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관련 없는 지식에서 터진다… 아이디어 빅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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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6.04.23 03:05

      [Cover Story] 결합의 혁신 '메디치 효과' 창안자 프란스 요한손

      개미 연구와 통신 네트워크 기술 개발. 별다른 접점이 없어 보이는 두 분야가 만나면 어떤 혁신을 이뤄낼까.

      1990년대 초 프랑스텔레콤(지금의 오항주)에서 일하던 엔지니어 에릭 보나보는 미국 샌타페이연구소의 세미나에서 곤충 생태학자와 대화하던 중, 통신 속도를 개선할 아이디어를 얻었다. 개미 집단은 먹이나 목표물을 찾을 때 '탐색 전문' 개미들을 보내고, 가장 빠른 길을 찾은 탐색 개미는 강한 페로몬을 풍겨 다른 개미들을 불러 모은다. 보나보는 '가상의 개미'가 통신 네트워크의 분기점이나 경로 장치에 '가상 페로몬(신호)'을 보내면 통신 데이터를 보내는 최적의 경로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프랑스텔레콤의 다른 직원들은 이 아이디어를 무시했다. 보나보는 샌타페이연구소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소개했고, 영국 통신사인 브리티시텔레콤이 이 아이디어를 발 빠르게 도입해 성공을 거뒀다. 이후 보나보는 정보통신 사업에 생태학적인 지식을 접목하는 연구소 아이코시스템(Icosystem)을 설립했고, 미 국방부와 무인정찰기의 수색 기능을 개선하는 사업도 진행했다.

      경영학계에선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아이디어와 지식이 결합해 혁신이 일어나는 현상을 '메디치 효과(Medici effect)'라고 부른다. 2004년 발간된 동명의 경영 서적에 처음 등장한 개념으로,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피렌체의 유지였던 메디치 가문의 이름에서 따왔다. 메디치 가문이 여러 방면의 예술가들을 모았는데, 서로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이 만나게 되면서 르네상스라는 큰 물결이 일어났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저서 '메디치 효과'의 성공을 바탕으로 컨설팅 업체인 메디치그룹을 설립한 프란스 요한손(Johansson·44) 회장을 미국 뉴욕 사무실에서 만났다. 메디치그룹의 고객사는 디즈니, 존슨앤드존슨, 화이자, AIG, 나이키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이다.

      스웨덴 출생이라는 소개 글을 읽고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마른 몸의 백인'을 떠올렸는데, 가무잡잡한 피부에 갈색 눈을 가진 구척장신(九尺長身)이 등장했다. 외모만 보면 경영 컨설턴트라기보다 미식축구 선수 같았다. 1시간 넘는 인터뷰 내내 손과 어깨로 다양한 제스처를 지어가며 설명했고, 목소리가 회의실 안에서 웅웅 울릴 정도로 힘이 넘쳤다.

      박상훈 기자
      그래픽=박상훈 기자

      한 분야만 연구한다고 혁신 일어날까

      ―모든 기업이 '혁신'에 매달리지만, 대다수는 실패합니다.

      "기업들이 맞닥뜨리는 '게임의 규칙'은 기술과 사회가 변하면서 계속해서 달라지고 있습니다. 열심히 한 분야를 연구하면 성공하는 기업이 된다고요? 기업 환경이 거의 변하지 않는 때나 통하는 생각입니다. 한때 휴대전화 시장을 지배했던 노키아의 사례를 생각해 보세요. 당시 노키아는 휴대전화 시장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휴대전화를 구입할 때 중요한 건 기기 디자인, 색상, 벨소리 같은 요소였습니다. 지금은 시장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죠.

      전문 지식을 확보해 관련 시장을 분석하면 혁신에 성공한다고요? 산업의 판도를 바꿔 놓을 기술 변화는 전문 지식을 쌓고 논리적으로 분석한다고 해서 예상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전문성도 시장의 규칙이 바뀌면 쓸모가 없어지기 일쑤입니다. 테니스 선수인 세레나 윌리엄스는 평생 동안 연습했고, 그 덕분에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경기의 규칙이 바뀌지 않기 때문에 연습하면 성공할 수 있는 겁니다.

      기업의 혁신은 전혀 다른 얘깁니다. 넷플릭스 창업자인 리드 헤이스팅스가 사업 초기에 비디오 대여업에 대해 얼마나 잘 알았을까요? 세계 최대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가 처음에는 '데이트 사이트'로 시작한 걸 알고 있나요? 이용자들이 자기소개 영상을 올리면, 관심 있는 이용자들이 투표를 하는 방식이었어요. 처음부터 동영상 공유 서비스를 기획한 게 아니었습니다. 창업자들에게 전문성이 있었거나, 논리적인 분석을 따랐던 결과가 아니라는 얘깁니다. 오늘날 기업의 성공이 다른 분야의 성공과 다른 점은 이 지점입니다.

      특히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실패에 대한 공포가 크고 혁신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습니다. 실패 확률을 낮추기 위해 전문 지식을 쌓고 시장을 분석하는 데 집중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얻은 '명확한 정보'들은 모든 기업에 똑같이 명확한 정보입니다. 혁신을 이루려는 기업들이 똑같은 전략으로 시장의 변화에 대응하는 건, 혁신을 이루는 법과는 정반대입니다."

      직원의 성별·세대 다양성 확대해야

      ―효과적으로 혁신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메디치 효과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각기 다른 산업과 기능, 문화, 지식이 만나는 교차점에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결합되면 폭발적인 혁신이 일어날 수 있어요. 핵심은 다양성입니다. 경영진은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효과적으로 결합되는 기업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영국 케임브리지의 한 병원에서 환자를 외과 수술실에서 집중치료실로 신속하게 옮기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다른 병원에서 어떻게 하는지 조사하는 게 가장 보편적이고 손쉬운 방법이겠지만, 이 병원의 접근 방법은 달랐습니다. 카레이싱(자동차 경주) 정비팀이 일하는 방식을 참고했어요. 카레이싱 정비팀은 경기 도중에 들어온 차량에 달려들어 몇십 초 안에 부품을 교체해야 합니다. 카레이싱 정비팀의 작업 절차와 협업 방식을 분석해 외과병동에 도입하자, 환자를 수술하고 이송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크게 단축됐습니다. 전혀 다른 분야의 지식을 활용해 혁신을 이룬 겁니다."

      ―다양성이 중요하다는 주장은 경영학계에서는 그다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지 않습니까.

      "다양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도 기업들이 고용의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확대하지 않는 상황이 문제입니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세계 남녀 성비는 50대50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기업들의 직급별 구성을 봤을 때 여성 임원이나 관리자의 비율은 어떻습니까? 한국처럼 인종과 문화가 동질적인 사회에서는 기업들이 직원을 채용할 때 성별과 세대 간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확대해야 합니다."

      부르키니(Burqini)
      무슬림 여성용 수영복 '부르키니'
      부르키니(Burqini)는 얼굴과 손발을 제외한 전신을 가린 무슬림 여성용 수영복이다. 레바논에서 호주로 이주한 여성인 아헤다 자네티가 고안했다. 요한손 회장은 “자네티는 바닷가에 갔다가 비키니를 입고 수영하는 현지인들을 보고 이슬람교의 전통의상인 부르카와 비키니를 결합한 ‘부르키니’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문화 간 결합이 만들어낸 발명품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요한손 회장은 스웨덴인 아버지, 흑인과 체로키 인디언 혼혈인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은 스웨덴에서 보냈지만, 미국에서 환경공학과 경영학을 공부해 사업가가 됐다. “부모님의 국적과 문화가 달랐던 덕에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었고, 여러 문화가 섞이는 상황에도 익숙합니다. 제가 전공한 환경공학은 지질학, 화학, 생물학, 행정학, 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는 학문입니다. 그 덕분에 서로 다른 학문이 만날 때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긴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개인이 아닌 기업들은 어떻게 아이디어의 교차점을 만들고 메디치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나요.

      “기업이든 정부든 비영리단체든, 혁신을 위한 핵심은 같습니다. 경영진의 시각이 달라져야 합니다.

      우선 여러 가지 관점과 의견을 표현할 수 있고, 다양한 분야 간 아이디어를 결합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야 합니다. 부서 간 칸막이를 없애 다양한 부서가 협업하도록 만드는 겁니다. 이제 한 분야의 전문성만으로는 산업계와 사회의 변화에 빠르게 대처할 수 없어요. 학문, 산업, 기술 간 이종(異種) 결합을 통해 혁신을 이뤄야 합니다.

      여러 부서가 교류할 수 있는 제도적인 기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기업 내에는 제품 개발, 회계, 홍보, 물류 등 다양한 부서가 있습니다. 그런데 각 부서 직원들은 다른 부서의 업무 내용이나 절차에 대해 거의 모릅니다. 제품 개발은 짧으면 몇 주, 길면 몇 개월에서 몇 년까지 걸리지 않습니까. 다른 부서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알면 기획 단계부터 생산, 유통, 홍보 전략을 고려할 수 있고, 직원들끼리 효율적으로 의견을 교환할 수 있습니다.

      인적 다양성은 필수입니다. 직원의 성별, 국적, 문화, 인종, 전공 등을 말합니다. 단순히 회계 부서에 회계학 전공자를 몰아넣는 식의 인력 관리법으로는 혁신을 이루기 어렵습니다. 다양한 전공과 지식을 가진 직원들이 함께 일할 때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더 많이 나옵니다.”

      프란스 요한손 메디치그룹 회장
      프란스 요한손 메디치그룹 회장. /플리커
       ―다양한 인재를 채용하면 혁신을 이룰 수 있습니까.

      “제대로 활용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많은 기업에서 최고경영자(CEO)나 임원들끼리만 새로운 전략이나 사업 방향, 신제품을 고민하려고 합니다. 다양한 인재를 고용하고도 연차가 낮다는 이유만으로 신입 직원의 아이디어를 제대로 듣지 않습니다. 요즘처럼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는 젊은 직원이 더 신선한 아이디어를 고안할 수 있습니다. 직급이 낮더라도 시장 상황에 대한 식견을 조금씩은 갖고 있기 마련입니다.

      물론 경험이 적기 때문에 그 아이디어를 어떻게 사업화해야 하는지는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런 때는 경험 많은 상사나 경영진이 도와 사업으로 옮기면 됩니다. 세대 간 다양성을 통해 메디치 효과가 일어나는 겁니다.”

      ―어떻게 해야 사업 혁신을 할 수 있을까요.

      “투자 규모를 크게 잡을수록 혁신에 성공할 가능성은 작아집니다. 돈을 많이 들일수록 성과를 낼 것이란 통념과는 다릅니다. 한국의 삼성그룹이나 LG그룹이 처음부터 전자업계의 대기업이었나요? 지금의 주력 사업과는 관련 없는 일로 작게 시작했습니다.

      신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적은 투자금으로 시작해야 혁신을 이끌어 내기 쉽습니다.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면 그 누구도 실패를 용납하지 않고, 그 때문에 어떤 위험도 감수하려 들지 않습니다. 신선한 아이디어나 시도를 배제하고, 이전에 성공한 방법만 답습합니다.

      미국 방송 제작 시스템에선 새로운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일종의 시험판(파일럿 방송)을 먼저 만듭니다. 실패할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제작비를 수백만달러 들이기 때문에 파일럿 방송이 인기를 못 끌면 타격이 큽니다.

      저는 컨설팅을 요청한 방송사에 건당 5000달러만 들여 기획안 9~10개를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제작하라고 조언했습니다. 5억달러를 투자했는데 성과를 못 내면 문제가 되겠지만, 투자금이 5000달러라면 실패에 대한 부담이 훨씬 덜할 테니까요. 이 방송사가 제작한 파일럿 방송 중 2편이 본방송으로 진출했습니다. 파일럿 방송으로 그친 나머지 7건에 투자한 3만5000달러는 손실을 봤지만, 한 편에 수백만달러를 투자했다가 망하는 것보다는 위험 부담이 훨씬 적지요.

      아이디어를 검증하고 성공할 가능성을 분석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지 말아야 합니다. 작은 규모로 신속하게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겨야, 지금처럼 빠르게 변하는 기업 환경과 소비자의 취향에 맞출 수 있습니다.”

      ☞메디치 효과(Medici effect)

      다양한 분야의 사람이 모이면 아이디어가 모이는 교차점(intersection)이 생기고, 여기서 아이디어가 서로 결합해 예상치 못한 혁신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프란스 요한손 메디치그룹 회장이 창안한 개념으로 르네상스 시대 유력 가문 메디치의 이름에서 따왔다.

      ☞메디치 가문

      15~16세기 피렌체공화국(지금의 이탈리아 북부 도시인 피렌체 일대)에서 가장 유력하고 부유했던 시민 가문이다. 메디치 가문은 상업과 금융업으로 축적한 부를 바탕으로 종교인과 예술가를 전폭적으로 후원했다. 이 때문에 전 유럽의 화가, 음악가, 문인들이 피렌체로 몰려들었고 이들이 교류하는 과정에서 문화와 예술이 융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