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탈퇴 땐 영국은 유럽 잃고 국제적 역할도 잃을 것

    •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

입력 2015.03.14 03:03

[칼럼 Outside]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
유럽이 다시 한 번 동과 서로 분할됐다. 이번엔 동서를 가르는 구분선이 유럽연합(EU)이란 점이 이전과 다르다.

폴란드와 발틱 3국 등 동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의 침략적 면모를 본 뒤 EU에 더 강하게 결속되고 있다. 지리적·정치적으로 정반대에 있는 영국은 영원히 유럽을 이탈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유럽의 동쪽과 서쪽 변방에서 내려질 오늘의 결정들이 새로운 세력 균형을 이루게 될 것이다.

영국이 이탈한 이후의 유럽을 상상하긴 어렵지 않다. 독일·프랑스 축(軸)이 유럽을 통제하고, 러시아의 세력은 커지고, 미국은 힘이 빠진 영국을 제쳐 놓을 것이며, 친EU 성향의 스코틀랜드는 다시 한 번 영국에서 독립하겠다고 위협하고 나설 것이다.

실제 영국은 유럽의 성장 전략을 정하는 데 주변적 역할밖에 못 하고 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보장했던 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의 조인국임에도, 현재 우크 라이나 사태와 관련한 중요 협상에는 프랑스와 독일만이 참여하고 있다. 영국 각료들은 "유럽의 더 강력한 협력을 통해 러시아를 견제해야 한다"면서도 동시에 "그건 그렇고, 우리는 EU를 탈퇴할 수도 있다"는 상반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마셜 플랜의 설계자였던 딘 애치슨 미 국무장관은 "20세기에 영국은 제국을 잃었고, 이후 새로운 국제적 역할을 찾지 못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21세기에 영국은 유럽을 잃고, 이후 또다시 세계에서 역할을 찾지 못할 수 있다.

EU 탈퇴 비용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일자리 300만개, 2만5000여 회사, 연간 수출액 3000억달러, 그리고 4500억파운드에 이르는 투자액이 위험에 처하게 된다. 게다가 유럽 대륙에 모든 종류의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런던의 위상도 위태로워질 것이다.

세계 1위 경제 대국 미국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필요하고, 동남아 신흥국들도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이 필요하다. 영국 역시 유럽의 일원일 때 훨씬 더 강해질 수 있다.

그러나 경제적 논리만으론 고(故) 휴고 영(Young)의 말처럼 '잊을 수 없는 (제국주의 시대의 화려한) 과거와 피할 수 없는 미래 사이에 갇혀 있는' 영국인을 충분히 설득할 수 없다.

글로벌 경제의 파괴적 특성과 급속한 변화에서 기인하는 경제적 불안은 대중에게 영국이 EU에 가입하기 전 보유했던 완전한 주권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공포는 반(反)EU 성향인 영국 독립당에서 자신들을 대변해 줄 목소리를 찾아냈다. 독립당은 국민이 갖고 있는 경제적 불만을 외국인·이민자·유럽을 적대시하는 문화 전쟁으로 전환했고, 이를 통해 지지율을 끌어올려 왔다.

경제적 통계가 EU 지지파의 중요한 논리가 돼야 하지만, 그런 통계만으론 반대파를 설득할 수 없다. 우리가 주장해야 할 점은 이것이다. 영국은 유럽의 리더로 스스로를 간주할 때 최고의 위상을 갖는다는 것이다. 한때 유럽 대륙의 반(反)파시즘 투쟁을 이끌고, 민주주의적 열망을 지원하고,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에 대한 유럽 대륙의 대응을 주도했던 것과 같이 영국은 유럽 내부에서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영국이 가장 빛났던 때는 사람들을 한데 끌어모으고, 의제를 수립하고, 영국의 가치를 진흥시키고 변화를 주도할 때였다. 그때야말로 영국은 잊지 못할 과거를 떠나보내는 동시에 피할 수 없는 미래를 끌어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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