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경제학자도 바보 같은 선택한다… 발뒤꿈치 까져도 새 구두 포기 못 하는 심리처럼

입력 2016.01.23 03:04

"非합리적 행동 하는 인간 본성 활용하라" 행동경제학 大家 리처드 탈러 시카고대 교수

지난 2009년 '넛지(Nudge)'라는 다소 생소한 단어를 제목으로 한 책이 화제가 되기 시작했다. 이 책은 평범한 사람들은 경제학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기 때문에, 똑똑한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넛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스히폴 공항의 남자 화장실 사례가 가장 유명하다. 변기 중앙에 파리를 한 마리 그렸더니 소변기 밖으로 튀어나가는 소변량을 80% 줄이는 '쾌거'를 이룰 수 있었다는 것. 파리를 겨냥해 일을 보도록 유도한 것이 효과를 발휘했다. 이때 '파리'가 바로 '넛지'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등 세계 각국 정상들이 이 책의 저자에게 달려가 조언을 구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넛지 개념을 적용한 저축 증대 프로그램(Save more tomorrow)를 선보이기도 했다. 행동경제학의 권위자로 손꼽히는 리처드 탈러(Thaler·71·사진) 미국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리처드 탈러
리처드 탈러 미국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 / 전기병 기자
'넛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상당히 잦아든 지난해, 그는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원제:Misbehaving)'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넛지'처럼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을 막을 한발 더 나아간 명쾌한 해법을 그는 가지고 있을까? 탈러 교수를 지난 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났다. 탈러 교수는 전미경제학회(AEA) 회장을 맡아 학회 참석 차 샌프란시스코에 머물고 있었다.

"넛지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선택 설계자(choice architect)가 있습니다. 그리고 선택설계자가 올바른 선택을 위해 매우 점잖게 슬쩍 미는, 자유주의적 개입주의(libertarian paternalism)를 실천합니다. 바로 그게 넛지였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적절한 넛지를 만드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선택에 대한 리스트를 만들어서, 좀 더 연구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넛지 못지않은 혁신적인 답안은 없는 것일까. 결국은 그가 말해온 넛지 역시 극히 '제한된 해답'에 지나지 않았을 수 있다는 얘기다. 탈러 교수는 웃으며 "결국 잘못된 선택들 가운데 재미있는 사례를 골라 원인부터 들여다보려고 했다"며 "넛지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프리퀄'(선행하는 시간을 담은 속편)에 해당하는 연구를 계속 해왔다"고 설명했다. 해결책보다는 원인에 더 초점을 맞춘 셈이다.

본전 생각 때문에 손실 감수하는 심리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탈러 교수는 '스내그(Snag·예상 밖의 작은 문제라는 뜻)'라는 단어를 소개한다. 탈러 교수는 많은 사람이 비합리적인(멍청한) 선택을 하는데 이 중 대부분이 인간의 '심리적인 만족감 추구' 때문에 일어난다고 지적한다. 이미 쓴 비용이 아까워서 손실을 감수하거나(매몰 비용 효과), 기다리지 못하고 당장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는 마음(현재 편향), 할인을 더 받으려다 정작 필요한 물건을 사지 못하는 소비자(거래 효용 효과) 등의 불합리한 선택을 좇아가다 보면 바로 '심리적 만족감'에 부딪힌다는 것이다. 가령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깜짝 세일에 이끌려 구입하고, 새로 산 구두 때문에 발뒤꿈치가 까져도 지출한 돈이 아까워서 신발을 포기하지 못한다.

―비합리적인 선택이 이뤄지는 원인은 대체 무엇인가요?

"인간이 심리적인 만족감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식 투자를 하거나, 매물로 나온 기업을 인수·합병(M&A)할 때처럼 큰돈을 투자해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내야 할 때 오히려 잘못된 선택이 많이 이뤄집니다. 투자 대비 큰 만족감을 얻는 것에 집착한 나머지, 합리적인 판단을 위해 챙겨야 할 중요한 요소들을 놓치는 것입니다."

―심리적 만족감이 합리적 선택을 방해한다는 얘기입니까.

"그렇습니다. 심리적 만족감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현재 편향'을 들어 봅시다. 당장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비용을 지출하는 것을 말합니다. 간단히 말해 남들보다 먼저 선택할 권리를 과대평가하는 성향이 있다는 뜻입니다.

과거 미 프로풋볼리그(NFL)의 드래프트 시장을 조사해 보니, 원하는 선수를 지명할 권리가 구단들 사이에서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것을 찾아낸 적이 있습니다. 리그 성적이 나빴던 구단 순서대로, 신인 선수를 먼저 지명할 권리를 가집니다. 그런데 특정 선수 한 명을 먼저 지명하기 위해, 다른 선수를 지명할 권리를 모두 넘기는 식의 거래가 이뤄집니다. 제 분석 결과 뛰어난 선수 하나가 팀을 극적으로 변화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여전히 지명권 거래는 매년 생겨납니다. 우수한 선수를 데려오면 당장 성적이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은 절대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픽] CEO 보수 상승률과 S&P지수 움직임
기업 CEO 평균 연봉은 지난 1978년부터 2014년 말까지 997% 증가했다. 같은 기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503.4% 상승하는 데 그쳤다. 리처드 탈러 교수는 “기업이 우수한 CEO를 선점하기 위해 과도한 연봉을 지불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외부에서 최고경영자(CEO)를 데려오거나 우수한 임원을 고용할 때에도 비슷합니다. 원하는 인재를 선점하기 위해 높은 연봉을 제안하거나 각종 옵션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기업이 지출한 비용보다, 새로 데려온 인재가 창출하는 이익이 클까요?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CEO들의 연봉 상승률은 기업의 주가 상승률보다 항상 높았습니다.

M&A 시장에서는 '승자의 저주'라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지금 당장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조기 선택에 집착합니다. 그래서 기업 가치 대비 많은 비용을 지출하죠. 원하는 기업을 얻었지만, 바라던 시너지는 얻지 못합니다."

백화점이 세일 포기 못하는 이유

―합리적 선택을 방해하는 심리적인 오류는 또 어떤 것이 있나요?

"매몰 비용 효과와 거래 효용 효과라는 것이 있습니다. 부도 위기에 처했던 그리픽이라는 스키장이 있습니다. 미국 그리픽 스키장은 손님 몰이를 위해 평일 스키장 시즌 이용권을 6장 묶음으로, 시즌 전에 40% 할인된 가격으로 파는 이벤트를 실시했는데, 인기를 끌었습니다. 거래 효용(실제 물건 가격과 소비자 마음속의 가격 차)이 큰 거래니까요. 게다가 소비자가 이용권 구입에 쓴 돈은 매몰 비용이고, 스키장에 가는 것은 공짜로 즐기는 즐거움이 됩니다. 그래서 이용권을 다 쓰지 못해도 불만을 갖지 않습니다. 결국 다음 해에도 묶음 이용권을 구입합니다. 매몰 비용 효과와 거래 효용 효과는 일상생활에서 특히 많이 목격됩니다.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더 많이 싸게 샀다는 만족감 때문에 할인 행사는 늘 인기를 끕니다. 그래서 백화점들이 세일을 없애지 않는 것입니다. 미국 메이시 백화점이 '고급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할인 쿠폰을 없애고 제품 가격을 대폭 낮춰 정가 판매를 했는데, 오히려 매출이 떨어졌습니다."

―심리적 만족감을 추구하지 않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똑똑한 결정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제거해야 합니다. 앞서 말한 '선택 설계자'가 장애물을 제거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올바른 선택을 유도하는 장치가 있으면 좋습니다. 이것이 바로 '넛지'입니다."

―하지만 모든 선택에 개입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지 않나요?

"맞습니다. 다 고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심리적인 만족감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을 가끔은 역이용해서, 경제적인 이익을 추구할 때도 있어야 합니다."

―인간이 언제나 합리적 결정을 내리지는 않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활용할 여지가 있다는 뜻인가요?

"가령 가격 인상을 할 때 사용할 수 있겠죠. 가격 설정의 프레임을 만들 때, 정가를 높게 잡고 상황에 따라 할인을 해주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거래 효용을 극대화하는 방법입니다. 원래 30달러에 팔던 스테이크를, 월요일 이른 저녁에 방문하는 손님에게 20% 할인해 판매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항공사가 싼 가격에 티켓을 판 후 수하물에 요금을 따로 부과하는 것은 정말 멍청한 짓입니다.

가격을 올릴 때 소비자의 분노를 사지 않는 방법도 모색할 수 있습니다. 우버가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을 올리는 모델을 썼다가, 곤란해진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수요가 많아지더라도, 차량 이용료를 갑자기 10배나 올린다고 생각해보세요. 경제학적으로 타당한 이유가 있더라도, 인간이라면 화가 납니다. 가격 대비 만족감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격의 상한선이라는 것이 필요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선은 정가의 3배 정도입니다."

―얼마 전에 금융 위기를 다룬 영화에 출연했다고 들었습니다.(탈러 교수는 금융 위기를 예측해 돈을 번 펀드매니저와 은행원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빅쇼트'에 특별 출연했다.)

금융 위기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 오셨는데, 비이성적인 선택들이 금융 위기를 불러왔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신가요?

"모든 경제 주체가 합리적으로 행동했다면, 주택저당증권(MBS) 같은 상품들이 마구 팔려나가 위기의 단초가 되는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공짜 점심'은 없었는데, 투자자들은 공짜인 줄 알고 행복한 마음으로 점심을 열심히 즐겼죠. 영화에서 제가 등장한 부분도 바로 파생상품을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금융시장은 절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최근 재미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2014년 12월에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펀드 상품 가격이 한 달도 되지 않아 70% 오른 적이 있습니다. 미국과 쿠바가 국교 정상화를 선언한 직후였습니다. 이 펀드 상품의 티커(일종의 종목코드)가 바로 'CUBA'였습니다. 그런데 이 펀드 상품은 전혀 쿠바랑 상관이 없었습니다. 미국 주식에 주로 투자하는 상품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름만 보고 'CUBA' 펀드에 돈을 넣었던 것입니다. 인간은 합리적인 선택을 추구하지만, 완벽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노력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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