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 로펌의 생존법

입력 2017.01.21 03:00

미국 최대 온라인 법률자문사 '리걸줌'… 존 서 CEO
고객에 질문·정보수집·문서작성 과정 자동화… 변호사들, AI 도움 받아 매일 기업 안건 수천 건 처리

미국 캘리포니아 패서디나에 있는 로펌 애로요(Arroyo)의 사무실 풍경은 언뜻 보면 콜센터와 비슷하다. 사무실로 찾아오는 고객을 응대하는 변호사보다 컴퓨터 화면을 보며 전화로 상담하는 변호사가 더 많다. 온라인 법률 자문 회사 리걸줌(LegalZoom)의 제휴사인 이 로펌은 리걸줌을 통해 작성한 법률 문서를 토대로 상담을 요청하는 사람들을 주로 상대하고 있다. 변호사가 한 사람당 30분씩 통화 상담을 마치고 나면 고객이 만족도에 따라 별점을 매긴다.

알아듣기 어려운 용어로 중무장한 전문가만의 리그였던 법률 시장이 첨단 기술과 만나 변신하고 있다. 2001년 출범한 미국 최대 온라인 법률 자문사 리걸줌은 최근 부상하는 '리걸테크(legaltech)'의 선구자로 꼽히는 기업이다. 리걸줌은 AI(인공지능)을 활용해 복잡해 보이는 법률 서식 작성을 DIY(Do It Yourself) 방식으로 바꿨다. 리걸줌을 이용하면 건당 500~6000달러 수준인 기업 법률 자문 비용을 149~369달러로 낮출 수 있다. 이 회사는 2016년 유료 누적 이용자 수가 400만명에 달하는 미국 중소기업 분야 최대 법률 자문 회사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액셀러레이터(창업 보육 및 투자사) 스파크랩이 주최한 '스타트업 오픈 세미나' 연사로 한국을 찾은 존 서(서현직·47) 리걸줌 최고경영자(CEO)를 만났다. 한국계 2세인 그는 2005년 리걸줌에 합류해 2007년부터 CEO로 일하고 있다.

존 서 리걸줌 CEO는 “영화관에서 두 시간 반 동안 상영하는 영화를 대본으로 본다면 20분 만에도 중요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영화는 기본 정보에 살을 더 풍성하게 붙여야 하지만 리걸테크 산업에서 기술은 살을 덜어내고 핵심을 빠르고 정확하게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존 서 리걸줌 CEO는 “영화관에서 두 시간 반 동안 상영하는 영화를 대본으로 본다면 20분 만에도 중요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영화는 기본 정보에 살을 더 풍성하게 붙여야 하지만 리걸테크 산업에서 기술은 살을 덜어내고 핵심을 빠르고 정확하게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 스파크랩
1. 전통 법률 자문 서비스와 어떻게 다른가.

"우리 서비스는 전통적인 법률 자문 서비스와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다. 변호사가 고객을 만나 일일이 질문하면서 정보를 수집하고 문서를 작성하던 과정을 자동화한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창업을 하려 한다고 치자. 창업에 필요한 법률 서식을 작성하려는 사람이 리걸줌에 접속하면, 자동화 프로그램이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답을 작성하면 그 답을 토대로 또 다른 질문을 던지면서 프로그램이 서식을 완성한다. 똑같이 창업을 준비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열 개의 질문만 받지만, 다른 사람은 스무 개가 넘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서식 작성이 끝나면 변호사에게 법률 자문 서비스를 받게 된다. 자신이 하려는 일에 대한 내용을 완전한 서식으로 만든 뒤 그 내용을 토대로 상세한 상담을 받는 것이다."

2. 고객 입장에서는 비용이 얼마나 줄어드나.

[그래픽] 리걸줌 이용자 수 변화
"리걸줌은 월 정액제로 운영된다. 2017년 현재 미국의 평균 변호사 선임 비용은 시간당 200~520달러 수준이고, 기업 업무의 경우 건당 500~6000달러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리걸줌을 이용하는 개인은 월 69달러에 유언장 작성 등의 업무를 볼 수 있고 기업은 월 149~369달러에 원하는 업무를 볼 수 있다. 한 달에 한 건만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비용이 70~80% 절감되니 변호사를 따로 둘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이나 개인이 꾸준히 이용한다. 변호사 상담 비용은 고객이 내는 월 회비에 이미 포함돼 있다. 리걸줌 네트워크에 가입한 변호사들은 고객을 대량으로 소개받기 때문에 일반 수임료보다 25% 정도 싼 수임료를 리걸줌에서 받는다."

3. 변호사 일거리를 빼앗지는 않나.

"그렇지 않다. 변호사는 여전히 변호사의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는 변호사와 고객을 연결하는 기술을 계속 개발해 가고 있다. 우버가 택시 기사에게 별점을 매기는 시스템처럼, 우리는 고객이 상담받은 변호사를 점수 매기게 하고 있다. 그 점수가 쌓이면 고객이 상담받을 변호사를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된다. 변호사들도 직접 개인 고객을 찾아 나서는 것보다 좋은 평가를 많이 받아 고객이 많이 찾아오게 하는 편이 훨씬 편하다. 자연스럽게 변호사들도 '고객을 응대하는' 태도를 배우고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어떤 식으로든 기술이 변호사의 일 자체를 위협하지 않는다."

별점 받는 변호사들 리걸줌 회원들은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작성한 법률 문서 초안을 토대로 리걸줌 제휴 변호사와 전화 상담을 한다. 그리고 변호사의 서비스를 평가해 별점을 매기고 후기를 남긴다. 사진은 리걸줌 변호사 네트워크에 등록된 변호사들의 별점과 후기 수.
별점 받는 변호사들 리걸줌 회원들은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작성한 법률 문서 초안을 토대로 리걸줌 제휴 변호사와 전화 상담을 한다. 그리고 변호사의 서비스를 평가해 별점을 매기고 후기를 남긴다. 사진은 리걸줌 변호사 네트워크에 등록된 변호사들의 별점과 후기 수. / 리걸줌
4. AI 문서 작성은 빠르지만 사람보다 유연성이 떨어지지 않나.

"법률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성이다. 속도보다는 정확성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기술을 개발해 나간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용자 수가 늘면서 점점 더 품질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개인 변호사는 연간 5~10건의 기업 안건을 맡아 처리한다. 리걸줌은 직원 600명과 변호사들이 AI의 도움을 받아 매일 수천 개의 기업 서류를 미국 전역의 지방법원과 고등법원, 대법원에 제출한다. 우리처럼 매일 수천 건의 서류를 제출하는 곳에서 오류가 생기면 파장이 크기 때문에 수시로 미국 전역의 법률 정보 변화를 수집해 그 정보를 시스템에 업데이트해야 한다. 법원도 다양한 정보를 우리 측에 빠르고 정확하게 알려온다. 규모의 경제가 가져오는 네트워크 효과다."

5. 중소기업과 개인 유언장 대행 업무를 넘어 대기업으로 확장할 생각은.

"전혀 없다. 중소기업을 핵심으로 생각한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덩치 작은 중소기업이나 개인은 제대로 된 법률 자문 서비스를 받기 어렵다. 이들이 누구나 양질의 법률 자문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실제로 포천 50대 기업에 속하는 한 대기업이 그 회사만을 위한 특별한 솔루션을 만들어 제공해 달라고 했지만 거절했다. 우리는 특정 기업만을 위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이 아니다. 반대로 한 가지 솔루션을 통해 최대한 많은 기업이 효과를 누릴 수 있는 방향을 추구한다. 이 서비스를 대기업이 사용한다면 굳이 말리지 않겠지만, 서비스 중심이 바뀌는 일은 없을 것이다."

6. 법률계의 '혁신 기업'으로 여러 차례 선정됐는데.

"우리는 단 한 번도 '혁신'을 생각한 적이 없었다.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방향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만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 해법이 생각보다 더 저렴한 비용으로 좋은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일단 좋은 해법을 내놓았더니 세상이 우리를 혁신가로 부르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혁신'이라고 부르지 않는 '발전'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문제를 해결하기는 하지만, 그전에 있던 해법과 큰 차이가 없는 것들이다. 그런데 만약 그 해법이 전보다 훨씬 비용이 저렴하고, 효과는 더 좋고, 더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게 한다면? 그것이 '파괴적 혁신'이 된다."

[그래픽] 리걸테크 주요 분야와 기업
☞리걸테크(legaltech)

법률(legal)과 기술(technology)이 결합해 탄생하는 새로운 산업을 지칭하는 용어. 본래 법률 서비스에 적용하는 기술과 소프트웨어를 일컫는 용어였다. 최근에는 정보통신 기술(ICT)을 바탕으로 새로운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과 관련 산업을 아우르는 용어로 의미가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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