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發 불확실성… 기업들, 가장 잘하는 핵심 사업에 집중해야"

입력 2016.11.26 03:05

[Analysis] 2017년 경제는… 성태윤 교수 '위클리비즈 CEO클럽' 강연

성태윤 교수
이달 21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내년 1월 대통령 취임 첫날 12국이 참여하는 다자(多者) 자유무역협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취임 후 100일 동안 시행할 정책 계획을 밝힌 동영상에서 "TPP는 미국에 잠재적 재앙"이라며 "대신 일자리와 산업을 다시 미국으로 가져올 공정한 양자(兩者) 무역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미국이 참여하지 않는 TPP는 의미가 없다"고 호소했지만, 소용없었다. 트럼프가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보호무역주의가 현실화하면서 세계경제에 큰 위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금융시장에서도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트럼프의 모호한 통화정책 방향이 혼란을 키우고 있다.

트럼프는 스스로를 '저금리에 찬성하는 사람'이라고 했다가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의장을 향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위해 금리를 일부러 낮게 유지한다'고 비난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까지 알려진 그의 발언만으로는 그가 저금리 유지를 원하는지, 금리 인상을 원하는지 알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옐런 의장은 12월 금리 인상을 시사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세계경제는 어떤 모습일까.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23일 열린 '위클리비즈 CEO클럽' 강연에서 "전 세계 실물 경기 회복이 미약한 가운데 미국은 유일하게 경제 여건이 좋아졌지만 대선 이후 정책 불확실성이 커진 상태"라고 진단했다.

성 교수는 "한국 경제는 국내 경기 침체 지속과 해외 여건 악화로 어려움이 더 커지고 있지만, 현재 정책적 대응은 사실상 없는 상황"이라며 "가계와 기업 등 개별경제 주체의 위험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태윤 교수는 "미국 경기 회복에 따른 금리 인상을 앞두고 국제 금융시장에서 신흥국 중심으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해외 자본 이탈을 막기 위해 한국 통화 당국이 정책금리를 인상하거나 이자율 상승을 방치할 경우, 한국 기업의 수익성 악화와 부채 원리금 상환 압박에 따른 주택 시장 붕괴를 우려해 오히려 외국 자본이 추가 이탈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성 교수의 강연 내용을 요약해 소개한다.

1. 트럼프式 경기 부양, 毒일까 得일까

미국 실물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는 커지고 있다. 트럼프의 정책은 대규모 감세와 재정 지출 확대로 상징된다. 두가지를 함께 약속하는 것은 1980년대 초반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의 경제 정책과 유사하다. 1970년대 불황을 끝내고 1980년대 경제 번영을 이끈 레이건 전 대통령에 대한 미국민의 향수를 자극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고소득층과 중산층을 겨냥해 감세를 통한 경기 부양을 약속했다. 최고 소득세율을 기존 39.6%에서 33%로 낮추고 상속세(550만달러 이상에 최고 세율 40%)를 폐지하겠다고 밝히며 고소득층에 대한 대폭적인 감세를 예고했다. 중산층의 소득 기준 한계소득세율도 15% 내외에서 12%까지 낮춘다는 입장이다. 주요 선진국 중 가장 높은 수준(35%)인 법인세도 15% 수준까지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대규모 감세가 이뤄지면 미국 정부의 재정 부담은 커진다. 통상 이런 상황에서 공화당은 정부 지출을 줄이는 '작은 정부' 방식을 선호한다. 그러나 트럼프는 기존 공화당 성향과는 다른 대규모 재정 지출 확대를 주장한다. 특히 대규모 인프라(사회기반시설) 투자를 통한 재정 지출 확대를 강조하는데, 이는 오바마 정부와 민주당의 정책 기조와 맞닿아 있다. 2008년 미국 금융 위기 이후 오바마 행정부는 인프라 투자를 포함한 초대형 재정지출 확대 프로그램인 '미국 경기회복·재투자 법안(경기부양법)'을 성공적으로 시행했다. 현재 여야 정치권을 포함해 미국에서는 인프라 투자에 대한 정책 공감대를 얻기가 비교적 쉬운 상황이다. 구체적인 지출 방식과 대상은 갈등의 소지가 있으나, 재정 지출 확대 자체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 지출 확대 정책이 미국 경기 회복에 효과를 발휘한다 해도, 한국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크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의 기존 입장에 비춰볼 때 미국 기업 제품 사용을 의무화하는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형태의 정책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 경기 회복에 따른 한국 기업의 수출 증진에는 한계가 있을 가능성에 유의해야 한다.

2. 옐런 '금리 인상' 밝혔지만…

미국은 경기 회복에 따른 금리 인상이 예견됐지만, 트럼프 당선 이후 금리 조정 방향과 진폭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이다. 재정 지출 확대와 감세가 결합하면, 미국 정부의 국채 발행이 늘면서 채권 가격이 내려가고 이는 금리 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옐런 연준 의장이 '비교적 빨리' 금리를 인상하는 게 적절하다고 밝힌 것과도 방향이 같다.

그러나 트럼프는 옐런 의장을 비판하면서도 저금리 등 완화적인 통화 정책을 원한다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급격한 금리 인상을 방치할 경우 감세와 정부 지출 확대를 통한 경기 회복 효과가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트럼프는 옐런 의장과 연준에 대한 강도 높은 발언을 이어가며 사실상 완화적인 통화 정책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연준 통화 정책 결정의 독립성에 비춰 트럼프가 직접적으로 지원을 요청하기보다는 연준이 적절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 비판하는 형식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는 이미 옐런 의장의 임기가 2018년 2월에 끝나면 교체하겠다고 밝혔다. 2018년 6월에는 현재 연준 내에서 영향력이 큰 스탠리 피셔 부의장의 임기도 끝난다. 트럼프가 새 연준 의장과 부의장을 정하기 전까지는 불확실성이 지속된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당장 트럼프가 내년 대통령에 취임하면 현재 공석인 두 명의 연준 이사를 지명할 수 있다. 이때부터 기존 연준의 입장과 트럼프의 필요성에 따른 정책 방향이 충돌해 금리 움직임은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 금리가 올라가는 힘도 세졌고 끌어내리려는 힘도 세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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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韓·美 FTA 재협상 자체가 악재

트럼프는 자국 우선주의에 입각한 보호무역주의로 기울어져 있다.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 들어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적자 폭이 줄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에서 보호무역 정책 시행은 기정사실화됐다. 국제무역에 기초해 경제 성장을 해온 한국은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다만 그 강도는 아직 불확실하다. 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재협상하자고 하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재협상으로 한국에 크게 불리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협상 과정 자체가 불확실성의 형태로 금융 시장과 실물 경기 모두에 지속적으로 나쁜 영향을 줄 것이다. 미국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여전히 다른 국가와 비교해 압도적이다. 한·미 FTA가 폐기되는 극단적인 상황은 미국도 상당한 손해를 볼 것이기 때문에 가능성이 작지만, 특정 산업에 대한 고율의 관세나 비관세 장벽의 가능성은 커진 상태다. 트럼프는 대선 중 인기를 위해 강조한 무역 제재를 상징적으로 도입하고 실질적인 경기 부양은 감세와 재정 지출 확대를 통해 유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4. 한국 기업, 현금 흐름 확보해야

한국 경제는 구조적 측면과 경기적 측면 모두 어려운 상황이다. 내수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지만, 정책 당국은 적극적인 정책 대응 의사가 없거나 대응 능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구조적인 부분을 개선하는 것은 현재 정치적 혼란과 대통령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는 어려워 보인다. 단기 대응도 정책 컨트롤 타워가 무너진 상황이라 사실상 이뤄질 가능성이 작다.

가계와 기업 등 개별 경제 주체들은 실물 경기 침체의 장기적 구조화와 기업의 수익성 저하, 이에 따른 노동시장 여건 악화에 대비해야 한다. 금융 시장의 불확실성 확대로 자금 조달 위험이 커지는 것에도 대응할 필요가 있다. 우선 현시점에서는 기업이 현금 흐름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고 저금리가 계속되면 현금 흐름의 가치가 높아진다. 미래 가치 창출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자본이득보다 현금 흐름에 신경 써야 한다.

성장이 빠르던 시대에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최상의 성공 기회를 찾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가장 잘하고 생존할 수 있는 핵심 사업에 집중할 때다. 비핵심 자산은 계속 보유하기보다는 매각해 유동성을 갖춰 위험을 관리해야 한다. 수익성이 전반적으로 나빠지면서 부채로 투자한 실물자산 가치가 하락할 위험도 커지고 있기 때문에 부채의 원리금 상환 부담을 줄이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가계 입장에서는 일시적인 경기 순환상의 불황이 아니라 장기 침체기이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당장 소비하고 투자하기보다는 경기가 반전될 때를 기다릴 필요가 있다.

물론 가계와 기업이 이런 방식으로 대응에 나서면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키고 수요를 감소시켜 거시경제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 하지만 당국이 총체적으로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의지나 능력이 없다면, 개별적인 위험 관리에 초점을 둔 대응이 불가피하다. 현재 한국 경제 상황은 외환 유동성이 충분해서 '외환위기' 발생 가능성이 작아졌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경기 부진·기업 수익성 저하·인위적 구조조정·노동시장 여건 악화 등 1994년에서 1997년으로 이어진 위기 상황과 유사하다. 당국이 적극적인 의지가 있다면 오바마 행정부와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이 적극적 재정 정책과 과감한 통화 완화 정책을 함께 써 디플레이션 입구에서 빠져나온 경험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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