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 논쟁하라, 더 치열하게

입력 2015.11.14 03:04

[富의 불평등 특집 | Cover Story ] 올해 노벨 경제학상 앵거스 디턴

"부의 불평등은 성장의 원천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Deaton·70) 교수에게 가장 듣고 싶었던 얘기였다. 한마디라도 더 자세히 듣고 싶어 첫 질문으로 던졌다. 디턴 교수 역시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어떻게 보면 '흑백'을 묻는 말이었지만, 그의 답변은 상식적이고 온건했다.
[富의 불평등 특집 | Cover Story ] 올해 노벨 경제학상 앵거스 디턴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앵거스 디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10월 12일 뉴저지주 프린스턴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어린 시절 경험을 얘기하며 “인생에서는 운이 상당히 중요한데, 다른 가족의 만류에도 아버지 덕분에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이 나에겐 큰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 AP 뉴시스

"불평등 그 자체만으로는 (성장의 원천이) 아닙니다. 단서가 있습니다. 불평등은 좋은 면도 있지만 어두운 면도 있어요. 좋은 면은 사람들에게 동기(인센티브)를 준다는 겁니다. 먼저 뭔가를 이룬 사람들을 보면서 '아, 내게도 가능성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죠.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거나 혁신이 일어나 경제가 성장하면 일부는 먼저 기회를 잡지만 나머지는 뒤처집니다. 이때 생겨나는 불평등은 일종의 발전 결과로, 좋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불평등은 매우 나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데, 바로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몇몇 부자만이 이득을 보는 금권(金權)정치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는 겁니다. 아주 끔찍한 일이죠. 저는 결코 경제 불평등의 전폭적 지지자가 아닙니다. 저 역시 토마 피케티(Piketty) 파리경제대 교수가 걱정하는 것과 같은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피케티 교수와 저는 같은 것을 다른 방식으로 볼 뿐, 전혀 반대되는 태도를 가진 것이 아닙니다."

지난달 디턴 교수가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후 국내에서는 날카로운 불평등 논쟁이 벌어졌다. 디턴 교수가 작년 '피케티 열풍'을 일으킨 프랑스 경제학자 피케티 교수와 대척점에서 불평등을 옹호하는 견해를 가진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피케티 교수는 작년 베스트셀러가 된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불평등을 사회악으로 단정하고 부자들에 대한 부유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 전 세계 불평등 논쟁에 불을 댕겼다. 반면 국내에는 디턴 교수가 '불평등이 사회 발전을 촉진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는 대표적 학자로 소개됐다. 디턴 교수의 노벨상 수상은 피케티의 주장에 대한 주류 경제학계의 반박이라는 분석까지 나왔다.

그러나 이후 국내 경제학계에선 불평등과 빈부 격차에 대한 두 학자의 관점이 실은 대립하지 않는다는 반론이 이어졌다. 디턴 교수의 저서 '위대한 탈출'이 국내 번역본 출판 과정에서 왜곡됐다는 논란도 나왔다. 그렇다면 디턴 교수의 진의는 과연 어떤 것일까?

지난 9일 가을이 깊어져가는 미국 뉴저지주 프린스턴대 캠퍼스에서 노벨상 발표 이후 한국 언론 중 처음으로 디턴 교수를 직접 만났다. 그는 인터뷰 약속 시간에 딱 맞춰 거구를 이끌고 연구실로 천천히 걸어왔다. 이날은 상징인 나비 넥타이를 매지 않았다. 연구실 맞은편에 있는 학과 게시판에는 노벨상 수상 발표 후 프린스턴대에서 열린 기자회견 소식이 조그맣게 걸려 있었다.

불평등은 좋은 면, 나쁜 면 모두 있다

―불평등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중 어느 것이 더 크다고 보십니까?

"나라마다 다를 것입니다. 각국이 스스로 논의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불평등이 커진 지난 20~30년간 좌파는 '불평등은 나쁜 것이고, 이를 저지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우파는 '불평등이 뭐가 문제라는 거냐.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두 견해 모두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좌파의 우려도 맞고 동시에 우파의 주장도 옳습니다. 어떻게든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균형은 나라마다, 시대마다 다릅니다. 이 때문에 각국 내에서 민주적 토론이 필요합니다. 제가 보기에 미국인은 유럽인보다 불평등을 훨씬 더 좋아합니다. 제가 1970년대 말에 처음 미국에 교환교수로 왔을 때 미국 사회는 불평등이라는 이슈에 관심이 적었어요. 영국인들과는 달리 미국인은 고소득자와 다른 계층 간 소득 불평등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죠. 오히려 용인하는 분위기랄까요. '아메리칸 드림' 때문이었을 겁니다. 지금은 불평등을 보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중요한 것은 국민을 위해 어느 정도 안전망을 갖춰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경제학에서 아직까지도 충돌이 빚어지는 어려운 부분이죠."

―어떻게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요?

"이미 도구는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어떤 것을 할 수 있을지도 알고 있죠. 세금 인상, 공공 보건 시스템 강화, 공교육 개선 등은 이점도 있지만 비용도 많이 듭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도구(정책)가 아닙니다. 기술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가'입니다. 누구나 원하는 게 다릅니다. 민주적 논의가 필요합니다. 불평등이 없는 세상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가지는 세상도 원하지 않죠. 그 중간에 효과적인 것이 각 나라에 있을 텐데, 이게 나라마다 다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즘 불평등의 위험에 대한 경고가 자주 들립니다. 불평등 때문에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했다고도 합니다만.

"저는 '위기' 같은 선동적 용어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의 위기'라는 표현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표현 같잖아요. 다만 한편으론 불평등이 지금처럼 계속 빠르게 확대되면 민주적 자본주의에 위협이 될 거라고 많은 사람이 말하고 있습니다."

―불평등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커진 상황은 어떻게 보시나요?

"잘된 일입니다. 사회가 불평등에 대해 논의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아주 오랫동안 불평등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좌우가 모두 들을 수 있는 곳에서는 전혀 논의가 되지 않았죠. 저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이 더 진지한 불평등 논의가 이뤄지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富의 불평등 특집 | Cover Story ] 올해 노벨 경제학상 앵거스 디턴
앵거스 디턴 교수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후 잠을 충분히 못 자고 있는데, 아무래도 첫 달이니까 그렇지 않겠느냐”며 웃었다. 책으로 가득 찬 연구실에서 인터뷰하는 도중에도 디턴 교수는 수차례 스마트폰을 집어들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 프린스턴(미국)=김남희 조선비즈 기자
디턴 교수는 한국에서 벌어진 논란을 의식한 듯 인터뷰 첫머리에 피케티 교수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피케티 교수와 염려하는 바가 비슷하고 반대 의견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피케티 교수가 부의 불평등을 날 세워 비판하긴 하지만, 불평등이 성장을 위해 어느 정도는 유용하다고 인정한다는 점에서도 디턴 교수와 시각이 비슷하다. 그러나 불평등을 해소할 방법에 대해서는 두 사람의 견해차가 크다. 피케티 교수는 소득 상위 1%에게 최고 80% 소득세를 물리자거나, 자산에 대해 최고 10% 부유세를 부과하자는 등 과격한 제안을 한다. 반면 디턴 교수는 꼭 집어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나라마다 해결책이 다르므로 일괄적으로 얘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피케티 교수는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매겨 빈부 격차를 줄이자고 주장했습니다.

"불평등을 완화할 공통 해결책은 없습니다. 각 국가가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각각 다른 걸 원합니다. 경제학자들이 즐겨 쓰는 말이 있습니다. '트레이드 오프(trade-off)'란 말인데, 해결 방안이 있으면 그에 따른 비용도 있다는 뜻이죠. 예컨대 세율을 소득의 90%로 올린다면 아무도 세금을 안 낼 겁니다. 세금을 안 낼 방도를 찾을 테니까요. 과거에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정책이 어떤 결과를 내는지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죠. 토론이 사람들의 정치적 믿음에 상당히 좌지우지된다는 게 문제 같습니다."

―저개발 국가의 빈곤 탈출을 다룬 저서 '위대한 탈출' 마지막에 '새로운 탈출은 새로운 불평등을 낳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새로운 불평등이란 어떤 건가요.

"역사를 보면 새로운 혁신은 새로운 불평등을 만들어낸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예컨대 애플은 삶을 더 좋게 만드는 수많은 기기를 세상에 내놨습니다. 저는 애플 기기를 이용해 다른 나라에서도 손주들과 대화하고 아이들 사진을 볼 수 있다는 게 참 좋습니다. 전 세계에 있는 거의 모든 책과 음악도 접할 수 있게 됐죠. 아주 멋진 일입니다. 100년 전에는 교향악단 연주를 들으려고 며칠씩 여행을 가야 했어요. 그러지 않으면 평생 들을 기회도 없었죠. 애플은 새로운 기기를 탄생시킨 덕분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부유한 기업이 됐습니다. 애플 주주와 임원들도 부자가 됐죠. 이건 상당한 불평등이 생겼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는 제가 보기엔 꽤 좋은 종류의 불평등입니다. 새로운 혁신, 즉 창조적 파괴가 새로운 불평등을 초래한 겁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속도도 빨라졌죠. 이를 멈추는 게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혁신이 필요하니까요. 물론 그래도 불평등은 조심스럽게 다뤄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정부 규제가 없어지지는 않을 겁니다."

―인류 전체 삶의 수준은 진보했지만, 한 나라 안에서 불평등이 커지는 현상은 어떻게 보십니까? 기업 최고경영자나 월스트리트 금융인들이 천문학적 돈을 받으면서 빈부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습니다.

"월스트리트나 제약사 때문에 생겨나는 거대한 불균형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똑똑한 젊은이들이 이 산업으로 일하러 몰려가게 됩니다. 그들 개인적으로는 돈을 아주 많이 벌게 될 테니까 좋은 일이죠. 그렇지만 사회에는 꼭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개인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이죠."

―불평등을 논의할 때 정치의 역할은 뭔가요?

"정치는 갈등을 해결하는 수단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사회에서는 내가 원하는 걸 남이 원하지 않을 수도 있고 남이 원하는 걸 내가 원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정치는 이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한 방법입니다. 매우 중요한 기능이죠. 정치가 매섭고 분열적인 것도 이 때문이겠죠. 꼭 민주주의가 아니라도 모든 형태의 정치는 어떤 식으로든 갈등을 풀기 마련입니다. 그중에서도 민주정치가 효과적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것이겠죠."

개발도상국, 자체 성장 모델 개발해야
[富의 불평등 특집 | Cover Story ] 올해 노벨 경제학상 앵거스 디턴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지난달 12일 디턴 교수를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하며 소비·빈곤·복지에 대한 그의 연구를 높이 평가했다. 왕립과학원은 "복지를 증진하고 빈곤을 줄이는 경제정책을 설계하려면 우선 개인의 소비 선택을 이해해야 한다"며 이 분야 연구에서 디턴 교수의 공로를 높이 평가했다. 디턴 교수는 최근에는 특히 건강, 복지, 빈곤국의 경제 개발을 중점 연구하고 있다.

―선진국 경제가 저성장을 겪고 있습니다. 개발도상국의 빈곤과 선진국 내부 불평등에 어떤 영향이 있다고 보십니까.

"복잡한 문제입니다. 선진국의 경제성장 둔화는 모두에게 나쁜 영향을 줍니다. 환경에는 좋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경제성장이 환경 문제 대응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꼭 성장 둔화가 환경에 유익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결국 성장률 하락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부자 나라의 경제성장이 약해지면 가난한 나라들이 물건을 내다 팔 수 있는 시장이 작아지니 안 좋은 일이죠. 경제성장 둔화는 정치에도 악영향을 줍니다. 경제가 성장하지 않는다면 한 그룹이 이득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그룹을 희생시키는 것뿐이니까요."

―저성장 시대에 개발도상국이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 할지 논의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각 국가가 각자 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중국이 특이한 방식으로 하고는 있는데, 지금보다 더 민주적이어야 합니다. 경제가 더 빠르게 성장하는 아시아와 다른 지역은 성장을 먼저 거친 선진국과는 달라야 합니다. 이들은 이미 발명된 많은 것을 가져다 쓸 수 있습니다. 컴퓨터나 전자 기기 같은 기술을 재창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개발도상국의 성장이 선진국과는 다르고 선진국보다 더 빠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추격자 어드밴티지(이점)' 효과가 증발하고 맙니다. 한국은 이제 거의 선진국에 가까워졌습니다. 한국이 미국만큼 좋은 차를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한국도 새로운 성장 모델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물론 쉽지 않을 것입니다. 경제성장이 완전히 새로운 것에 달려 있고 그 새로운 것을 스스로 생각해내야 하니까요. 한국은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일원이며, 더는 '따라잡기 성장'에 의존할 수 없습니다. 한국은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교육이 매우 중요해집니다. 한국에는 교육을 잘 받고 똑똑하고 유능한 인재가 많습니다. 한국이 스스로 길을 찾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탈리아는 물건을 자기만의 것으로 다르게 만들기로 유명한데, 한국을 '동양의 이탈리아'라고도 하더군요."

―한국에서도 빈부 격차가 확대되면서 계층 간 갈등이 커지고 있습니다. 어떤 조언을 해주시겠습니까.

"사회의 적극적 논의가 필요합니다. 한국은 큰 경제성장을 이뤘고 삶의 수준이 크게 개선됐습니다. 그러나 뒤에 남겨진 사람도 여전히 많습니다. 저는 먼저 성공한 사람들이 자기 삶의 수준 향상이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라에 빚진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뒤에 남겨진 사람들을 도와야 합니다. 건강관리와 교육 개선에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원조 효과 없다… 북한 원조 효과도 회의적

개발 경제학의 선구자인 디턴 교수는 개발도상국 원조에 강력하게 반대한다. 원조는 저개발국에 만연한 부패를 부추기고 독재 정부의 배만 불린다는 이유를 든다. 그는 "질병 퇴치에 쓰이는 일부 원조는 효과가 있지만, 과도한 원조는 부정적 결과가 크다"고 했다.

―원조가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하고 경제성장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도 많습니다만.

"저는 원조가 경제성장을 일으킨다는 증거를 본 적이 없습니다. 학자들이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 연구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결과는 신통치 않을 때가 많습니다. 원조가 경제성장을 늦춘다는 증거는 있지만, 더 빠르게 성장하게 만든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그래서 최근 원조 사업의 방향이 보건 관련 원조로 더 많이 옮아가고 있습니다. 보건 원조가 생명을 구한다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때도 과도한 원조가 부정적 결과를 낳은 예 역시 많습니다."

―그렇다면 원조 수혜국에 대한 단순 재정 지원이 아닌, 구체적 프로젝트 단위의 원조 효과는 어떻게 보십니까.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한 원조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효과가 없습니다. 세계은행이 프로젝트 단위 원조에 대한 지원을 끊었을 정도로 비효율적입니다. 원조 과정에서 부패가 들끓고 효율적인 진행이 어렵습니다. 나라 전체 경제가 엉망인 상황에서 프로젝트 하나로 상황을 개선한다는 생각 자체가 말이 안 됩니다."

―한국에서는 북한 원조를 둘러싼 논쟁이 치열합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저는 결국 독재자에게 흘러갈 지원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을 돕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독재자의 생존을 돕는 것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아프리카에는 질이 나쁜 독재자가 많습니다. 이런 나라에 원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두고 끝없는 논쟁이 이어지죠. 원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어린이의 생명을 구한다는 논리를 듭니다. 독재자가 싫다고 해서 아이들을 내팽개칠 거냐는 것이죠. 반대쪽에서는 결국엔 독재자가 아이들에게 가야 할 돈을 가로채 자기 배를 불린다고 반박합니다. 북한에서는 북한 정부를 거치지 않고 북한 주민을 지원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북한 정부가 모든 것을 통제하니까요.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여러분 이웃 가정의 남편이 사이비 종교에 빠져서 아내를 때린다면 그 아내가 불쌍하다고 느끼겠죠. 그래서 그 아내에게 돈을 준다면 그 돈은 고스란히 남편이 빼앗고 아내를 계속 때릴 겁니다. 결국 남편 좋은 일만 해주는 꼴이 됩니다."

―세계은행이 지난달 공식 빈곤선을 하루 소득 1.25달러에서 1.90달러로 올렸습니다. 적절한 조치라고 보십니까.

"현실을 조금 더 반영했다는 면에서는 좋은 시도라고 봅니다. 그러나 빈곤 측정 방식에는 여전히 문제가 많습니다. 국가 간 생활수준을 비교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자료도 여전히 부족하고, 우리가 모르는 변수가 너무 많습니다. 단순히 소득이 아니라 빈곤의 다른 측면을 측정하는 데 더 많은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예컨대 건강과 영양 상태 같은 것입니다. 인도는 국가 전체의 부는 상당히 늘었지만 여전히 굶주림에 시달리는 아이가 많습니다. 나라 경제 규모가 커졌다고 손뼉을 칠 때가 아닙니다. 다만 빈곤과 불평등은 다릅니다. 빈곤은 바닥층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불평등은 다른 계층 간 또는 개인 간 차이를 말합니다. 부자에게 더 많이 주면 불평등이 커지지만 빈곤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빈곤과 불평등은 서로 관련이 있지만 같은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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