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에 대한 미움과 부러움이 인간 본성… 부러움이 빈곤 탈출에 필요한 에너지

    • 현진권 자유경제원 원장

입력 2015.11.14 03:04

현진권 자유경제원 원장
현진권 자유경제원 원장
세상에 자기와 똑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쌍둥이라도 성격은 확연히 다르다. 마찬가지로 개인의 소득 수준과 부의 크기도 모두 다르다. 그런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외모나 성격이 다른 것은 당연히 여기지만, 소득과 부의 차이는 사회 문제라고 생각한다. 인류 역사상 모든 사람이 경제적으로 평등한 시대는 없었다.

경제적 격차에 대한 인간의 본성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첫째는 '사촌 논 사면 배 아프다'는 속담처럼, 가진 자에 대한 미움과 질시이다. 둘째는 부자가 되고 싶다는 부러움이다. 두 가지 본성은 동시에 자리 잡고 있다.

경제적 격차에 관한 사상은 두 가지 인간 본성 중 어느 쪽을 더 중요하게 여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경제적 격차에 대한 미움을 인간의 본성으로 본 사상가가 바로 칼 마르크스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도 마르크스와 비슷한 관점에서 쓰였다.

마르크스와 피케티는 경제적 격차의 심각성을 수치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부자에 대한 미움과 질시를 끌어내려고 했다. 피케티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지난 200여 년 동안 소득 및 부의 불균형이 점점 더 심해지는 것을 연구해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인간의 본성이 부러움에 있다고 본 사상은 주류 경제학에서 많이 다뤄졌다.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탄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도 여기에 속한다. 디턴은 경제적 불균등 문제를 부의 분배가 아닌 빈곤 탈출 관점에서 접근했다. 피케티는 부자에게 최고 80%의 소득세를 매겨 분배 문제를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 방법은 빈곤층의 소득을 늘려주지는 않는다. 반면 디턴은 빈곤층이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고 부자에 대한 부러움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봤다. 부자는 미움의 대상이 아닌 셈이다. 좌승희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가 오랫동안 말해온 '불균등이 경제를 발전시킨다' 주장과 맥을 같이한다.

1960년대 한국에서는 대다수 국민이 절대 빈곤을 겪었다. 반면 지금은 경제적 격차는 더 커졌지만, 1960년대에 비해 절대 빈곤층이 거의 사라졌다. 빈곤 탈출보다 경제적 균등이 더 중요한 목표라면, 지금보다 1960년대가 더 바람직한 세상이다. 중요한 것은 경제적 격차가 아니다. 경제가 발전하고, 전체 국민들의 소득이 늘어나고, 빈곤층이 줄어드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경제적 격차가 커지더라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부자에 대한 부러움은 사람들이 더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 동기가 될 것이다.

디턴은 부자에 대한 부러움이 빈곤 탈출에 필요한 에너지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세계 곳곳에서 원조와 복지라는 이름으로 빈곤층의 탈출 본성을 억누르고 있다.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선진국의 원조를 받아도 여전히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디턴의 제안은 대북 정책에도 의미를 가진다. 대한민국과 북한의 경제적 격차만 본다면, 북한에 대해 인도적인 차원에서 경제적인 원조를 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북한은 자신들에 대한 원조를 악용했다. 경제 발전에 필요한 정치 체제 개혁은 불발됐다. 북한은 여전히 빈곤에서 해방되지 못했다.

국가의 경제발전 수준은 경제적 격차를 바라보는 주류 사상에 의해 결정된다. 한국이 선진국이 되려면 '부러움'이 경제 사상의 주류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부자에 대한 '배아픔'을 바탕으로 한 경제 사상이 더 널리 퍼지고 있다. 부자에 대한 미움과 질시를 바탕으로 한 사상은 이론 구조가 단순하고, 감성적으로 대중들을 쉽게 매혹시킨다. 반면 부러움을 중심으로 한 사상은 이해하기 어려워 대중에게 설득력이 떨어진다. 디턴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을 계기로 부자에 대한 부러움이 한국 사회에 널리 퍼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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