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보다 품질" 타협 없는 창업 마인드에 1400억원이 몰렸다… 커피 혁명

입력 2016.11.26 03:05

[Cover Story] 커피 혁명 일으키는 '블루보틀' 창업자 제임스 프리먼

해마다 10만㎞씩 순회공연을 다니던 클라리넷 연주자 제임스 프리먼(Freeman·49)에게 2001년 위기가 찾아왔다. 갈수록 공연이 지겨웠고, 더 이상 음악을 하고 싶지 않았다. 평소 커피 원두와 추출 도구를 사 모을 정도로 커피에 관심이 많았던 프리먼은 교향악단을 그만두고 커피 사업에 뛰어들었다. 샌프란시스코 북쪽 오클랜드에 작은 창고를 빌리고 커피 원두를 볶는 로스팅 기계를 장만했다. 커피 원두(생두)는 산지(産地)는 물론 로스팅하는 온도와 시간, 추출하는 방법에 따라 그 맛이 크게 달라진다. 그는 하루종일 몇 초 간격으로 로스팅 시간과 온도를 달리하며 자신만의 커피 개발에 몰두했다.

'파란 병' 블루보틀 로고(좌). 제임스 프리먼 블루보틀 창업자(우)
근처에 파머스마켓(농산물 직거래 장터)이 열리는 토요일엔 손수레에 직접 만든 커피 추출기(드립바)를 싣고 나갔다. 주문을 받으면 그때부터 원두를 분쇄하고 추출 도구를 이용해 한 번에 한 잔씩 천천히 커피를 내렸다. 커피를 주문하면 1분 안에 받는 것에 익숙했던 소비자들은 그를 미쳤다고 했다. 하지만 프리먼의 커피를 한번 맛본 사람들은 다시 그를 찾았다. 차츰 프리먼의 커피 수레 앞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기 시작했다. 수레를 끌며 로스팅에 매진하던 프리먼은 2005년 샌프란시스코 해이즈밸리의 친구 집 차고에 첫 매장을 냈다. '커피 업계의 애플' '스타벅스를 능가할 차세대 커피'로 불리는 '블루보틀(Blue Bottle)'의 시작이었다.

당시 해이즈밸리는 치안이 나빠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꼽혔다. 그러나 블루보틀이 문을 연 후 커피를 마시려는 사람들이 매일 몰리면서 거리가 깨끗해지고 크고 작은 패션 상점들이 들어섰다. 블루보틀이 입맛 까다로운 샌프란시스코의 젊은 벤처기업인들이 즐기는 커피로 알려지면서 실리콘밸리의 투자자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블루보틀이 2008년부터 지금까지 트루벤처스·피델리티·모건스탠리·구글벤처스(GV) 등으로부터 받은 투자금은 1억2000만달러(약 1400억원)에 이른다. 식음료 업체로는 이례적으로 큰 금액이다. 트위터 공동 창업자 에반 윌리엄스, 인스타그램 창업자 케빈 시스트롬 등 내로라하는 IT 거물들도 투자자로 참여했다.

토니 콘래드 트루벤처스 파트너는 "스타벅스가 마이크로소프트라면, 블루보틀은 '커피계의 애플'"이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블루보틀이 커피산업에 '제3의 물결'을 일으켰다"고 분석했다.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들이 탄생하는 실리콘밸리에서 투자 가치를 인정받은 블루보틀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콘래드 파트너를 포함한 여러 투자자는 "프리먼의 남다른 창업 마인드를 보고 투자했다"고 입을 모은다. 메이커봇(3D 프린팅), 핏비트(손목형 스마트 기기) 같은 성공한 IT 벤처의 창업가에게서 볼 수 있는 완벽주의와 디테일(세부 사항)에 대한 집착을 프리먼에게서 봤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은 혁신적인 기업을 발굴할 때 어떤 사업을 하느냐보다 리더의 창업 마인드를 더 중요하게 본다. 더 높은 경지에 오르려는 집념과 작은 성공에 안주하지 않는 프리먼의 고집에 투자한 셈이다. 그래서 투자자들은 그를 '광적인 완벽주의자(control freak)'라고 부른다. 샌프란시스코 해이즈밸리의 블루보틀 1호점에서 창업자인 제임스 프리먼 최고경영자(CEO)를 만났다. 그는 "회사 규모나 매장 수보다 품질 향상을 먼저 생각한다"며 "매일 더 좋아져야 한다는 강박감이 나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블루보틀 외
―기술 벤처도 아닌데 실리콘밸리 투자자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받았다. 비결이 뭔가.

"품질에 집착하는 내 고집 때문인 것 같다. 토요일마다 혼자 파머스마켓에 수레를 끌고나가 커피를 팔 때부터 세운 원칙이다. 품질은 더 좋아지거나 더 나빠지거나 둘 중 하나다. 내 커피는 매일 더 좋아져야 한다는 생각을 직접 보여준 것이 투자자들을 움직인 것 같다. 지금까지 투자금을 받을 때마다 품질 향상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투자자들은 품질 투자가 당장의 이윤보다 장기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내 말을 믿어줬다. 소비자가 블루보틀 커피를 주문하고 맛을 보기까지 전체 과정을 직접 통제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나는 불안해진다. 지금도 여러 매장에 갈 때마다 고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

대부분 커피 회사는 직접 볶은 원두를 중소 카페에 대량으로 공급하는 도매 사업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한다. 블루보틀 역시 원두 도매로 돈을 벌었다. 그러나 지난해 6월 프리먼 창업자는 주요 수익원인 도매 사업을 중단했다. 일반적인 경영 상식과 완전히 반대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수익이 안정적인 원두 도매 사업을 중단한 이유는 무엇인가.

"커피에 대한 신념을 지키기 위한 결정이었다. 우리처럼 원두를 정성스럽게 로스팅해서 카페에 도매로 공급하는 인텔리젠시아라는 커피 업체가 있었다. 그런데 한 카페에 갔다가 인텔리젠시아 커피를 팔면서 메뉴판에 철자를 잘못 쓴 것을 봤다. 그 순간 깨달은 것이 있었다. 도매 사업의 가장 큰 위험은 블루보틀의 이름으로 팔리는 제품을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매 사업의 수익성이 크지만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남들 보기엔 실용적이지 못하고 이상한 판단일 것이다. 하지만 블루보틀을 평범한 기업처럼 경영하고 싶지 않았다. 경영대학원에서 많이 배우는 일반적인 사업 원칙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젊은이들이 블루보틀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우리가 일반적인 커피 회사와 분명히 다르고, 평범한 것을 지향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내게 비즈니스 상식이 있었다면 결코 블루보틀을 지금처럼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해선 안 돼' '이렇게 느리게 작업하면 이윤을 낼 수가 없어'라고 스스로 발목을 잡았을 것이다."

블루보틀
블루보틀의 원두 로스팅 장면. /클레이 맥라클런
블루보틀은 가맹점(프랜차이즈)을 내고 싶다는 대기업들의 제안이 들어와도 아직까지 가맹점을 내지 않았다. 일본 도쿄 매장 5개를 포함한 총 30개 매장은 모두 블루보틀이 직접 자금을 대고 운영한다. 직원도 직접 채용한다. 바리스타들은 예술학교 입학 면접처럼 프리먼 창업자 앞에서 커피를 추출하는 모습을 여러 번 시연해야 한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블루보틀은 커피의 품질을 포기하거나 대규모 공장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고도 (회사가)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분석했다.

―대기업에서 프랜차이즈를 내고 싶다는 제안을 해도 거절한 이유는.

"기업과 많은 대화를 하고 있지만 항상 만족스럽지 못하다. 블루보틀이 여러 벤처캐피털을 통해 투자를 받으면서 경영대학원 출신 직원들이 합류했다. 그들은 블루보틀이 도쿄에 진출할 때 '일본 사람들은 섭취량이 적으니 컵 사이즈를 작게 만들자. 쿠키도 작게 만들자. 서서 커피 마시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으니 테이블과 의자도 많이 설치하자'는 의견을 냈다. 나는 반대했다. 일본 고객들이 블루보틀 최고의 모습을 그대로 경험하길 원한다고 생각했다. 일본 내 다른 커피숍들의 모습을 모방하는 것은 블루보틀이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니다."

―미국 대도시와 일본 도쿄 등에 30여개 매장을 두고 있다. 커피 품질을 어떻게 관리하나.

"대형 커피 회사는 품질관리자가 판매담당자에게 보고하고, 판매담당자는 최고재무책임자나 최고경영자에게 보고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조직은 직원들에게 품질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매출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블루보틀은 품질관리자가 최고경영자인 나에게 직접 보고한다. 최고 의사 결정권자가 품질을 가장 우선시한다는 점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직원들도 품질에 관해선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흔히 기업이 성장하면 품질을 포기하거나 타협한다. 그런 위험을 막기 위해 품질에 대한 독립성과 권한 분립이 필요하다."

실리콘밸리 소비자들 사이에 블루보틀은 디자인과 마케팅 측면에서 애플과 자주 비교된다. 파란색 병 그림인 블루보틀 로고는 애플 제품의 사과 로고처럼 앞서가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제임스 프리먼
제임스 프리먼 블루보틀 창업자
도쿄(東京) 매장과 올해 UC버클리 앞 카페는 전면 유리와 원목 가구, 단순한 내부 디자인이 애플 스토어를 연상시킨다는 평가를 받았다. 블루보틀 투자자들은 소비자들의 기호가 점점 더 다양해지고 고급 커피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이 시장이 크게 성장할 것으로 본다.

―지금은 스페셜티 커피(원두의 고유한 맛을 살린 커피)가 흔하지만 2005년 첫 매장을 열었을 땐 달랐을 것 같다.

"그렇다. 당시에는 샌프란시스코 카페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방식이었다. 먼저 메뉴를 단순화해 6가지 메뉴로 시작했다. 커피를 추출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메뉴 가짓수는 줄이고 품질을 높이는 데 집중했다. 커피 컵 사이즈도 한 가지로 통일했다. 대다수 커피 체인점은 컵 크기를 소·중·대로 나눠서 판다. 일반적인 커피 비즈니스 관점에서 보면 당연할 수 있지만 나는 양보다 질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또 커피의 가장 순수한 맛을 살리기 위해 첨가물을 넣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지금은 미국 어디서든 이런 방식으로 커피를 추출해서 파는 매장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당시엔 색다른 방법이었다."

―블루보틀을 '차세대 스타벅스'라고 전망하는 이들도 있는데.

"스타벅스는 전 세계 체인점이 2만3000개나 된다. 블루보틀은 30개밖에 안 된다. 스타벅스 같은 대형 커피 체인점 덕분에 커피 시장이 이렇게 커졌다. 하지만 블루보틀은 스타벅스와 완전히 다른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스타벅스에 들어가 메뉴판을 보면 커피의 가장 기본이 되는 에스프레소를 쉽게 찾기 어렵다. 블루보틀은 메뉴판 맨 위에 에스프레소가 있다. 이는 블루보틀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블루보틀과 대형 커피 회사의 근본적인 차이점이기도 하다."

―지난해 도쿄에 첫 해외 매장을 냈다. 미국 대도시 중에 진출하지 않은 곳이 많은데, 일본에 먼저 진출한 이유는.

"일본을 오가며 커피에 대해 많이 배웠다. 커피의 깊은 풍미를 표현하기 위해 기계를 쓰지 않고 손으로 직접 커피를 추출하는 것은 사실 일본 업체들이 더 잘한다. 블루보틀은 2007년부터 일본의 커피 기구와 추출 기법을 도입했다. 여기에 일본인들의 몸에 밴 친절과 직원들의 투철한 직업 정신은 미국 사람 입장에선 입이 벌어질 정도다. 일본의 찻집과 카페를 갈 때마다 큰 감동을 받는다. 배울 점이 많다고 판단해 일본에 일찍 진출했다."

프리먼 창업자는 "커피는 아무리 회사가 커도 결국은 지역 소비자를 상대로 하는 업종"이라며 "다른 나라에 진출했다고 해서 '글로벌 기업'이 된 것처럼 행동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표
―커피 사업이 로컬 업종임을 강조하는 이유는.

"미국 하원 의장을 지낸 정치인 팁 오닐은 '모든 정치는 지역을 기반으로 한다'고 말했다. 나는 이것이 커피 시장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커피숍은 인근 몇 블록 안에서 성공이 결정된다. 미국 내 다른 도시나 해외로 확장하더라도 커피숍은 결국 그 지역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업임을 잊지 말라는 얘기다."

―지금은 블루보틀 외에도 스페셜티 커피 전문 회사가 많다. 이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블루보틀이 커피 맛 다음으로 강조하는 것은 손님을 환대하는 것이다. 상당수 스페셜티 커피 카페의 직원들은 손님들이 커피에 대해 잘 모른다고 여기고 다소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블루보틀은 손님들이 커피에 대해 질문하면 친절하고 쉽게 설명하도록 직원들을 반복해서 교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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