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 맺었다가 죽이고… 아즈텍 개미에게서 인간 삶을 봤다

입력 2015.03.14 03:03

[지식콘서트] 최재천 교수 '생명,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上)

위클리비즈는 재단법인 '플라톤 아카데미'와 함께 '인문학 아고라: 아름다운 삶과 죽음'이란 주제로 석학들의 강의를 연재한다. 그 첫 회로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사진)이 '생명,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란 제목으로 한 강연을 요약해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최재천 교수
조선일보 DB

저는 사실 요즘 좀 정체성 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저는 자연과학자입니다. 근데 왜 자꾸 저를 인문학 강좌에 부르는지 이해가 잘 안 돼서요(웃음).

그런데 자연과학은 사실 인문학입니다. 한국에선 자연과학이 이상하게 공대 근처에 붙어 과학기술이라는 말이 흔히 쓰이고, 마치 과학이 기술을 위한 무슨 형용사처럼 되어 있는데 그건 아니거든요. 인문학이 질문하는 학문이라고 하면, 기술은 답을 찾아내는 분야겠죠. 근데 자연과학도 답을 찾아낸다기보다는 오히려 질문하는 학문입니다.

오늘 강의 제목을 '생명,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라고 붙였는데, 먼저 제 얘기를 조금 들려 드릴까 합니다. 제가 어쩌다가 자연과학자가 됐는지, 또 인문학과 이렇게 손을 잡을 수밖에 없는지 말입니다.

저는 어려서 시골에서 컸는데, 그냥 자연의 품에서 노는 게 정말 좋았습니다. 저는 어려서 경포대 바로 아래 안목 해변이란 벽촌에서 컸는데, 제가 가장 많이 바닷물에 첨벙거리고 논 데가 요즘은 어마어마한 커피 마을이 됐더라고요.

저는 생명의 아름다움을 시로 읊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중학생 시절에 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어느 날 친구들 따라 백일장에 갔다가 시 부문 장원을 하고 말았어요. 그러고 나니까 착각을 하기 시작하더라고요. 전교생 앞에서 교장 선생님이 금메달을 목에다 걸어주면서 "시인 최재천이 탄생했다" 이러니까 '나는 아마 시인이 되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나 보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런데 저는 교육제도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습니다. 문과와 이과를 나눠서 가르치는 지구 상의 거의 마지막 나라가 우리나라인데, 그 이상한 구조의 희생물로 제가 이과로 배정받은 겁니다. 당시는 모두 이과 가던 시절이라 학교가 정한 대로 배정받아서 어쩔 수 없이 이과생이 됐습니다.

고등학교 입학하자마자 교장 선생님한테 쳐들어가서 "교장 선생님, 새로 부임하셔서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제가 문과 0순위입니다. 제가 문과를 안 가면 우리 학교에서 문과 갈 놈이 없습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3년 동안 교장 선생님이 저를 문과로 안 옮겨주셔서 할 수 없이 과학자가 됐습니다.

아마 제가 과학자로서 재질은 좀 부족한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서 과학자로서 인생을 사는 데는 좀 힘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때를 못 잊어서 과학자로 살면서 한 발을 늘 인문학에다가 집어넣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근데 참 고맙게도 세상이 변해주더라고요. 생각해 보면 저는 변한 게 없는데, 세상이 변해서 이제는 학문을 넘나드는 게 더 큰 덕목인 세상이 되었습니다.

줄이 짧은 길을 가라.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여러 곡절을 겪고 대학에 들어가 생물학자가 되겠다고 결심을 하게 됩니다. '생명의 속살을 파헤치자'고 생각한 거죠. 그리고 서울대 생물학과 대학원에 진학해서 처음 한 게 그야말로 생명의 속살을 파헤치는 쥐 해부였습니다. 하루에 20마리씩, 1년을 꼬박 했습니다. 얼마나 빨랐으면 제 친구들이 옆에서 시계로 재곤 했는데, 3분 안에 해치웠습니다. 근데 그 일을 하면서 늘 마음에 걸리는 게 뭐였느냐면 생명을 연구한다고 그랬는데 왜 이렇게 생명을 계속 죽여야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쥐를 잡다가 한 마리를 놓쳤어요. 그 녀석이 도망을 가서 다음 날 점심때 책상 밑에서 기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잡았어요. 이놈은 이미 호르몬 스케줄이 다 망가져서 실험용으론 부적합했고, 그렇다고 관악산에 풀어놓을 수는 더욱 없는 겁니다. 그러면 죽어버리니까요. 그러니까 그냥 죽여서 처치해야 되는 거죠. 그런데 제가 웬일인지 그때 쥐의 꼬리를 잡고 벌벌 떨었습니다. 그래서 제 친구가 대신 죽여줬습니다. 그 순간 저는 결심했습니다. '죽이는 일은 안 하고 싶다.'

그래서 미국 유학을 가서 자연을 있는 그대로 연구하는 생태학을 전공하기로 했습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새들의 몸에 붙어사는 기생충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고, 하버드 대학으로 박사 학위를 하러 갔는데 작은 곤충인 민벌레를 연구했습니다. 몸길이가 2㎜밖에 안 되고, 썩어가는 나무껍질 밑에서 사는 놈들입니다.

제가 민벌레를 연구한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당시 개미나 벌이 어떻게 그렇게 복잡한 사회를 구성하고 살 수 있게 됐느냐에 대한 연구는 상당히 많이 진전됐는데, 개미와 비슷하지만 많이 다른 흰개미가 왜 사회성 곤충이 됐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아이디어가 없던 시절이었어요. 근데 민벌레가 흰개미랑 굉장히 가까울 수 있다는 생각에 개미의 사회성 연구를 위해 민벌레를 연구하게 됐습니다. 참 재미있는 게, 제가 이 연구를 시작한다고 발표하는 순간 제가 세계 1인자가 되더라고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도 연구하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혹시 진로를 걱정하는 젊은 분들이 있으면 한 번쯤 생각해 보세요. 만약 내가 좋아하는 일이 있어 가서 줄을 섰는데, 내 앞에 아무도 없다고 하면 어떨까요? 요즘 그러면 다들 그렇게 불안해해요. 인기 있는 분야에 내가 서 있지 않다는 것 때문에 불안해하는데, 그건 불안해할 게 아닙니다. 그게 얼마나 신나는 일인 줄 아십니까? 세상이 변해줘서 내가 줄을 선 분야가 뜨기 시작하면 나는 그냥 졸지에 세계 최고 권위자가 되는 겁니다. 줄이 짧으면 좋은 거예요.

아즈텍 개미
최재천 교수 제공

아즈텍 개미에게 인생을 배우다

하버드 유학 시절 제 지도교수님들인 에드워드 윌슨, 베르트 횔도블러 두 분이 세계 개미 연구의 1·2인자였어요. 그러다 보니까 민벌레를 연구하던 저도 어쩔 수 없이 개미 연구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중앙아메리카 코스타리카의 몬테베리데 고산 지대에서 아즈텍 개미라는 걸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이 개미가 얼마나 신기한 개미냐 하면, 보시는 대로 까만 개미와 붉은 개미가 이렇게 같이 있어요. 둘은 분명히 다른 종인데, 살아남기 위해서 여왕끼리 동맹을 맺습니다. 혼자서 일개미를 키워서는 다른 개미 왕국과의 전쟁에서 이겨낼 방법이 없기 때문에 가능하면 많은 여왕개미가 손을 잡고 한꺼번에 더 많은 일개미를 순식간에 만들어냅니다.

이 얘기가 얼마나 신기한가 이야기를 하는데, 느낌이 잘 안 오시는 것 같아요. 제가 지금 얘기하는 게 위나라와 촉나라가 손을 잡았다는 게 아닙니다. 위나라와 침팬지 나라가 손을 잡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이 순간까지 종이 다른데 협업을 하는 케이스는 이게 유일한데, 제가 밝혀낸 겁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렇게 협업을 하고 나서도 나중에 천하를 평정하고 나면 반드시 그동안 동맹을 맺었던 모든 여왕이 전쟁을 벌여서 다 죽고 한 마리만 살아남습니다. 이게 어떻게 보면 우리 지구의 삶인 것 같아요. 때로는 협동하고, 때로는 물리치고, 때로는 경쟁하고, 이러면서 어떻게든 내가 살아남아야 되는 이런 현실 말입니다. 이 연구를 하면서 저는 참 많은 걸 배웠습니다.

제가 이런 여러 일을 쭉 하고 살면서 너무 바빠서 입버릇처럼 "아, 저 귀양 좀 보내주세요"란 얘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진짜 저를 재작년에 귀양 보내 주시더라고요. 제가 지금 국립생태원 초대원장이 돼서 서울에서 3시간 걸리는 충남 서천에 가 있습니다. 정말 귀양을 간 것 같습니다.

유전자 관점에서 보면 지구 상 모든 생물은 연결돼 있다

귀양가면 하고 싶은 일이 있었습니다. 꼭 쓰고 싶었던 책을 쓰는 것입니다. 제목이 '생명'이란 책입니다. 제가 평생 추구했던 화두인데, 생명을 제가 한 10년 전 우리 사회에 화두로 던진 통섭의 관점에서 한번 써보고 싶은 겁니다. 오늘 제가 그동안 써온 내용을 몇 가지만 공유하고 싶습니다.

제가 생명에 대해서 그동안 쭉 공부하면서 어느 순간 나름대로 큰 깨달음을 얻은 게 하나 있는데요.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속성이 하나 있습니다. 죽음입니다. 참 아이러니하죠. 생명의 한계성이 생명의 가장 보편적인 특성이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 얘기를 조금만 다른 각도에서 볼까요. 여러분이 걸어다니는 닭을 보면, 그 생명의 주인은 닭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닭은 달걀이 더 많은 달걀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제작해낸 기계일 수 있습니다. 닭이 달걀을 낳는 게 아니라, 달걀이 닭을 만들어 낸 다음에 더 많은 달걀을 만들어 내라고 부추기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겁니다. 이 얘기는 영국 극작가 새뮤얼 버틀러가 한 말입니다.

유전자 관점에서 생명을 바라보면, 태초에 생명의 늪에서 우연히 자기를 복제할 줄 알았던 어떤 화학 물질이 있습니다. DNA 아니면 RNA입니다. 그런 유전물질은 뭔가 생각이 있는 건 아니고, 그저 똑같이 생긴 물질을 계속 복제하는 일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생명을 만들어내서 오늘날 이 어마어마한 생명계가 만들어진 겁니다. 그렇게 따지면 태초에 생명의 늪에서 탄생한 그 DNA는 지금도 죽지 않고 계속 이어져 온 겁니다. 박테리아를 만들다가 오징어를 만들다가 늑대를 만들다가 사람을 만들고 하면서, 여러 종을 만들어서 복제 실험을 지금껏 하고 있는 겁니다. 그 실험이 안 끝났습니다. 태어나서 아직도 죽지 않은 그 친구의 한 삶을 우리가 지금 그냥 보고 있는 겁니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그 실험은 끊이지 않고 계속된 겁니다. 그렇다면 생명은 한계성도 지니지만, 영속성을 지닌다는 겁니다. 한 번도 끊이지 않고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내려왔다는 겁니다.

이 영속성을 또 다른 각도에서 보면, 지금 지구에 존재하는 이 많은 생물은 따지고 보면 전부 조상이 하나라는 거죠. 지금 우리는 전부 연결돼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홀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나와 개미, 은행나무가 모두 거슬러 올라가면 한집안에서 왔다는 겁니다. DNA 관점에서 볼 때는 인간이 성공해서 DNA를 많이 복제해주나, 개미가 성공해서 DNA를 많이 복제해주나, 아니면 병원균이 창궐해서 DNA를 많이 복제해주나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DNA 입장에서 보면 모든 게 다 연결돼 있다는 겁니다.

생명은 태초에 하나로부터 전부 갈려 나온 겁니다. 생명은 일원성을 지니는 겁니다. 이 부분이 제가 평생 연구하고 있는 찰스 다윈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가장 큰 교훈 중 하나입니다.

저는 이 생각을 할 때마다 어떤 감정이 드느냐 하면, 지금 우리 인간이 자행하고 있는 이 어마어마한 환경 파괴, 생명 파괴가 결국 가족을 죽이고 있는 일이 아니냐는 겁니다. 과연 우리 인간에게 누가 이런 권리를 줬을까, 한 번쯤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되는 것 아닐까요. 따지고 보면 우리가 우리 생명 가족 중에 제일 막둥이이니까요.

생명은 일원성을 가질 뿐만 아니라 경이롭습니다. 오늘 강의 제목은 하버드대학 고생물학자 스티븐 J 굴드가 쓴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에서 따왔는데, 그 책에서 그는 굉장히 흥미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만일 지구의 역사를 다큐멘터리로 찍어 놨는데, 시사회를 하다 보니 마음에 안 든다. 그래서 감독이 다시 찍자고 해서 태초부터 다시 찍었을 때 맨 마지막 장면에 인간이 다시 등장할 확률이 얼마냐"라고요. 그리고 스스로 답을 합니다. "0이다." 인간은 어쩌다 보니까 우연의 우연의 우연의 우연의 결과로 태어난 겁니다. 여러분이 지금 이 순간 이곳에 있는 건 어마어마한 확률입니다. 일단 이 정도만 말씀을 드려도 생명이라는 게 그냥 단순한 게 아니구나 하는 걸 느끼실 겁니다.

(하편은 다음 주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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