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이 달리기라면 불평등은 몸의 피로… 불평등을 인정하되크게 확대되지 않게해야

    • 권남훈 건국대 교수

입력 2015.11.14 03:04

권남훈 건국대 교수
권남훈 건국대 교수
얼마 전까지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디턴 교수가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된 후 상황은 급변했다. 디턴 교수의 저서 '위대한 탈출'이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과 상반된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알려져 반향은 더 컸다. 그리고 이후 '위대한 탈출' 한국판이 영문판 원서와는 다르게 변경되거나 누락된 대목이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디턴 교수의 진의에 대한 공방은 현재 진행 중이다.

디턴 교수는 불평등에 대한 연구 때문에 노벨상을 받은 것이 아니다. 게다가 노벨상을 받았다고 그의 연구가 다 옳다고 봐서는 곤란하다. 피케티도 비슷한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피케티는 불평등을 실질적으로 증명한 연구 덕분에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가 불평등의 원인으로 자본의 자기 증식을 꼽은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 학자가 많다. 불평등의 해법으로 고율의 소득세를 물리거나 자본 이득세를 제시한 것을 놓고도 의견이 엇갈린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점은 디턴을 둘러싼 논란이 불평등에 대한 유익한 토론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불평등에 관한 3가지 질문을 던지려고 한다. 우선 불평등은 확대되고 있는가?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대다수 선진국을 중심으로 보면 1980년대 이후 불평등의 정도는 더 심해졌다. 반면 전 세계적으로 경제적 불평등의 정도는 줄었다. 엄청난 숫자의 중국인이 빈곤에서 탈출한 것이 원인이다. 선진국의 자본가와 지식 노동자들은 중국의 값싼 노동력 덕분에 더 많은 부를 축적했다. 반면 선진국의 단순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한국은 1990년대까지는 불평등이 줄었지만, 1997년 외환 위기를 겪은 이후 신(新)빈곤층이 생겨났다. 고령화로 노인 빈곤 문제가 커지고 있는 것도 한국 내 불평등이 심화한 원인이다.

불평등과 성장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많은 경제학자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 했지만 명확하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성장을 달리기에 비유한다면, 불평등은 몸의 피로로 볼 수 있다. 달리기를 하면 피로가 쌓이지만, 피로가 달리기의 원동력이 된다고 주장한다면 이상하다. 지나치게 피로하면 더 이상 달릴 수 없다. 요약하자면 불평등을 성장의 부산물로 인정하되, 불평등이 크게 확대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성장의 혜택에서 배제된 이들을 배려해야 한다.

앞으로 불평등에 대해 더 걱정해야 할까? 물론이다. 세계화와 기술 발전으로 노동에 대한 수요는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자본의 수익 창출 능력은 더 커지고 있다. 한국은 이미 선진국형 산업 구조로 들어섰지만,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 안전망은 아직 충분하지 못하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저출산과 고령화로 한국의 성장 엔진은 꺼져가고 있다. 불평등은 앞으로도 우리의 고민거리가 될 것이다.

정답은 없다. 불평등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불평등의 이유는 다양하고, 나라마다 상황도 다르다. 한국에는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고비용 저효율로 전락한 교육 시스템, 경직된 노동 시장, 불공정한 거래 관행, 부동산에 치우친 자산 시장 등에 대한 적극적 대응 없이는 불평등을 해결하기 어렵다. 외국 유명 학자에 기댄 논쟁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좌파든 우파든 진지한 대안을 마련해 토론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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