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한 인간'의 기준이 바뀐다

입력 2016.12.17 03:00

로봇이 절대 대신할 수 없는 것
함께 울고 웃는 '共感 능력' 가졌나

제프 콜빈 '인간은 과소평가되었다' 저자
제프 콜빈 '인간은 과소평가되었다' 저자
미국 재무장관과 하버드대 총장을 역임한 로런스 서머스는 10년 전만 해도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신기술에 반대하는 어리석은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동화가 모든 일자리를 없앨 것이며 결국 사람이 할 일은 남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죠. 사람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들의 주장은 결코 사실이 아닙니다. 자동화는 인류에게 축복입니다."

그러나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던 서머스 전 장관은 지난해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사뭇 다른 견해를 내놓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문제가 이토록 복잡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기술의 발달이 많은 중산층 노동자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인공지능(AI)과 로봇의 등장으로 인류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동안 사람 일을 편리하게 도와준 기계가 이제는 일자리를 빼앗는 셈이다. 지금까지 기술 발달은 인류에게 축복이었는데, 이제는 왜 재앙으로 다가오는 걸까. 인류가 앞으로 굶어 죽지 않으려면 어떤 능력을 갖춰야 할까. 과연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분야가 있을까. 미국 종합 경제지(誌) 포천의 편집장 제프 콜빈(Colvin)은 상호작용을 통한 공감 능력은 AI나 로봇이 결코 따라갈 수 없는 분야라고 했다. 그는 지난 10월 국내에 출간된 '인간은 과소평가되었다'(원제 Humans Are Underrated)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기계가 대체 불가능한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상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위로해주고, 같이 기뻐하는 공감 능력은 인간만이 갖고 있다. 어떤 사람도 장례식장을 방문한 로봇으로부터 위안을 얻진 못할 것이다. 화가 난 고객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마음을 달래는 것도 인간만이 가능한 일이다."

콜빈 편집장은 전화 인터뷰에서 "인공지능의 등장에 겁먹을 필요는 없다"며 "기계를 이기려 하거나 인간보다 못한 부분이 무엇인지 찾기보다는 인간의 본성에 집중하라"고 조언했다.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일이 있는가.

[Weekly BIZ]  '우수한 인간'의 기준이 바뀐다
Getty Images 이매진스
"거의 없다고 본다. 컴퓨터는 2년마다 2배씩 성장한다. 이 힘이 어떤 것인지 사람 머리로는 가늠하기 어렵다. 그래서 컴퓨터가 할 수 없는 일을 찾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찾아봤자, 몇 년 뒤에 상황이 또 달라질 것이다.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는 과학기술 속에서 인간의 가치를 찾으려면 기계를 이기려는 기존 접근 방식에서 벗어나 우리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컴퓨터가 습득할 수 없는 기술이 앞으로 가치가 높아진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런 기술이 어디 있겠는가? 1972년 MIT의 컴퓨터공학 교수는 체스 프로그램이 평범한 수준을 넘어서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체스 컴퓨터는 1997년 체스 세계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를 이겼다. 경제학자 프랭크 레비는 운전하려면 감각기관을 통해 방대한 정보를 처리해야 하며 1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대단히 복잡한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컴퓨터에 운전을 맡기기는 극히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6년 뒤 구글은 자율주행차를 선보였다. 역사가 보여주듯, 컴퓨터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생각 자체가 위험한 발상이다."

―기술의 발달이 노동자에게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확신하나.

"그렇다. 그동안 로런스 서머스를 비롯해 경제학자들은 자본과 노동을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로 봤다. 자본은 몇몇 노동자를 쫓아내기도(대체하기도) 하지만, 신규 자본을 활용해 새롭고 더 생산적인 일자리를 창출했다. 최근 서머스 같은 학자들은 새로운 가능성을 제기했다. 사람이 하는 일을 기계가 정확히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어는 '정확히'라는 단어다. 구글의 자율주행차는 사람을 보완하는 것이 아니다. 자율주행차는 '정확히' 운전자들이 하는 일을 해내기 때문에 운전자들을 대체한다. 로봇공학과 인공지능은 지금까지 있었던 변화 방식과는 완연히 다르다. 인공지능 기술은 다재다능하며 그 능력이 갈수록 강력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이 기계에 일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인간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즉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서 가장 많이 얻고자 하는 것을 제공하는 능력이 앞으로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다."

―인간은 다른 인간에게서 무엇을 얻고자 하나.

"공감이다. 정확하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일은 어차피 기계가 충분히 잘해낼 것이다. 이 때문에 기계보다 더 이성적인 업무를 인간이 해주길 바라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인간적인 일, 합리적이지 않고 주관적인 일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분야다. 예컨대, 공감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불쌍한 이들을 안타까워하고, 누가 다치면 내가 아픈 것처럼 몸을 움츠리고, 행복한 사람을 보면 웃게 된다. 또 데이터를 기반으로 추출한 예측이 사람 의견보다 정확하더라도, 우리는 사람인 전문가의 판단을 듣고 싶어 한다. 인간의 본성은 합리성에 기반하지 않는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사회적 관계가 없으면 생존하거나 행복을 찾거나 생산적 존재가 되지 못한다. 공감은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 요소다."

―앞으로 가장 인간적인 사람이 인재로 평가받는다는 말인가.

"그렇다. '우수한 인간'의 뜻이 바뀔 것이다. 과거에는 기계 같은 기능을 하는 사람을 우수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인간다운 면에서 뛰어나고, 철저히 인간다운 사람이 되어야 우수한 결과를 달성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뛰어난 사람이 되는 과정은 인간의 지식보다는 인간의 본성적 모습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공감 능력은 이미 직장에서 중요도가 커지고 있다. 전 세계의 고용주들은 공감할 줄 아는 직원을 더 많이 필요로 한다. 실제로 미국 온라인 구직 사이트 게시판을 조사한 결과 연봉이 10만달러(약 1억원)가 넘는 구인 광고 중에 공감 능력을 요구하는 경우가 1000건 이상이었다. 그런 능력을 강조하는 기관들이 자선 활동 단체도 아니다. 맥킨지, 바클레이스 캐피털, 화이자 등 세계 굴지의 기업이었다."

―실제로 공감 능력이 기업의 매출 확대로 이어진 사례가 있나.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콜센터 상담 직원은 일반적으로 컴퓨터 모니터에 뜨는 매뉴얼의 원고대로 고객을 응대하게 되어 있다. 하루는 부서 책임자가 콜센터 직원들의 모니터에 고객 응대 매뉴얼 대신 고객 정보가 뜨게 하고 그들이 재량껏 고객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했다. 부서 책임자는 '상담 직원이 진심으로 대하는지 고객들은 금세 알아챈다'고 말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는 이후 직원을 뽑을 때 새로운 기준을 적용했다. 콜센터 경험이 있는 지원자보다 고급 호텔이나 리조트에서 일한 경력이 있어서, 인간관계 맺기를 좋아하고 고객과 공감하고 가까워질 수 있는 사람들을 뽑았다. 놀랄 것도 없이 그런 변화는 좋은 결과를 낳았다. 영국 과학 기술 평론가 벨린다 파머에 따르면 공감을 잘하는 웨이터들은 팁을 20% 가까이 더 받았으며, 공감 능력이 있는 채권 추심원들은 대출 채권을 두 배나 회수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실제로도 레스토랑에 가면, 뛰어난 웨이터는 손님이 짜증 났는지, 피곤한지, 어리둥절해하는지, 신이 났는지 파악하고 그에 맞춰 응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영원토록 인간이 누릴 능력이다."

놓치면 안되는 기사

팝업 닫기

WEEKLY BIZ 추천기사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