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밖에서 답 찾지 마라… 핵심 제품 개선하고 충성 고객 공략하는 '상자 안 혁신'이 더 효과적

입력 2016.03.26 03:05

혁신 전문가 데이비드 로버트슨 와튼스쿨 교수의 조언

데이비드 로버트슨 교수
데이비드 로버트슨 교수
혁신이 필요한 기업의 경영진은 회사 밖에서 답을 찾는 경우가 많다. 혁신의 모델로 거론되는 사례는 주로 소프트웨어, 정보통신(IT) 관련 기업이다. 구글은 엔지니어들이 근무시간의 20%는 현재 맡은 업무와 무관한 일에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20% 규칙'을,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 셈코(Semco)는 직원들이 출퇴근 시간과 근무 장소, 휴가 일정 등을 자유롭게 결정하는 '주 7일 주말 근무제(the seven-day weekend)'를 시행한다. 온라인 쇼핑몰 자포스(Zappos)는 높은 근무 자율성뿐 아니라, 수평적 관리 구조인 홀러크러시(Holacracy)로 유명하다. 관리자 직급이 따로 없고 직원들이 동등한 의사 결정권을 행사하는 경영 체계다.

독특한 기업 문화를 이식하거나 컨설팅 업체의 조언을 받는 게 정말 효과적인 혁신 전략일까. 마이크로소프트, 하이네켄, HSBC 등 전 세계 기업의 자문에 응한 혁신 전문가 데이비드 로버트슨(Robertson·56) 미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다른 기업을 따라 하기보다, 각자 본질에 맞는 사업 목표를 설정하고 관리 체계를 정비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업무별 책임자를 확실히 정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업무에 변화를 줄 때 거쳐야 하는 결재선에 혼선이 없도록 정리하는 게 관리 체계의 혁신입니다. 단순히 직원들에게 더 많은 자율성과 예산을 주면 혁신이 더 활발하게 일어날까요? 적은 예산과 자율성을 부여하더라도 직원들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실험해볼 수 있는 업무 체계를 만드는 게 더 효율적입니다. 사업 성과에 대한 책임은 기업 경영진 몫이기 때문에 컨설팅 업체의 조언도 아이디어 수집 차원에서만 활용해야 합니다."

로버트슨 교수는 미국과 유럽의 주요 기업을 대상으로 50건 넘는 사례 연구를 진행해, 혁신에 성공한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기본에 충실했다"고 분석했다. 그중에서 장난감 업체 레고를 기본에 충실해 혁신을 이룬 모범 사례로 꼽고, '레고, 어떻게 무너진 블록을 다시 쌓았나(원제 Brick by brick)'라는 책으로 정리했다.

레고의 핵심인 블록.
레고의 핵심인 블록.
①사업 목표·관리 체계 재정비

"관리 체계를 제대로 혁신한 기업일수록 회생에 성공할 가능성이 큽니다."

로버트슨 교수는 '체계(system)의 혁신'을 강조한다. 경영난에 빠진 기업의 경영진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회사가 추구할 목표와 방향을 분명하게 정해 이를 직원들과 공유하는 것, 다음으로 회사의 관리 체계와 업무 체계를 수정하는 것이라고 그는 얘기한다.

"혁신적인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높은 자율성을 주는 것은 맞지만, 주 업무는 엄격한 체계에 따라 처리합니다. 20% 규칙으로 유명한 구글도 마찬가지입니다. 굳이 독특한 업무 체계를 시행하지 않더라도 팀장급이 자신의 권한 범위에서 작은 혁신을 이뤄나가면, 회사 전체로는 큰 혁신이 일어나는 거죠. 보고 체계를 명확히 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직원들이 새로운 시도를 하려면 누구에게 승인을 받아야 하는지 알고 있어야 하니까요."

구조조정을 결정할 때도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적이 부진해지고 수익이 감소하면 당연히 회사 몸집을 줄여야 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누구를 해고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겁니다. 1998년 구조조정을 단행할 당시 레고 경영진은 레고 블록을 쌓고 조립하는 놀이법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레고 세트를 개발하거나 혁신하는 대신 레고 블록을 디지털화하거나 가상현실 레고를 개발하는 쪽으로 사업 방향을 잡았고, 레고의 역사와 핵심 가치에 밝은 관록 있는 제품 디자이너를 여럿 해고하는 전략적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②주력 제품과 주요 시장 중심으로 혁신

로버트슨 교수는 완전히 새로운 사업이나 제품을 개발하기보다, 주력 사업과 핵심 제품(core products)을 개선하고, 충성 고객을 공략하는 데 집중하라고 조언한다. 이른바 '상자 안 혁신(innovation inside the box)'이다. 신기술을 개발해 제3 시장으로 진출하는 것은 투자 비용은 많이 드는데 성공할 확률은 낮다. '상자 안 혁신'이 성공했다면, 주력 제품과 관련된 제품이나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상자 주변 혁신(innovation around the box)'으로 한 단계 더 나갈 수 있다.

"1990년대 다양한 신사업을 시도한 레고가 모조리 실패한 것은 종전의 블록 제품 생산과는 차원이 완전히 다른 디지털 시장에 뛰어든 탓이 큽니다. 전문성이 부족하고 경험도 없던 레고는 돈만 쏟아붓고 상업적으로 실패했습니다. 반면 미국의 게임 개발 업체인 밸브 소프트웨어(Valve software)는 '상자 주변 혁신'의 성공 사례입니다. 직원 1명당 200만달러(약 23억원)가 넘는 매출을 거둘 정도로 수익성이 좋은 회사입니다. 이 회사의 주력 제품은 비디오 게임이었는데, 점차 사업을 확장해 게임 기기, 게임을 유통하는 플랫폼, 게임 안의 물품(게임 아이템)을 거래하는 장터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게임과 연계된 사업과 제품이죠. 핵심 제품이 매력적일수록 관련 상품까지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얻고, 더 많은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③소비자 욕구 제대로 분석해야

레고는 주력 제품인 블록과 관련된 게임·영화
레고는 주력 제품인 블록과 관련된 게임·영화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많은 기업이 '고객 최우선'을 외치고도 소비자들에게 외면당한다. 로버트슨 교수는 "고객 중심 전략의 개념을 너무 좁게 잡았거나, 회사의 주 고객층에게 적합하지 않은 전략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대표적 사례가 미국의 액션 카메라 제조사 고프로(Gopro)와 일본 소니다. 카메라 자체의 경쟁력은 소니가 뛰어나다. 카메라 화소도 더 높고 화면 보정 등 기능이 다양하다. 반면 가격은 고프로 제품보다 3분의 1 정도 싸다. 그런데도 더 비싸고 기능은 적은 고프로의 액션 카메라가 소니 제품보다 7배 넘게 많이 팔린다.

"차이는 소비자의 성향과 욕구에 대한 판단에서 비롯됐습니다. 소니는 '소비자들이 어떤 기능을 원할 것인가'에, 고프로는 '액션 카메라 사용자들이 어떤 경험을 원하는가'에 각각 초점을 맞췄습니다. 소니는 카메라 개발과 기능 향상에 집중하고, 고프로는 촬영한 사진을 편집하고 공유하고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웹사이트(고프로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데 투자합니다. 액션 카메라 사용자들은 어떤 욕구와 성향을 가지고 있을까요? 산을 오르거나 자전거를 타면서 멋진 사진을 찍고, 애완동물의 활발한 모습을 촬영해 자랑하고 싶어 할 겁니다. 고프로 제품이 더 잘 팔리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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