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內 스타트업은 그냥 대기업… 스타트업이 대기업 성공방식 가져오면 오히려 위험

입력 2016.04.23 03:05

댄 샤피로'연쇄 창업가' 글로포지 CEO

댄 샤피로 글로포지(Glowforge) CEO. 글로포지의 3D 레이저 프린터로 13분 만에 목재 위에 ‘위클리비즈’를 새겼다.
댄 샤피로 글로포지(Glowforge) CEO. 글로포지의 3D 레이저 프린터로 13분 만에 목재 위에 ‘위클리비즈’를 새겼다. / 박정현 조선비즈 기자
댄 샤피로(Shapiro·38) 글로포지(Glowforge) 최고경영자(CEO)는 이른바 '연쇄 창업가'다. 온텔라(Ontela·2005년 창업), 스파크바이(Sparkbuy·2010년 창업), 로봇터틀(RobotTurtles·2013년 창업), 글로포지(Glowforge·2014년 창업) 등 잇달아 스타트업을 세운 경험이 있다.

창업 분야도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콘텐츠 등 다양하다. 그의 첫 번째 스타트업인 온텔라는 휴대전화에 들어 있는 사진을 온라인으로 저장할 수 있는 서비스였다. 스마트폰이 대중화하기 이전 나온 기술이라서 주목을 받으며 포토버킷이란 유명 스타트업에 매각됐다. 두 번째로 창업했던 스파크바이는 온라인 쇼핑몰의 제품 가격을 비교할 수 있는 쇼핑 검색 사이트로 화제를 모았고, 창업 6개월 만에 구글에 인수됐다. 구글에 인수된 스파크바이는 '구글 컴패리슨(Google Comparison)'이란 이름의 서비스로 재탄생했고 그가 2년간 구글 컴패리슨의 CEO를 맡기도 했다. 그는 이후 보드게임을 통해 코딩을 배우는 '로봇터틀'이란 게임을 개발해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인 킥스타터(Kickstarter)에서 보드게임 분야 사상 최대 금액을 모았다.

창업 이전에 일했던 마이크로소프트(MS), 리얼네트웍스 등 IT 대기업까지 합치면 글로포지는 그가 몸담은 9번째 회사다. 샤피로 CEO는 '대기업의 직원으로 일하는 것이 답답해서' 회사를 나온 대기업 출신 창업맨이기도 한 셈이다.

그러나 샤피로 CEO는 창업을 제대로 하려면 대기업보단 다른 스타트업에서 일해보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대기업에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관행이나 원칙이 스타트업에선 통하지 않습니다. 대기업의 '성공 방식'을 스타트업에 가져오면 '나쁜 습관'과 '치명적인 버릇'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겁니다. 대기업에서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을 배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스타트업을 창업해 성공할 확률을 높이려면, 먼저 다른 사람의 스타트업에서 일해보세요."

샤피로 CEO는 여러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매각하고 또 인수되는 과정에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핫시트:스타트업 CEO가 알아야 할 모든 것(Hotseat)'이란 책을 지난해 출간했다. 핫시트는 막중한 책임을 지는 동시에 주목을 받는 자리를 뜻한다. 사형수들이 앉는 전기 의자로도 해석된다.

미 워싱턴주(州) 시애틀에 있는 글로포지 사무실에서 샤피로 CEO를 만났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3D 레이저 프린터가 돌아가는 '웅웅' 소리가 났다. 샤피로 CEO가 창업한 3D 레이저 프린팅 스타트업 글로포지는 2015년 10월 킥스타터에서 한 달 만에 2800만달러(약 317억원)의 자금을 모집해 '30일 모집 금액' 최대 기록을 새로 썼다. 글로포지는 두께가 5㎜밖에 안 되는 얇은 목재나 투명한 아크릴판 위에 레이저를 쏘아 원하는 이미지나 글자를 조각하는 프린팅 업체다. 그는 인터뷰 질문에 대해 벽에 걸린 대형 컴퓨터 스크린으로 여러 사례를 직접 검색하거나 메모장에 그림을 그려가며 답변했다.

Corbis/토픽이미지
Corbis/토픽이미지
①'대기업 내 스타트업'은 본질적으로 대기업

―대기업에선 기업가 정신을 배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스타트업과 대기업은 서로 보고 배울 수 있는 장점이 각각 있습니다. 하지만 스타트업을 창업하거나,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대기업식(式) 성공 방식을 그대로 가져와 적용하는 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포천지(誌)가 선정하는 500대 목록에 들어가는 큰 규모의 기업들이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모집해 기업을 만드는 등 사내 스타트업 제도를 만들고 있지만 이건 진짜 스타트업과 크게 다릅니다. 애초부터 (스타트업의) 독립을 염두에 두고 시작하는 경우가 드뭅니다. 모회사(대기업)를 보완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도하는 것에 불과하죠. 돈에 대한 관점도 다릅니다. 대기업은 투자금 대비 수익을 따진다면, 스타트업은 당장 수중에 남아있는 돈을 어떻게 잘 쓸지 예산을 따져야 합니다. 사내 벤처를 평가절하하려는 것은 아닙니다만, '대기업 스타트업'은 본질적으로 스타트업보다 대기업에 가깝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②대기업서 직원은 소수점 같은 존재, 스타트업서는 모든 직원이 1인 기업가

―스타트업의 기업가 정신은 대기업과 어떻게 다릅니까.

"스타트업은 직원 한 명 한 명이 각 분야의 기업가, 자기 분야의 CEO가 되어서 결정을 내리고 결과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어떤 IT 창업자가 '400명의 개발자가 있을 때도 이런 방법으로 해결했으니, 4명밖에 안 되는 스타트업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해결 가능하다'고 얘기하는 걸 들었습니다. 완전히 틀린 말이죠. 물론 저도 대기업에서 일하면서 잘못된 통념들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대기업은 대규모 인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곳입니다. 예를 들어 대기업에서 제품을 만들면 디자인팀·개발팀·엔지니어링팀·품질관리팀 순서대로 업무가 넘어갑니다. 부서별로 책임과 권한이 명확히 나뉘어 있습니다. 초기 스타트업처럼 차고에서 서너 명이 모여서 제품을 만들 때는 이런 대기업의 시스템 자체가 의미가 없습니다."

③스타트업 규모 커지면 지나치게 수평적 문화는 위험

―대기업들이 스타트업의 수평적이고 민첩한 기업 문화를 적극적으로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초기 스타트업이 성장하면서 지나치게 수평적인 기업 문화만 고집하는 것도 위험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장 단계의 스타트업이 지나치게 '수평적' 기업 문화를 추구하다가 오히려 실패한 경우도 많습니다. 지휘자가 없으면 스타트업이 규모 면에서 성장하는 게 어려워집니다. 직원 수가 50~100명 정도로 커진 스타트업인데 여전히 수평적인 문화만 고집하면, 직원들이 업무 방향성을 못 찾고 업무 조율이 힘들어집니다. '작은 스타트업'에서 '큰 스타트업'으로 성장하면서 진화가 필요합니다. 구글도 초창기에는 직급 체계를 원하지 않았는데 잘 풀리지 않자 점점 직급 비슷한 것을 만들기 시작했죠. 스타트업이 수평적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의 의견을 다 듣고 '컨센서스(의견 합의)'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도 위험한 일입니다. 예를 들어 10명이 모여서 다같이 결정을 내린다고 해서 10배 더 완벽한 결정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훨씬 느리고 비효율적이고요. 스타트업 CEO의 역할은 해당 분야에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인물이 누군지 파악하고, 그 사람이 원한다면 아이디어나 의견을 제안하되 최종적으론 그에게 결정을 내리게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책임도 해당 결정권자가 지는 것이죠."

스타트업 리더십 원칙
④스타트업에서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은 대기업보다 1000배 힘들다

―대기업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나와 창업할 때 흔히 하는 실수는 무엇인가요.

"대기업에서 사업 개발이나 영업을 하며 수백만 달러짜리 계약을 따내던 사람이, 스타트업에 와서 그런 '큰 계약'을 쉽게 따낼 수 있다고 믿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대기업 직원일 때는 회사 브랜드 덕분에 협상 우위가 있죠. 한마디로 우리 사장님의 칼을 대신 휘두르고 있다는 겁니다. 대기업 세일즈맨들의 피칭(영업을 위한 설득)이나 발표 능력이 보잘것없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명함에 있는 회사 로고가 바뀌면, 나를 만나주는 사람부터 급이 달라진다는 얘깁니다. 스타트업은 협상 테이블에서 우위에 있지 않습니다. 아무도 몰라주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는 겁니다. 스타트업으로 옮겨오면 자신의 업무 능력의 진짜 수준을 알게 되고, 자신의 진짜 인맥을 가려내게 됩니다."

⑤'스타트업 출신 대기업'이 장악한 시장, 대체하기 어려워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우버, 에어비앤비의 경우 작은 스타트업에서 시작해 지금은 거의 대기업이 됐습니다. 1위 업체들이 장악한 시장을 변혁할 스타트업이 또 나올까요.

"상장(IPO) 단계까지 간 업체들을 더 이상 '스타트업'이라고 규정할 수 없지요. 언급한 업체들이 몸담은 산업마다 경쟁업체가 나타날 수 있는지는 조금씩 다를 겁니다.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처럼 여러 브랜드가 공존할 수 있는 시장이 있는 반면, 페이스북처럼 1위 업체가 대부분을 장악하는 시장이 있습니다. 산업의 특성에 따라 다른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이 잊었지만 사실 페이스북 전에는 '마이스페이스(Myspace)'가 있었고 그 전에는 '프렌스터(Friendster)'가 있긴 했습니다. 페이스북 이후에도 새로운 누군가가 등장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대체하긴 매우 어렵습니다. 해당 시장에서 절대적 점유율을 갖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⑥스타트업 창업자 '할 만큼 했다'고 느끼는 순간 물러날 때

―성공적으로 창업한 스타트업의 생애주기는 어떻게 됩니까. 언제까지 '스타트업'이라고 불러야 합니까.

"제가 20대 때 '와일드시드(Wildseed)'라는 스타트업에 취직했는데 어느 날 회사가 매각될 것이란 소문이 돌았죠. 당시 와일드시드의 창업자인 에릭 엥스트롬(Engstrom)을 찾아가 소문이 진짜냐고 물었습니다. 에릭은 '우린 스타트업이야. 값만 잘 쳐주면 당연히 팔아야지'라고 말했습니다. '스타트업은 외부 투자를 받는 순간부터 매물'이란 말이 있습니다. 스타트업 CEO는 어느 정도 회사가 성장하면 비전을 토대로 출구전략을 생각해야 합니다. 매각할 건지, 상장까지 갈 것인지, 다음 단계는 무엇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창업자이자 CEO로서 '무'에서 '유'를 창조해냈고 규모의 성장도 이뤘지만 그 이후 무엇을 하고 싶은지 고민해야 합니다. 저는 '할 만큼 했다고 느끼는 순간'이 그 자리에서 물러나거나 회사를 팔 때라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상장한다면 상장기업 CEO로서 투자자들과 통화하고 회의하는 게 본인의 적성과 안 맞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대기업에 스타트업을 매각하고 나면 '대기업 생활'을 시작해야 합니다. 스타트업에선 내가 CEO였지만, 대기업에선 상사에게 보고해야 하죠. 그게 안 맞는다면 결정을 내려야겠죠."

⑦성장 최고점이고 위험 최저점일 때 매각해라

―스타트업을 두 번 매각했고 두 회사 모두 매각 이후에도 오랫동안 경영에 관여했습니다. 회사는 언제 팔아야 합니까.

"스타트업의 생애주기를 보면, 회사가 실패할 위험이 줄어들고 불안정한 요소가 감소할수록 점점 큰 기회를 잡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회사가 당장 자금이 바닥나서 불안정하면 스타트업 CEO로서 협상할 때 불리해질 수밖에 없죠.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성장은 최고점이고, 위험은 최저점일 때 파는 겁니다. 인스타그램은 5000만달러의 투자를 유치한 지 일주일 후 페이스북에 10억달러를 받고 회사를 매각했습니다. 회사 가치를 낮게 매겨 투자금을 유치해 자금 상황에 대한 불안감을 없앤 뒤, 인수자에게 더 높은 가격으로 넘긴 겁니다.

물론 스타트업의 성장 곡선은 항상 일직선인 것은 아니고 고점과 저점을 오갑니다. 결국 제품이 불러일으킨 관심의 사이클을 잘 타야 합니다. 예를 들어 대대적으로 주목을 끌고 있는 제품을 출시하기 직전이라면, 이미 제품을 출시해서 그다지 주목을 못받는 상황보다 더 높은 인수가를 부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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