 성장하지 않더라도 경제적 불평등은 존재한다. 만약 경제가 성장하지 않으면 빈곤층에게 돌아가는 파이의 크기는 그대로다. 경제가 뒷걸음친다면 전체 파이가 줄어들면서, 빈곤층의 몫은 더 줄어들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여전히 빈곤층이 존재한다. 하지만 60여 년 전 빈곤층에 비해 기근과 아사(餓死)의 위협에 덜 노출돼 있다. 빈자(貧者)들을 위해서라도 경제 성장은 필요하다. 성장이 빈자의 몫도 키운다는 것을 도외시하고, 단순히 빈곤층을 상위 0.1%의 부자들과 비교하며 불평등을 거론하는 것은 난센스다.

그렇다면 불평등은 성장을 촉진했을까.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 중 하나가 북한이다. 자유와 성장보다는 분배의 평등을 외친 탓이다. 지난 60여 년에 걸쳐 대한민국 경제가 400배 넘게 성장한 것과 다르게 북한 경제는 제자리다. 국제연합(UN)에 따르면 1970년 북한의 연간 1인당 GDP는 384달러였다. 당시 대한민국의 1인당 GDP는 300달러가 안 됐다. 1970년대 초반까지 북한 사람들의 소득 수준이 대한민국보다 높았던 셈이다. 그랬던 북한의 2013년 연간 1인당 GDP는 621달러. 45년 동안 62% 증가하는 데 그쳤다. 북한처럼 평등만을 강조한 나라들의 말로는 좋지 않았다. 기존의 사회주의·공산주의 국가들이 모두 그랬다. 반면 대한민국은 평등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 빈곤에서 탈출하려고 한 덕에 지금처럼 경제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불평등이 경제 성장의 인센티브였다는 주장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를 해야 한다.

디턴 교수가 우리 사회에 던진 화두가 하나 더 있다. 빈곤 탈출에 성공한 기득권층이 아직도 빈곤이라는 수용소에 남아있는 자들을 밖으로 끌어낼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빈곤 탈출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를 현명하게 고안해야 한다. 정책을 세우고 제도를 만들려면 예산이 필요하다. 그리고 국가 예산을 배분할 때에는 정치적 선택의 문제가 발생한다. 복지 정책에 예산을 배정할 때도 마찬가지다. 선거에 큰 도움이 안 되는 빈곤층 지원과 선거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빈자들의 위대한 탈출'을 이끌어내려는 사람이라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디턴 교수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중요한 함의이다. 한국 사회는 최근 보편적 복지의 홍역을 이미 한 번 치렀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자원이 돌아가는 복지 정책이 필요하다. 단순한 경제적인 지원을 떠나 빈곤층이 스스로 일할 의지를 갖고 탈출에 성공할 수 있도록 이끄는 정책이 있어야 한다.

곧 선거철이 다가온다. 내년 4월 총선, 후년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다. 한국 경제 성장의 묘안과 진정한 복지의 의미에 대해 많은 이들이 고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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