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제국 로스차일드家와 거래하는 부자들은 지금 '사모펀드'에 돈 넣는다

입력 2016.05.14 03:06 | 수정 2016.05.14 03:21

가문 며느리로 EDR그룹 수장 오른 아리안 드 로스차일드

로스차일드.

금융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도 한 번쯤은 들어봤음 직한 이름이다.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의 저서 '전설의 금융가문, 로스차일드'에 따르면 로스차일드 은행은 1815년부터 1914년까지 100년 동안 세계 최대의 은행이었다. 퍼거슨 교수는 "오늘날 글로벌 은행 중 가장 큰 은행도 로스차일드 가문의 전성기에 미치지 못한다"며 "로스차일드 가문이 어떻게 천문학적인 부자가 됐는지 설명하지 않고서는 자본주의 경제사 자체를 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를 예측해 화제가 된 책 '화폐전쟁'의 저자 쑹훙빈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재산을 약 50조달러(약 5경원·1경=1만조)로 추정했다.

아리안 드 로스차일드 에드먼드 드 로스차일드 그룹 최고경영자(CEO)
아리안 드 로스차일드 EDR그룹 CEO. /박상훈 기자
아리안 드 로스차일드(Rothschild·50) 에드먼드 드 로스차일드(이하 EDR) 그룹 최고경영자(CEO)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변화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지난 250여년간 8대(代)에 걸쳐 전 세계 금융 자본을 지배한 로스차일드 가문은 '가문 내 결혼, 재산의 비밀 관리, 장남의 가문 승계'를 내세워 가문의 결집력을 유지하고, 세계적인 금융 재벌의 명성을 이어갔다. 이 때문에 로스차일드 가문 출신이 아닌 여성이 로스차일드 집안의 며느리로 들어와 가문의 주요 금융재벌 중 하나인 EDR그룹의 수장까지 올랐다는 사실은 큰 화제가 됐다. EDR은 PB(프라이빗뱅킹)와 자산 운용을 주력으로 하는 금융기관으로 스위스 제네바, 프랑스 파리 등에 본부를 두고 있다.

지난달 19일 삼성자산운용과 전략적 제휴를 체결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로스차일드 CEO를 만났다. 그는 인터뷰 장소였던 호텔 방에 걸린 이우환 화백의 그림을 알아보고는 "정말 좋아하는 화가"라며 환하게 웃었다. 하얀 니트를 걸친 수수한 옷차림이 눈에 띄었다. 오랜 세월 동안 천문학적인 부를 쌓고 지켜온 세계적인 금융 명문가는 글로벌 경제와 돈의 흐름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로스차일드 CEO는 "초저금리와 저성장이 투자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며 "경쟁력 있는 숨은 기업을 발굴해 중장기 투자하는 사모펀드가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①사모펀드에 뭉칫돈 몰려

―최근 유럽 자산가들의 투자 성향을 어떻게 보십니까.

"유럽의 자산가들은 소수의 투자자들이 자금을 모아 투자를 하는 사모펀드(Private Equity)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모펀드의 장점은 당장 성과가 나지 않더라도 5~7년 정도의 미래를 내다보고 투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투자자들의 뜻만 맞으면 새로운 기업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지금은 격변의 시기입니다. 경제의 축이 전통 산업에서 첨단 기술로 옮아가고 있습니다. 유럽의 자산가들도 구글이나 페이스북처럼 미래의 산업 판도를 바꾸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가는 기업을 찾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저도 회사 차원에서 '작은 창업가'를 발굴하라고 적극적으로 권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금융 위기와 유럽 재정 위기를 겪으면서 많은 투자자가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했습니다. 래리 핑크 블랙록 CEO는 이른 시일 안에 결과를 낼 것을 요구하는 투자자들을 무시하라고 말합니다. 저성장과 초저금리 시대에 단기간 고수익을 좇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닙니다."

②투자 키워드는 구조조정

―저성장이 지속되면서 주식, 채권 같은 전통 자산에 대한 투자 전략을 짜기가 힘들어졌다고 합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여러 산업 분야에서 구조조정이 활발하게 일어나면서 살아남은 기업들의 시장 장악력이 더 커지고 있습니다. 인수·합병(M&A) 전략을 통해 신흥국 시장에 활발하게 진출한 하이네켄이 대표적입니다. 아울러 노키아처럼 구조조정을 통해 턴어라운드(실적개선)에 성공한 기업도 여럿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기업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불경기에도 대비해야 합니다. 경기 부양을 위해 유럽중앙은행(ECB)은 마이너스 금리라는 극단적인 처방까지 도입했습니다. 마이너스 금리가 유럽 경제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경제 상황을 왜곡한다고 생각합니다. 유럽의 문제는 구조적인 것입니다. 금리를 낮추고 돈을 푸는 것으로 해결되기 어렵습니다. 투자 기간을 길게 잡고 경기 방어 성격이 강한 배당주에 투자하는 전략을 권하고 싶습니다."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에드먼드 드 로스차일드(EDR) 본사.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에드먼드 드 로스차일드(EDR) 본사.
③인맥이 금맥

―로스차일드 가문은 오랫동안 부를 쌓고 유지해 왔습니다. 그 힘을 뭘로 봐야 할까요.

"부자가 되려면 주변에 부자가 많이 있어야 합니다. 그들은 부의 흐름을 읽고, 가장 먼저 투자해 이익을 실현합니다. EDR그룹은 많은 거액 자산가를 고객으로 갖고 있습니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전에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특별한 분야나 기업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보이는 경우를 목격합니다. 저는 막대한 부를 일군 사람들한테서 투자 아이디어를 종종 얻고, 기업을 경영하는 데 활용하고 있습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인맥을 관리하고, 거기서 얻은 정보를 활용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역사를 보면 로스차일드 가문은 금융업을 통해 큰 부를 축적했습니다. 그렇다고 로스차일드가 금융업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를 갖고 있고, 치즈를 만드는 사업도 합니다. 예술가를 후원하고, 재단을 세워 자선활동도 벌입니다. 이 모든 것이 사람을 만나기 위한 비즈니스입니다. 금융기업들이 가장 많이 저지르는 실수는 '숫자'만 보는 것입니다. 숫자는 매우 추상적이죠. 부를 쌓은 사람들과 직접 접촉하고, 그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이 훌륭한 전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④가족 경영 효율적

―로스차일드 가문은 오랫동안 가족 경영을 유지했습니다만,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 철저한 가족 순혈주의에 따라 기업을 경영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로스차일드도 변하고 있습니다. 결혼을 통해 로스차일드 가문의 일원이 된 저 같은 사람이 CEO가 된 것을 보세요. 제가 EDR의 경영을 맡은 이유는 제 남편보다 제가 기업을 경영하는 데 적합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웃음). 전 결혼 전에 다국적 은행과 보험회사에 수년간 근무한 경험이 있습니다. 반면 제 남편은 자동차 경주와 요트를 즐깁니다. 변화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로스차일드 가문의 기업들은 대부분 가족 경영 체제입니다. 가족 구성원이 정당한 절차를 통해 경영권을 이어받는다면, 그리고 사업을 성장시킬 수 있는 역량이 있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족 경영의 가장 큰 문제는 가족에게 기회를 몰아줌으로써 조직 내 유능한 임직원들이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내부 직원을 발탁하거나 외부에서 인재를 데려와 쓰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EDR의 경우 2000년대 중반부터 한동안 전문 경영인 체제를 택했다가,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빠른 의사 결정과 실행에는 가족 경영이 더 유리합니다. 경영자의 이익이 주주와 일치하는 장점도 있습니다."

⑤기업의 비전이 곧 경쟁력

―로스차일드 가문의 금융기업들은 대부분 상장사가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EDR의 운용 자산 규모가 약 200조원으로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약 5300조)과 비교해 매우 작습니다. 덩치를 더 키울 수 있었지 않나요?

"저는 경쟁력이 입증된 조직의 규모를 무조건 크게 키우는 것은 능사가 아니라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조직의 핵심 역량을 유지하고 조직원이 비전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유능한 인재들은 절대로 돈만 보고 움직이지 않습니다. 기업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사회적으로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공감한 후에야 조직을 선택합니다. 이런 사람들과 비전을 지속적으로 공유하고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 집중하는 것이 성장보다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로스차일드 가문의 기업들은 어떤 위기가 와도 한번 뽑은 사람은 절대로 해고하지 않습니다.

덧붙이자면 세계적인 은행들과 비교하면 EDR의 규모는 작지만 오히려 더 나은 부분도 있습니다. EDR의 지급여력비율은 31%로(2015년 말 기준) 최소 기준치인 12%를 훨씬 웃돕니다. 재무적으로 매우 건전하다는 뜻입니다. 기업의 규모가 작을수록 더 높은 수준의 혁신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위기 상황에 대비할 수 있습니다."

에드먼드 드 로스차일드(Edmond de Rothschild·EDR)

EDR은 로스차일드 가문을 일으킨 마이어 암셀의 5남 제임스의 막내아들 에드먼드가 설립한 회사. 프라이빗뱅킹(PB)과 자산 운용을 주력으로 한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금융그룹은 EDR과 로스차일드앤드코(Rothschild&Co)로 양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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