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공감 만이 혁신?… 오너의 강력한 리더십이 더 중요할 수도

입력 2016.11.26 03:05 | 수정 2016.11.26 05:10

[6 Questions] 보텀업 의사결정 방식 혼란만
실리콘밸리·북유럽·독일 등 일부에서만 성공 사례 대부분 기업엔 안 통해

스에마쓰 지히로 일본 교토대 경제학과 교수
스에마쓰 지히로 일본 교토대 경제학과 교수. /이태경 기자
지난달 24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일본전산의 기자회견장. 이날 나가모리 시게노부 일본전산 회장은 상반기(4~9월) 실적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2020년까지 직원들의 잔업 시간을 제로(0)로 줄이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는 '두 배 일하라', '휴일에도 일하라'고 했던 그의 평소 경영 철학을 180도 뒤집는 발언이었다. 나가모리 회장은 1973년 일본전산을 창업한 이래 직원들이 회사에 몸 바쳐 일하는 것이 회사의 핵심 가치라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나가모리 회장은 "앞으로 일본전산에서 '맹렬히 일한다'는 말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도 평소 자정에 퇴근하던 습관을 고쳐 오후 7시에 퇴근하겠다고 했다. 일본전산은 지난해부터 잔업수당을 포함한 과감한 비용 절감에 나서, 올해 상반기 사상 최고 순이익 기록을 경신했다.

세계 경제 불황 속에서 부품·소재 분야 중심의 일본 교토(京都) 기업들이 내부 개혁을 거듭하며 높은 수익성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전산에 이어 정밀기기 제조업체인 시마즈제작소도 상반기에 사상 최고 영업이익과 순이익을 경신하는 등 매출 1000억엔 이상 18개 교토 기업이 모두 높은 수익성을 유지했다. 엔화 가치 상승으로 상당수 일본 기업이 고전했던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교토식 경영'의 저자 스에마쓰 지히로(末松千尋·60) 일본 교토대 경제학과 교수는 "교토 기업들의 특징은 강력한 리더십과 기업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이라며 "독보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빠른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어 대외 악재 속에서도 탁월한 성과를 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스에마쓰 교수는 도쿄(東京) 기업 분석이 주류였던 일본 학계에 '교토 기업'의 성공 사례를 소개하면서 이름을 알린 학자다. 지난달 '위클리비즈 10주년 기념 경제·경영 글로벌 콘퍼런스'에 참석한 스에마쓰 교수를 만나 저금리·저성장 속에서도 경쟁력을 잃지 않는 교토 기업들의 생존 비결을 들어봤다.

1 교토 기업의 장점을 연구한 '교토식 경영'을 출간한 것이 2002년이었다. 14년이 흐른 지금도 교토식 경영은 유효한가.

"교토 기업은 소비자 요구를 세분화하는 모듈식 경영 방식을 갖고 있다. 쓸데없이 사업영역을 확대하지 않고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사업 분야를 정해 그곳에 경영 자원을 집중하고 있다. 굉장히 세분화된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쌓아 높은 시장 점유율을 유지한다. 2002년 '교토식 경영'을 펴낼 당시에는 PC·반도체 산업에서만 이런 전략을 적용할 수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이후 자동차 등 이를 받아들인 산업이 꾸준히 늘어났다. 지금은 교토식 경영의 유효성보다는 이를 개별 기업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더 활발하다."

소통·공감 만이 혁신?… 오너의 강력한 리더십이 더 중요할 수도
/김현국 기자
2 교토 기업처럼 세분화된 시장에 집중하면 성장에 한계가 있지 않나.

"교토 기업은 일본 국내 시장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처음부터 세계 시장을 공략한다. 상당수 교토 기업은 일본이 아닌 미국에서 먼저 성공을 거뒀다. 무라타제작소의 무라타 아키라 명예회장은 1957년 미국에 건너가 판매거점뿐 아니라 공장도 설립했다. 일본 기업 최초로 모토로라, 제너럴일렉트릭(GE) 등 미국 대기업과 계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회장은 세라믹콘덴서를 보자기에 가득 담아 홀로 미국에 건너가 미국 기업의 문을 두드렸다. 텍사스인스트루먼트와 계약을 맺어 단숨에 판매망을 넓혔고, 그의 제품은 일본으로 역수입됐다. 삼코인터내셔널은 1987년 일본 벤처기업 최초로 실리콘밸리에 연구소를 설립해 현지 기업과 많은 계약을 맺어 성공했다. 호리바제작소는 197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배기가스 규제가 강화되자마자 배기가스 측정기를 팔아 큰 성공을 거뒀다."

3 교토 기업들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도 비교적 좋은 성과를 냈다. 비결은 무엇인가.

"무라타제작소·호리바제작소·오므론·교세라 등 교토 기업의 큰 특징은 강한 리더십과 기업 거버넌스(지배구조)다. 파나소닉이나 소니 등 도쿄 기업보다 의사 결정이 더 빠르다. 내부 회계 시스템도 더 엄격하다. 다수의 일본 기업은 '주먹구구식'이란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비용이나 이익을 상세하게 계산하지 않는다. 그 결과 교토 기업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실적 회복도 더 빨랐다. 승자독식과 불확실성으로 표현되는 뉴노멀 시기에 빠른 의사 결정 구조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4 교토 기업들은 모두 강력한 리더십을 갖고 있나.

"직원들에게 많은 자유를 주는 닌텐도엔 강력한 리더가 없었다. 게임 제작자의 창의력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장점이 있어, 닌텐도는 한때 성공 가도를 달린 적도 있다. 하지만 닌텐도는 스마트폰 등장에 따른 모바일 게임시장 대응에 실패하는 등 최근 수년간 문제점을 드러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닌텐도는 교토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강력한 리더가 특징인 '교토식 경영'을 하는 기업은 아니다. 교토식 경영의 대표 기업인 호리바제작소는 '직원의 개성을 존중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직원들에게 일정 수준의 자유만을 준다."

5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경우엔 자유로운 분위기가 기업의 경쟁력이라는 의견도 있는데.

"모든 조직원이 민주적으로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보텀업(상향식) 방식은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다. 직원들의 업무 몰입도가 높고 전문성을 빠르게 키울 수 있다. 그러나 상향식 조직 문화가 늘 혁신을 불러온다는 것은 착각이다. 실제로는 성공 사례가 극히 드물다. 미국 실리콘밸리와 북유럽, 독일, 네덜란드 등 일부 지역에서만 성공 사례를 찾을 수 있다. 대부분 기업에선 보텀업 방식이 오히려 혼란을 부른다. 구글조차도 돈은 많이 벌고 있지만, 의사 결정 과정에선 잡음이 많다. 일본도 과거 제조업 공장에 QC서클(품질관리 모임) 등 상향식 조직 문화가 성공한 사례가 있다. 하지만 사무직 조직에선 의사 결정이 지지부진한 탓에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보텀업 방식은 극히 일부 산업을 제외하면 대부분 기업에 적용하는 데 많은 한계점이 있다."

6 교토 기업 경영자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거의 모든 창업자와 사장이 이공계·기술직 출신이다. 도쿄 기업의 경영자 대부분이 인문 계열 출신인 것과 큰 차이점이다. 또한 교토 기업 경영자는 개성이 넘친다. 전자부품업체 롬의 사토 겐이치로는 사원 앞에 얼굴을 보이지 않는 괴짜다. 은행이나 거래업체와도 교류하지 않고, 일주일에 이틀은 오후 4시 30분에 퇴근해 곧바로 집으로 돌아간다. 호리바 마사오 명예회장은 원래 아버지를 따라 학자가 되려 했으나 1945년 일본의 패전으로 연구 설비가 미국에 압수당하자 호리바제작소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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