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과 혁신의 그때 그 시절로… 19세기 기업가의 野性 부활이 答이다

입력 2016.05.14 03:06 | 수정 2016.05.14 10:34

에드먼드 펠프스 2006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중앙은행이 전 국민의 계좌에 돈을 입금해줘야 한다거나 발권력을 동원해 정부에 재원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충격요법까지 거론되는 때다. 저성장과 빈부 격차 문제를 두고 학계는 자본주의의 개선책을 찾고 있다.

미 컬럼비아대의 간판 경제학자인 에드먼드 펠프스(Phelps·83)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자본주의의 복고(復古)가 답'이라는 쓴 약을 내놨다. 대규모 공공사업이나 감세, 복지 대신 민간이 자생적으로 혁신을 이루도록 정부가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가 공격적으로 재정 정책을 펴고 고용 안정을 이뤄야 한다는 주류 의견과 배치된다.

박상훈 기자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그러나 그의 견해를 단순한 '소수 의견'으로 한편에 밀어버리기만은 힘들다. 펠프스 교수는 반 세기 넘게 경제를 연구해온 거시경제학의 대가로 2006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물가가 아닌 실물 경제의 변화가 실업률을 결정한다는 '자연실업률'을 이론적으로 증명해 경제 정책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고, 1960~70년대 경제학계의 주류 이론을 보완해 중앙은행이 물가 안정에 나설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

나이 80세가 되던 2013년에는 자본주의 경제의 발달사(史)를 분석한 '대번영의 조건(원제 Mass flourishing)'이란 책을 출간했다. 그는 경제의 역동성과 혁신이 위축되면서 생산성 증가율과 경제 성장률이 하락했고, 여기에 정부의 과잉 부채 문제가 맞물려 2008년 금융위기가 닥쳤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빠른 경제 성장과 혁신이 일어났던 19세기 초반부터 20세기 중반의 자본주의를 이상적인 '근대 경제'라고 보고, 자본주의의 근대성을 회복하는 것이 경제 위기의 해법이라고 그는 말한다.

실제 만나본 백발의 노교수는 셔츠와 청바지 차림이었다. 사무실 한쪽 벽을 메운 책장에는 주제별로 분류된 경제학 서적과 그의 저작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복고는 그의 책상 위에도 있었다. 손님용 탁자 한가운데에는 표지에 수퍼맨이 그려진 700쪽짜리 DC코믹스 75주년 특별판이 놓여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 가장 좋아했던 히어로가 수퍼맨이고, 지금도 팬이다"고 말했다.

현재 세계 경제의 최대 위험 요인은 무엇이라고 보느냐는 첫 질문에 "지금 경제 상황이 심각하다고 보나? 더 나빠질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하게 경기가 반등하는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말하고는 껄껄 웃었다. 노학자는 대답을 하기 전 엄지와 검지로 턱 밑을 쓸면서 길게는 십여 초 동안 생각에 잠겼다.

펠프스 교수는 1960년대 이후로 주요 선진국 경제에서 혁신과 역동성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점을 먼저 지적했다.

"혁신 부족의 징후는 실업률, 직무 만족도, 생산성 지표 등의 수치로 미국 경제에는 1970년대,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에서는 각각 1980년대와 1990년대 후반부터 나타났습니다. 미국의 경우엔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몇 년을 제외하면 생산성 지표가 심각하게 악화됐는데, 1972년까지 연 평균 2.33%를 기록했던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이후 연 평균 1.57%로 하락했습니다."

에드먼드 펠프스 미 컬럼비아대 교수
에드먼드 펠프스 미 컬럼비아대 교수.

―그렇다면 저성장의 위기를 극복할 대책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구닥다리처럼 들리겠지만, 과거의 자본주의로 회귀해야 한다고 봅니다. 미국은 확장 재정 시기를 막 마무리했고 유럽은 20~30년 전에 정부 지출을 큰 폭으로 확대했지요. 그런데 정부 지출을 늘리는 게 적절한 방법이었나요? 생산성과 임금이 정체된 상태에서는 정부가 지출을 늘리거나 세율을 낮추는 정책은 재정 적자 문제만 악화시킬 뿐입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2001년과 2003년 감세를 시행한 이후 미국의 고용시장이 일시적으로 좋아지는 듯 보였습니다만, 부동산 시장의 붐 때문이었을 뿐 그 추세가 이어지진 않았습니다.

독일·네덜란드 등 여러 유럽 국가가 채택한 코포라티즘(corporatism·정부가 노동조합, 재계 단체 등과 임금과 고용 정책 등에 대해 합의하는 조합주의)과 정부의 강력한 규제는 경쟁을 저해하고 혁신을 위축시킵니다. 사회 기반 시설을 확충하는 공공사업은 단기적으로 경기를 부양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역시 근본적인 해법은 아닙니다. 다수가 혜택을 볼 수 있는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위해선 정부가 아닌 민간이 주도하는 '풀뿌리 혁신'이 필요합니다. 지금처럼 관료화된 정부하에서는 민간을 중심으로 각계각층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하는 풀뿌리 혁신이 일어나기 어려워졌습니다."

재정지출 늘리면 당장 부자 된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 고용·성장에 악영향

컬럼비아대 ‘자본주의와 사회 센터’의 장(長)이기도 한 펠프스 교수는 정치와 경제정책 간 관계를 분석하는 정치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혁신을 되찾기 위해서는 정부 관료들이 다양한 산업에 대한 실용적인 지식을 갖춰야 한다며 “규제 담당 공무원이 되려면 한두 개 산업이나 특수한 직종의 인턴을 거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법안을 제정하는 국회의원 역시 기업 경제와 관련된 지식을 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규제보다 경제적인 자유를 중시하는 입장이신데, 경제주체에게 무한정 자유를 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글쎄요, ‘충분한 자유’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단언하기 어렵군요. 기업이든 정부 조직이든 한번 만들면 쉽게 없앨 수 없다는 점은 문제라고 봅니다. 지금은 인력 구조 조정이 곧바로 큰 뉴스거리가 되지요. 자본주의 경제에서 혁신은 대개 새로운 기업이 기존 업체의 시장점유율을 빼앗으면서 발생합니다. 혁신적인 기업이 시장점유율을 늘려간다고 정부가 제재를 가하는 건 코포라티즘일 뿐입니다. 코포라티즘은 노동조합이나 이권 단체 등 사회 여러 그룹 사이의 관계를 중시하는데, 마치 여러 척을 사슬로 묶어 어떤 배도 뒤처지지 않게 만들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다 함께 똑같은 수준에 머무르는 거예요.”

―작은 정부가 경제 발전에 더 도움이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정부가 책임감 있게 재정을 운용한다면 규모는 크든 작든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목적과 재원이 있다면 정부 지출을 늘려도 괜찮아요. 게다가 1930~1950년 이래 전 세계적으로 정부의 역할이 확장되면서 ‘작은 정부’는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저는 단지 유권자에게 인기를 끌기 위해 정부가 대대적으로 재정을 지출하는 포퓰리즘이나 지방에 대한 선심성 예산을 반대하는 겁니다.”

―감세를 통한 경기 부양에도 반대하는 입장이신데요.

“세금 인하의 경제적인 효과와 관련해서는, 저는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소수파에 해당할 겁니다. 정부가 적자를 낸다면 장기적으로 고용과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재정 적자 상태에서 정부가 지출을 이어가면 당장은 국민이 부자가 된 기분이 듭니다. 몇 년 동안은 구조 개혁이나 생산 능력 확충 없이도 경제를 지탱하겠지만, 장기적으로 국가 경제에 좋을 리 없습니다.”

―그래도 사회 취약 계층에 대한 정부 지원은 필요한 것 아닙니까.

“무조건 보조금을 줄 게 아니라 고용과 연계해 지원해야 합니다. 1990년대에 기업이 저소득층이나 사회적 약자를 고용하도록 정부가 지원금을 지급하면 경제적으로도 효과가 있는지 연구했는데, 제 결론은 ‘100% 도움이 된다’였습니다. 기업으로서는 장애인이나 저소득층을 고용할 때 인건비 부담보다 이득이 많다는 점을 깨닫고 사회 취약 계층 고용을 늘릴 것이고, 이는 사회적 약자들의 임금수준이 점차 상승하는 효과를 가져올 겁니다. 정부는 기업과 경제적인 부담을 분담할 수 있고, 취약 계층이 얻는 총 수입도 정부 보조금만 받는 것보다 더 늘어날 겁니다.”

에드먼드 펠프스 미 컬럼비아대 교수
에드먼드 펠프스 미 컬럼비아대 교수.
―민간 분야에는 어떤 개혁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기업들의 단기 성과주의 관행을 없애는 방향으로 기업법을 개정하고, 창업을 지원하는 금융 제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평범한 사람들도 자기 사업을 할수 있게 만들려면 은행 산업을 정비해야 하고, 경험 많은 투자자들이 자본을 지원하고 성과를 평가하는 관계금융(relation banking)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2010년 리오 틸먼 교수와 신규 기업에만 대출해주거나 투자하는 금융기관을 설립해야 한다고 제안한 적이 있는데, 요즘에는 엔젤펀드가 비슷한 역할을 하더군요.”

―기술의 발달이 혁신을 촉진하고 경제를 부활시킬 것이라는 주장도 많습니다.

“기술만으로는 경제에 변화를 줄 수 없습니다. 그 기술을 상업적으로 활용할 아이디어를 고안하고, 기술로 돈을 벌 수 있어야 합니다. 19세기에서 20세기까지 미국과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에서 혁신의 폭발이 일어난 것은 생각의 방식이 완전히 달라진 덕분입니다. 경제구조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가치관도 달라져야 합니다. 열정적으로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고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근대적인 가치관을 회복해야 해요.

많은 사람이 경제에 대해 논할 때 교육의 중요성은 간과하는 것 같습니다. 고등교육은 인적 자원을 개발한다는 점에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큽니다. 아이들을 독립적이고 모험적이고 호기심 많게 길러야 합니다. 또 실험적이고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혁신을 자극할 유일한 방법은 혁신에 대한 호기심뿐입니다. 일하는 과정 자체에 열정을 갖고, 혁신을 통해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것을 목표로 삼도록 해야겠지요.”

―한국도 201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습니다. 정치권의 경제 공약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기본적으로 사회보장기금이나 새로운 복지제도는 재원을 조달할 방법이 마련된 상태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고령화 사회에서 자금이 없는 상태로 복지 기금을 주기 시작하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스웨덴 같은 나라에서 그렇듯, 더 많은 복지를 원한다면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게 맞는 겁니다. 재정 지출을 늘려야 하는 공약에 대해서는 관계 당사자의 동의를 구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은퇴자를 위한 복지 제도나 연금을 확충할 때는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이미 은퇴한 사람들이 아니라 앞으로 세금을 부담해야 할 젊은 유권자들이 개입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대선 경쟁과 선거 결과가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 물으니 “복잡한 사안인 만큼 답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말을 아꼈다. 펠프스 교수는 “미국은 강력한 양당제이기 때문에 법안을 만들고 시행하기 위해선 두 정당이 협상하고 절충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아주 정신 나간 아이디어’는 자연스럽게 걸러진다”며 “나는 민주당원”이라고 덧붙였다.

☞코포라티즘(corporatism)

독일·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에서 시행하는 코포라티즘은 노동조합과 경영진, 정부가 임금과 근로조건 등 노사 문제를 합의하고 조율하는 일종의 조합주의다. 민간 기업의 노사 협상 과정에 정부가 개입한다는 점에서 사회주의적인 요소가 더해진 시장경제 체계라고 볼 수 있다.

놓치면 안되는 기사

팝업 닫기

WEEKLY BIZ 추천기사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