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성장률 하락은 美 경기 변동과 달라 부양책 그만 내놓고 인적자본 육성해야

    • 김세직(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입력 2016.02.20 03:05

김세직(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김세직(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한국 경제도 위기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한국 경제의 위기는 급격한 대내외 환경 변화로 갑자기 찾아온 단기적 성격의 위기가 아니다. 장기적으로 성장률이 하락하는 '성장률 추락 현상'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경제성장률이 하락하는 이유는 보통 두 가지다. 첫째, 경기가 후퇴하거나 대내외 충격에 따른 일시적인 위기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이 경우 경기가 상승 국면으로 전환되거나 위기가 지나가면 경제성장률이 다시 반등한다. 둘째, 장기 성장률이 하락하면서 경제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경우다. 이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경제성장률은 더 떨어진다. 지난 20년간 한국이 겪은 성장률 하락은 두 번째 이유 때문이다.

한국 경제는 제로 성장 시대에 빠르게 접근 중이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장기 성장 추세를 나타내는 10년 이동 평균 성장률은 5년마다 평균 1%포인트씩 떨어졌다. 김대중 정부 시절 5%대였던 것이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4%대로 하락했고, 이명박 정부 때에는 3%까지 떨어졌으며, 박근혜 정부에서는 2%대로 주저앉을 것으로 보인다. 이 추세가 이어지면, 차기 대통령 임기 말에는 장기 성장률이 0%대에 진입할 수도 있다. 강력한 대내외 충격이 온다면 0%대 추락 시점이 더 빨라질 수 있다.

아쉽게도 그간 정부의 처방은 잘못됐다. 정부는 경제성장률 하락을 막기 위해 번번이 경기 부양책을 써왔다. 한국 경제의 성장률 하락이 미국처럼 경기 변동에 기인한 것이라면 재정정책·통화정책을 써 경기를 부양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경제성장률이 장기적으로 하락하는 경우에는, 경기 부양책은 효과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경기 부양책이 경제성장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장기적으로 경제성장률이 하락한다는 것은 수요가 아니라 공급, 즉 생산 쪽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수요를 진작시키는 과도한 경기 부양은 버블을 키우고, 부채와 한계기업 숫자만 늘릴 수 있다.

한국 경제성장세가 빠르게 둔화되는 정확한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기술과 인적 자본의 성장이 정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기업과 근로자의 '창의성'을 뒷받침하는 제도적 인프라가 발달하지 못했다. 기업이건 근로자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없으면 살아남기 힘든 시대다. 그러나 암기와 문제풀이 중심의 교육제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장려하고 보호하는 법과 문화가 취약한 상황이 기술의 진보와 인적 자본 발전을 방해하고 있다.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됐던 자본주의의 경쟁 체제가 급속히 무너지는 것도 원인이다. 자본주의는 계속해서 더 많은 참가자가 경쟁에 참여할 때 성장한다. 이 과정에서 우수한 인재와 위대한 기업이 생겨나며 자본주의 체제의 효율성과 역동성은 커진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실질적으로 경쟁에 뛰어들 수 있는 참여자의 숫자와 범위는 점점 축소됐다. 부모의 경제적인 지원 없이는 제대로 경쟁하기 어려워지는 대학입시제도, 소규모 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을 저해하는 금융제도가 대표적이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와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저커버그 같은 새로운 인재들이 등장해 기술 진보를 이끄는 미국과 다르게 한국 기업 생태계의 역동성은 급격히 떨어졌다.

지금부터라도 창의성을 촉진하는 교육제도를 만들고, 붕괴된 자본주의 경쟁 시스템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한국 경제의 성장 신화는 추락하고 있다. 진정한 구조 개혁은 문제의 본질을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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