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몰엔 왜 자연채광이 없나, 기둥은 왜 필요한가 우린 禁忌를 깼다

입력 2016.11.26 03:05

글로벌 쇼핑몰 개발·운영기업 터브먼사…로버트 터브먼 회장

터브먼사(社)의 로버트 터브먼(Taubman·63) 회장
"쇼핑을 하면 세상이 밝아져요. 하지만 그 불빛은 곧 꺼지죠. 그래서 또다시 쇼핑을 해요."

영화 '쇼퍼홀릭'의 주인공 레베카 블룸우드는 쇼핑을 할 때면 주변이 환해진다고 한다. 대부분의 쇼핑 공간은 밝다. 꼭 필요한 물건만 사겠다고 다짐한 사람도, 쇼핑몰에 들어서면 평소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물건까지 양손 가득 사고 나서야 문밖으로 나온다.

사람들이 물건을 사게 하는 힘. 미국의 대표적인 쇼핑몰 개발·운영 기업 터브먼사(社)의 로버트 터브먼(Taubman·63·사진) 회장은 "비결은 설계"라고 말한다.

1950년 설계·건축 회사 '디자인 앤드 빌드'로 시작해 부동산 개발사로 확대한 터브먼사는 전 세계에 쇼핑센터 수십 개를 개발했고, 현재는 26개 쇼핑몰을 개발·관리 중에 있다. 그동안 터브먼사가 개발한 부동산 면적은 8000만㎡에 달한다.

터브먼사가 개발·운영하는 쇼핑몰은 미국 내에서 가장 장사가 잘되기로 유명하다. 2015년 기준 '영업 면적 대비 매출액'이 798달러(1㎡당)로 경쟁 업체인 사이먼그룹(607달러), 메이서리치(654달러)보다 높다. 평균 임대료도 61.12달러(1㎡당)로 업계 최고다.

창업자인 앨프리드 터브먼(1924~2015)의 둘째 아들로 1990년부터 최고경영자(CEO), 2011년부터는 회장직을 맡아 터브먼사를 경영하는 로버트 터브먼 회장은 미국 부동산 업계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으로 RER(Real Estate Roundtable·부동산 원탁회의)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미국 전국부동산투자신탁위원회(NAREIT) 이사회 중역을 맡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30년 지기(知己)이기도 하다.

지난 9월 신세계그룹과 합작한 '하남 스타필드' 개점 행사를 위해 방한한 그를 만났다. 터브먼사는 스타필드 하남 프로젝트 주식의 49%를 갖고 있다.

플로리다 인터내셔널 플라자
플로리다 인터내셔널 플라자
쇼핑몰 설계의 역(逆)발상… 저항의 문턱을 없애라

―터브먼사가 설계한 쇼핑몰의 인테리어는 거의 비슷하다.

"고객들이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도록 이끄는 것이 '설계'에 달렸기 때문이다. 터브먼이 설계한 쇼핑몰은 대부분 자연 채광이 들어와 밝고, 기둥이 없으며, 문턱이 없다. 카펫도 깔려 있지 않다. 이렇게 만드는 건 고객들에게 안정감과 편안함을 주기 위해서다. 고객들은 길을 잃는 것을 싫어한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싶어한다. 그런데 기둥이 많으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복도나 통로가 넓어 탁 트인 공간에서 사람들은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낀다.

자연 채광도 마찬가지다. 사실 자연 채광을 쇼핑 공간에 들이는 것은 이쪽 업계에서 하나의 '금기'였다. 고객들이 자연 채광을 통해 시간이 지났음을 확인하고 매장을 빨리 떠난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불문율을 깨고 자연 채광을 매장에 적극적으로 들여왔고, 외부 풍경도 쉽게 볼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고객들은 오히려 행복해졌고, 체류 시간이 길어지는 효과를 얻었으며, 이는 자연스럽게 매출 증가로 이어졌다. 우리는 이 같은 작업을 '저항의 문턱을 뛰어넘는다'고 말한다. 끊임없는 혁신으로 그동안 금기였던 것을 하나씩 뛰어넘어 새로운 기준을 만들자는 의미다. 터브먼사가 기존 단층 로드숍에서 벗어나 2층 쇼핑몰을 도입한 것도, 쇼핑몰 최초로 푸드 코트와 멀티플렉스 극장을 도입한 것도 이런 원칙에서 탄생했다."

―체류 시간과 매출이 꼭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래서 쇼핑몰마다 전체 트래픽을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객들은 항상 자신들이 가는 매장만 가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고객이 자주 가는 매장 맞은편에 그 고객이 흥미를 가질 만한 매장을 두는 방식으로 트래픽을 분석해 설계해야 한다. 이런 방식이 점심때 30분 만에 급하게 쇼핑하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종일 공간에 머물면서 다양한 물건을 사게 한다. 앞으로 쇼핑몰 산업은 리테일(소매업)이 아닌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될 것이다. 미국에서는 유명한 스포츠 경기가 열리면 쇼핑몰 매출이 줄어든다. 앞으로 쇼핑몰은 고객들이 집에서 나와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쇼핑몰
1 한국 스타필드 하남 2 미국 뉴저지 쇼트힐몰
부동산 개발 성공 비결은… 유연함과 인내심

―부동산 개발 사업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매 순간이 어렵다. 부지(敷地) 확보부터 매장 입점까지 모든 프로젝트에 어려움이 따른다. 먼저 부지를 확보해 개발하는 과정이 어렵다. 미국에서는 부지를 그 품질에 따라 A·B·C등급으로 나누는데, 날이 갈수록 좋은 부지는 줄어들고, 안 좋거나 개발이 어려운 부지만 남는다. 예를 들어 하와이를 대표하는 와이키키 해변 옆에 넓은 부지가 하나 있었다. 최상급이었다. 하지만 이 땅은 (하와이 역사상 가장 사랑을 받은 여왕) 퀸 에마와 그 가족의 유해가 묻혀 있는 곳으로, 퀸 에마 재단의 소유였다. 예상할 수 있듯이 이 부지를 쇼핑몰로 개발하는 것은 정말 어려웠다. 수시로 그들을 만나 부지를 사용하기 위한 적절한 절차를 진행했다. 역사를 보전하면서도, 하와이 주민들에게 도움도 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부동산 개발 사업이란 워낙 규모가 있고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보니 민간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그 과정이 어렵기 때문에 우리처럼 성공하는 기업이 많지 않다. 부동산 개발 사업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금도 풍부해야 하지만, 인내심도 많아야 하고, 장기간 진행되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도 많아야 한다."

―중국 등 아시아 사업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문화적 차이와 언어 장벽이 있었다. 지난 3월 우리는 중국 시안(西安)에 새로운 쇼핑몰을 오픈했는데, 중국 프로젝트는 업체를 불러들이는 것부터 어렵다. 자금과 상품 공급도 만만치 않다. 중국 정부에서 건설 문제로 허가를 받는 과정도 매우 불투명하다. 중국에서 매장을 열 때는 지방정부의 협조를 받아 파트너십을 맺어야 하는데, 합작 기업만 여덟 개나 됐다. 신세계라는 하나의 사기업과 파트너십을 체결한 하남 스타필드와 그 어려운 정도가 다르다. 중국이 개발도상국이라면, 한국은 선진국에 좀 더 가깝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 조바심을 내면 안 된다. 국가별로 차이가 있는 건 당연하다. 중국 사업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런 상황에 좀 더 유연해야 한다. 각 나라와 파트너, 각각의 상황에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쇼핑몰
1 마이애미 돌핀몰 2 유타 시티크리크센터 3 베벌리 센터 4 중국 둥관의 신화난쇼핑몰
―아시아 지역 내 추가 투자 계획은 있나.

"중국과 한국에 집중할 것이다. 두 국가가 가장 (성장)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중국과 한국은 부동산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지리'가 뛰어나다. 한국의 경우에는 하남에서의 추가 개발도 계획 중에 있고, 고양·인천 등 다른 지역에서도 많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 우리는 한국 고객과 한국 경제, 한국의 정치 시스템에 굉장한 신뢰를 갖고 있다. 절대적인 투자 규모를 지금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린 재정적으로 굉장히 건실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좋은 매물이 나오고, 좋은 기회가 있다면 투자할 의향이 있다."

―국가별로 유통 업계 특징이 있는가.

"한국의 경우에는 비싼 토지 가격과 정부의 엄격한 규제 때문에 매장 공간의 공급량이 매우 적은 편이다. 백화점이 시장을 지배한다는 점도 특이할 만한 부분이다. 미국이 1인당 약 2㎡의 매장 공간을 갖는다면, 한국인은 약 0.2㎡이다. 한국은 영국 런던이나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과 달리 도심 내 중심가가 없다. 여기서 중심가는 서울 강남과 다르다. 강남의 경우 언덕이 많아 상가가 일부 모여 있음에도 고객들이 이동하기에 매우 불편해 (전통적인 의미의) 중심가가 아니다. 유럽의 경우에는 도시 중심에 상가를 개발하는 것이 정부의 보전 정책 때문에 어렵다. 경쟁자도 많다. 미국의 경우에는 유통 채널이 너무 많아 쇼핑몰 사업의 매력이 줄어들고 있다. 터브먼이 아시아 사업에 집중하는 이유다."

유대인 특유의 교육법… 끊임없이 호기심을 가져라

―유대인 출신이다. 사업에 대한 특별한 교육법은 있는가.

"아버지는 평생 배움을 강조했다. 당신도 평생 배우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내게 주신 가장 큰 선물 중 하나는 끊임없이 호기심을 가지라는 것이다. 1년 반 전 91세 나이로 돌아가셨을 때도, 평생 무언가에 대해 배울 수 있어서 일생이 흥미로웠다고 하셨다. 내게 평생 배우고, 끊임없이 호기심을 가지고, 항상 경청하라고 하셨다."

―경영에 대해 강조한 원칙은 무엇인가.

"고객이다. 어떤 사업이든 고객에게 초점을 맞추면 궁극적으로 성공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도 그렇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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