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쫓아낸 딸의 '이기고도 진 싸움'

입력 2017.01.21 03:00

일본 3대 경영권 분쟁 분석해보니
日 오쓰카(大塚)가구 '父女 3년 혈투' 이후의 비극… 중저가 회사로 변신하려다 매출 곤두박질

이웃 나라 일본의 재계에서는 경영권 분쟁이 최근 화두이다. 2차대전 직후에 태어난 일본 베이비붐 세대, 이른바 단카이세대(團塊世代) 경영자들이 하나둘씩 은퇴하면서 승계 문제로 잡음이 나는 데다, 주주가치 보호와 기업 투명성 강화 분위기가 강조되면서 경영권 분쟁이 빈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현재 일본 중소기업 경영자 연령은 66세가 가장 많다. 일본 경영자 평균 은퇴 연령은 중견기업이 67.7세, 소기업은 70.5세. 2020년까지 단카이세대 경영자의 집단 은퇴와 경영 승계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 와중에 일본 정부는 일본 기업의 지속성장을 위해서는 지배구조 개선이 절실하다고 판단, 법체제를 정비하고 기관투자가들에게 기업 경영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도록 주문하고 있다. 경영권 분쟁을 촉발할 요소들이 늘어나는 셈이다.

조명현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한국지배구조원 원장)는 "최근 일본에서 늘고 있는 경영권 분쟁은 앞으로 한국에서 일어날 일의 예고편"이라며 "한국 경영자들도 경영권 분쟁 예방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경영권 분쟁 3대 사례'를 분석해 봤다.


[그래픽] 일본의 최근 3대 경영권 분쟁

어설픈 가격 전략·노 할인 전략 폐기… 두가지 심각한 실수

Case 1 : 오쓰카 가구

일본 고급가구 시장 1위인 오쓰카(大塚) 가구의 ‘부녀 경영권 분쟁’ 이후 1년 반이 지난 지금, 사태는 새로운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딸인 오쓰카 구미코(49) 사장과 아버지 오쓰카 가쓰히사(74) 전 회장은 2014년 이후 경영권을 잡기 위해 혈투를 벌여왔다. 가쓰히사 전 회장이 1969년 세운 이 회사는 회원제 운영과 점원·고객 ‘일대일 마케팅’으로 고급가구 시장을 석권했다. 하지만 2003년 매출 730억엔(7500억원)을 정점으로 이케아와 니토리라는 국내외 중저가 브랜드에 밀려 실적 하락이 계속됐다. 가쓰히사는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2009년 은행원이던 장녀 구미코를 사장에 영입하고 자신은 명예직인 회장으로 물러났다.

그런데 “고급가구로는 어렵다”고 판단한 딸은 중저가 가구 회사로 변신을 시도했다. 옛 방식을 고집했던 아버지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아버지는 2014년 7월 딸을 해임한 뒤 사장에 복귀했다. 딸의 반격은 거셌다. 2014년 4분기 적자를 계기로 이사·주주를 끌어들여 아버지를 해임하고 2015년 3월 다시 사장에 올랐다.

여기까지만 보면 딸의 승리이다. 하지만 올해 1월 시점 회사는 다시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다. 2016년 1~9월에 41억엔 적자였다. 10~12월에는 더 좋지 않아 2016년 연간 적자가 확실하다. 무차입 경영의 견실한 회사가 보유 부동산을 매각해 현금 마련에 나설 만큼 자금 사정이 악화되고 있다. 게다가 주주 배당금까지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2015년 3월 주총에서 경영권 쟁탈전이 벌어졌을 때 회사가 주주에게 2015년 이후 3년간 기말 배당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올해도 15억엔을 지급해야 한다.

구미코 체제가 다시 위기를 초래한 데는 두 가지 큰 실수가 원인이었다는 분석이다. 첫째, 어설픈 가격 전략. 일본 가구 업계는 20여 년 전부터 이미 저가전략의 니토리와 스웨덴 이케아의 약진으로 고가품·저가품 양극화가 심화됐다. 가쓰히사 전 회장은 이런 변화에서도 고급 노선을 고수했다. 반면 구미코 사장은 니토리·이케아에 대항하려 했다. 오쓰카의 타깃 고객이 누구인지 희미해졌고 결국 더 큰 폭의 매출 감소로 이어졌다.

더 큰 원인은 두 번째에 있다. ‘오쓰카 팬’의 민심 이반이다. 오쓰카는 창업 이래 도매상을 거치지 않는 직접 유통 방식을 썼다. 그래서 백화점 등 경쟁 상대보다 같은 고급품을 더 싸게 판매하는 모델로 차별화해왔다. 이 때문에 1993년 이후 구미코 체제가 들어서기 전까지 한 번도 세일을 하지 않았다. 고급품을 백화점보다 싸게, 그러나 할인은 없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구미코가 사장에 다시 취임한 직후의 ‘대감사 세일’ 이래 회사는 지금까지 4차례 세일을 실시했다. 갑작스러운 세일에 기존 고객은 배신감을 느꼈다. ‘금단의 열매’에 손댄 결과 세일 실시 달을 제외하면 점포 매출이 전년 실적을 넘어선 달이 거의 없었다. 작년 11월 점포 매출은 전년 동월 대비 59%나 감소했다.

전문 경영인이 세습 시도하려다 이사회로부터 역풍 맞아

Case 2 : 세븐앤드아이홀딩스

편의점 세븐일레븐을 거느린 지주회사 세븐앤드아이홀딩스의 스즈키 도시후미(85)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작년 4월 물러났던 사건은 CEO 리스크 관리에 대해 일본 경영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당시 스즈키 CEO는 창업가문 출신은 아니지만 회사를 크게 키운 일등공신이었으며 평사원으로 입사해 회장까지 오른 ‘유통업계의 전설’이었다. 그러나 당시 5년 연속 최고실적을 냈던 주력 계열사 세븐일레븐의 이사카 류이치(60) 사장을 내쫓고, 세븐일레븐 이사였던 자신의 아들을 대신 사장에 올리려다가 역풍을 맞았다.

특히 미국계 헤지펀드 서드포인트가 “스즈키 회장이 아들에게 세븐일레븐 경영권을 물려주는 것을 반대한다”고 들고 일어났다. 서드포인트 측은 “세븐앤드아이홀딩스는 왕가(王家)가 아니라 기업”이라고 말했다. 카리스마 경영자의 독단을 묵인해주던 일본 관습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었다.

이사회는 서드포인트 손을 들어줬다. 세븐앤드아이그룹은 이사카 류이치를 신임 그룹 CEO로 선임하고 조직 정비에 나섰다. 세븐앤드아이그룹은 1992년(당시 이토요카도 그룹) 직원이 주총꾼에게 뇌물을 준 사건이 터진 것을 계기로 오너인 이토(伊藤) 가문이 물러나고 전문 경영인 스즈키 회장 체제가 됐다. 오너 가문조차 자식을 제치고 적임자에게 경영을 맡겼는데 전문 경영인이 세습을 시도하려다 퇴진한 사건은 회사 전체에 충격이었다. 현재 회사는 전문경영인을 중심으로 움직이되, 예전과 달리 오너 가문의 의지가 상당히 반영되고 있다. 회사 내분 치유를 위해 관계자, 대주주 사이에서 컨센서스(합의)가 형성됐기 때문이었다.

전문 경영인이 M&A 밀어붙이다 창업가 가문과 대립

Case 3 : 이데미쓰흥산

대주주인 창업가와 전문경영진 사이의 갈등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이데미쓰(出光)흥산과 쇼와(昭和)셸 석유의 합병 문제가 전형이다. 이데미쓰흥산은 작년에 공정거래위원회 승인을 받아 쇼와셸 주식 31.3%를 사들이기로 했다. 그러나 창업가 측이 이를 반대하는 바람에 올해 4월로 예정된 쇼와셸과의 합병이 연기됐다. 이데미쓰는 인간 존중 이념에 바탕한 ‘가족주의’ 경영으로 유명한데, 창업가는 사풍이 다른 쇼와셸과의 합병으로 기업문화와 가치가 훼손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데미쓰 쇼스케(90) 명예회장을 중심으로 한 창업가는 지금까지 전문 경영인에게 거의 전권을 위임해 왔다. 그러나 최근에 명예회장의 차남인 이데미쓰 마사미치를 이사로 참여시키려 하고 있다. 현 이사회에는 창업가 출신이 없어 기업문화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마사미치씨는 이데미쓰 주식을 1.51% 보유한 대주주로, 작년 주총에서 전문경영인인 쓰키오카 다카시(66) 현 이데미쓰 사장의 연임에 반대표를 던지기도 했다. 최근에는 창업 가문과 다른 대주주들을 규합해 주총에서 합병안에 반대하기 위한 의결권을 행사할 계획을 준비 중이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어떤 기업이든 전략적 제휴나 방향전환에 대해서는 관련자들의 컨센서스(합의)가 필요하다”며 “아무리 좋은 전략이라 하더라도 기업의 모든 이해당사자를 충분히 설득하고 이끌어가는 과정이 대단히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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