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 피해 주는 통화정책 막을 국제협약 필요

입력 2016.03.26 03:05

돈 뿌리기·마이너스 금리 등 내수 진작 거의 도움 안 되면서 신흥국 자산 거품만 유발

라구람 라잔(인도중앙은행 총재·전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라구람 라잔(인도중앙은행 총재·전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글로벌 경제는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 자국 경기 부양을 위해 다른 국가 경제를 위기에 빠뜨리는 '근린 궁핍화(beggar my neighbor)' 정책 때문에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전의 경제 성장기로 돌아가기 힘든 이유는 선진국 경제가 막대한 빚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부채를 줄이고 수요를 견인할 수 있도록 구조 개혁에 나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개혁에 따른 성과가 불확실하고 정치적으로 부담이 크기 때문에 구조 개혁에 손대지 못하고 있다. 이 외에 인구 노령화, 생산성 문제도 경제 회복의 발목을 잡는 요인일 것이다.

각국 중앙은행들은 정치인들과는 조금 다른 과제를 안고 있다. 선진국 중앙은행은 경기 부양을 위해 막대한 돈을 뿌리는 '헬리콥터'식 정책, 국채 매입, 마이너스 금리 등 과격한 정책을 써왔다.

그러나 과연 중앙은행들의 강력한 통화정책이 수요를 창출하고 경제를 회복시키고 있을까.

통화정책은 대중의 기대 심리에 영향을 미쳐 효과를 달성한다. 그런데 현재 중앙은행들의 과격한 통화정책은 오히려 소비자들에게 '재앙이 코앞에 닥쳤다'는 신호를 보내 지갑을 닫게 하고 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어느 한 국가가 국내 기준 금리를 낮춰 내수 수요와 투자를 진작할 경우 무역 경쟁력도 높아진다. 하지만 요즘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극단적인 통화정책을 써도 내수 수요가 꼼짝하지 않는 상황이다.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이런 정책을 쓰는 것을 정당화하고 있지만 모든 통화정책은 글로벌 시장에서 '파급 효과'를 일으킨다. 환율은 과격한 통화정책에 따른 문제를 다른 국가로 전파시키는 주요 통로가 되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내수 진작'이라는 과제를 '국제적 책임감'보다 우선시하지 않도록 감독할 수 있는 통화적 규율이 필요하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을 신호등에 비교하자면 빨간불, 노란불, 파란불 정책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한 국가의 통화정책이 다른 국가에 부정적 영향을 거의 미치지 않고 긍정적 영향을 주면 파란불 정책으로 분류할 수 있다. 국내 수요 창출에 도움을 주면서 일시적으로 다른 국가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만, 궁극적으로 내수 경기가 살아나 수입이 늘어나면서 다른 국가에도 혜택이 돌아간다면 이 역시 파란불로 분류할 수 있다.

빨간불 정책은 어떤 상황에서든 자제해야 한다. 내수 수요를 진작하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못하면서 동시에 자본이 유출돼 신흥국에 자산 거품을 유발하는 통화정책들이 여기에 속한다.

애매하고 선을 긋기 어려운 노란불 정책은 많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기적·일시적으로만 도입되어야 한다. 경제 규모가 큰 국가들엔 상당히 긍정적 영향을 주지만 동시에 작은 국가들엔 부정적으로 타격을 주는 정책들, 그러면서도 전체 글로벌 시장을 봤을 때는 좋아 보이는 정책들이 노란불 정책에 포함된다. 노란불 정책은 어느 정도 용인되지만 지속해선 안 된다.

최근 각국 중앙은행들이 쓰는 통화정책을 어떻게 빨간불, 노란불, 파란불로 분류할지에 대해선 명확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와 각종 예측 모델, 통계 수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견이 일치하기 어려운 분야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통화기금(IMF), G20(주요 20개국) 수준에서 토론을 시작해야 한다. 처음에는 잡음이 많고 의견이 충돌하겠지만, 모든 국가가 빨간불 정책을 서서히 줄일 수 있도록 나아가야 한다.

IMF 조항 4를 보면 '회원국이 타국에 대해 부당한 경쟁력을 얻기 위해 환율이나 국제 통화 체제를 조작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중앙은행의 책임감을 강화하기 위한 규율을 만들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국제 금융시장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중앙은행들의 임무와 통화정책에 대한 국제적 규율을 세우기 위해 브레턴우즈와 유사한 새로운 국제적 협약을 만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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