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민첩하게… 단, 치밀한 전략을 세운 후에

입력 2015.03.14 03:03

[이한우의 大學衍義 리더십]
일을 두려워하라
일 자체를 두려워하란 것이 아니고 만반의 준비하라는 뜻
할 때는 민첩하게
먼저 할 일과 뒤에 할 일, 근본과 곁가지 알면 일처리 신속해져

이한우 문화부장
이한우 문화부장
지난번 사람을 보는 중요한 관건의 하나가 바로 일[事]이라고 했다. 아버지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단행한 1388년 5월 22일 직후 그 소식이 개경의 이방원에게도 들려왔다. 당시 22세로 전리정랑(조선의 이조정랑)이던 이방원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집으로 가지 않고 곧장 친모 한씨와 계모 강씨가 있던 포천으로 달려가 두 어머니를 모시고 아버지의 근거지인 함흥으로 향한다. 철원을 지나 함흥으로 가던 도중 이천이란 곳에서 이방원은 자신을 따르던 장정 100여명에게 이렇게 말한다.

"최영은 일을 모르는 사람이니 반드시 나를 추격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최영은 추격하지 않았다. 결국 이방원 일행은 함흥까지 가지 않고 이천에 7일 동안 머물다가 상황이 종료됐다는 소식을 듣고 6월 초 개경으로 돌아온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이방원의 말대로 '일을 모르는 사람' 최영은 결국 패해 비참한 최후를 맞은 반면, '일을 아는' 자신은 훗날 조선 개국이라는 거대한 사업을 일으키게 된다.

일은 공자가 사람을 살피는 가장 중요한 실마리다. '논어' 학이편에서 공자는 "일을 할 때는 민첩하게 하고 말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敏於事而愼於言]"고 말한다. 또 이인편에서는 "말은 어눌하려고 애쓰고 행동은 민첩해야 한다[欲訥於言而敏於行]"고 말한다. 일은 곧 행동이다. 둘 다 민첩함[敏]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민첩함이라고 해서 그냥 잽싸다는 뜻이 아니다. 일에 임하는 태도와 관련해 공자는 학이편에서 경사(敬事)라고 했다. 기존 번역서들은 이를 '일을 공경하라'는 식으로 번역하는데 이렇게 해서는 그 말의 본 뜻을 알 길이 없다. 오히려 '매사에 임할 때 조심하고 삼가는 태도로 임하라'고 해야 그나마 본 뜻에 가깝다. 그리고 정약용의 도움을 받으면 훨씬 분명해진다. "경사(敬事)란 일의 처음과 끝을 생각하고 그 폐단을 미리 헤아리는 것이다." 즉 일이란 먼저 그 방향과 경중을 조심해서 살핀 다음에 그것이 정해지면 신속하게 진행하는 것이다.

삽화
이방원이 최영을 향해 "일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평했던 말 속에는 바로 이 같은 뜻이 들어 있다. 신속하게 한다고 해서 방향과 경중도 모르고 달려드는 사람은 일을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망치는 사람이다. '논어' 술이편에서 공자는 자로가 자신의 용맹을 자랑하자 은근히 비판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 잡고 맨몸으로 강을 건너려 하여 죽어도 후회할 줄 모르는 사람(자로)과 나는 함께할 수 없을 것이니, 반드시 일에 임하여서는 두려워 하고[臨事而懼] 치밀한 전략과 전술 세우기를 즐겨 하여 일을 성공으로 이끄는[好謀而成者] 사람(안회)과 함께할 것이다."

일에 임해 두려워 하는 것이 바로 경사(敬事)이고, 치밀한 전략과 전술 세우기를 즐겨 하여 일을 성공으로 이끄는 것[好謀而成者]이 바로 민첩함[敏]이다.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일에 임해 두려워 한다는 것은 일을 두려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이 혹시라도 실패할까봐 두려워 하여 만반의 태세를 갖춘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 자체의 성격을 잘 알아야 한다. 그 결정적인 실마리는 '대학'에 나온다.

"모든 일에는 근본과 곁가지가 있고 모든 일에는 끝과 시작이 있다[物有本末 事有終始]. 진덕수는 '대학연의'에서 물(物)은 곧 사(事)라고 말한다. 즉 국내 번역서들이 모호하게 옮겨 놓듯이 사물이나 물건이 아니라 일[物=事], 즉 사람의 일로 보고서 인재를 보는 법[辨人才]으로 풀었다는 뜻이다. 결국 일[物=事]은 사람의 일, 즉 인사(人事)인 것이다.

다시 '대학'이다. 일에는 근본과 곁가지, 즉 중히 여겨야 할 것과 가벼이 여겨도 되는 것[重輕=輕重]이 있기 때문에 이것부터 가려야 한다. 최영은 이성계의 회군 소식이 도착하자마자 이성계를 비롯한 주요 장군의 가족들부터 인질로 잡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영은 용자(勇者)였는지는 모르지만 지자(知者=智者), 즉 일과 사람을 아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일에는 끝과 시작이 있다. 그래서 '대학'은 먼저 해야 할 것과 뒤에 해야 할 것을 알아야 한다[知所先後]고 말한다. 이런 사람은 일을 민첩하게 처리할 수밖에 없다. 말도 신중하게 할 것이다.

그래서 민어사이신어언(敏於事而愼於言), 욕눌어언이민어행(欲訥於言而敏於行), 경사(敬事), 임사이구(臨事而懼), 호모이성자(好謀而成者), 물유본말(物有本末), 사유종시(事有終始), 지소선후(知所先後)는 사람을 살피는 핵심 개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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