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어쩌면 영원히… 석유투자 시대는 끝?

    • 폴 스페딩 (전(前) HSBC 원유 부문 리서치 공동 대표)

입력 2016.02.13 03:04

최근 유가폭락은 8년새 3분의 1로 떨어진 석탄값 경우와 비슷

폴 스페딩 (전(前) HSBC 원유 부문 리서치 공동 대표)
폴 스페딩 (전(前) HSBC 원유 부문 리서치 공동 대표)
최근 유가 급락은 1985~1986년 유가 하락의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당시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내 회원국과 갈등을 빚자, 원유 생산량을 늘렸고 유가가 하락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번 사태에도 같은 대응을 하고 있다. 미국 내 셰일업계와 점유율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증산을 선택해 유가를 떨어뜨렸다.

그러나 최근 유가 폭락은 1980년대 중반의 유가 하락보다는 석탄 가격 폭락과 비슷한 점이 더 많다. 석탄 가격은 2008년 t당 140달러였지만, 현재는 t당 40달러다. 석탄 투자는 곧 위기로 이어진다. 석탄 투자 비용이 잠재 수익을 훨씬 웃돌기 때문이다.

석탄 가격 폭락은 석탄 수요 감소를 목적으로 한 환경 정책의 결과였다. 기후변화 대응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중국과 미국에서는 대기오염을 막기 위해 탄소와 수은 배출 기준을 더 강화하고 있다. 천연가스 가격을 낮추고, 재생 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노력이 더해지면서, 에너지 시장에서 석탄 점유율은 서서히 낮아졌다.

비슷한 일이 석유 시장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압력이 더 커지면서, 화석 연료 수요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업계에서 예상하는 것보다 유가 하락 압력이 오랫동안, 어쩌면 영원히 지속될 수 있다.

오랫동안, 어쩌면 영원히… 석유투자 시대는 끝?
김의균 기자
영국의 경제학자인 디터 헬름(Helm)을 포함한 일부 전문가는 유가 하락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실질적 국제 공조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이유로 꼽는다. 원유 시장이 경기를 탄다는 점, 투자자들이 단기적인 유가 하락에 베팅했다는 점, 원유 자산 대부분이 국가 소유라는 점을 감안하면 기후변화를 완화하기 위한 정책들이 유가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낮다고 봤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쉽게 반박할 수 있다. 국제사회가 이른 시일 안에 탄소 배출 비용에 대한 합의를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환경 정책이 이미 석유 수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게다가 유가는 수요나 공급의 작은 변화로도 크게 움직인다. 2014년 배럴당 120달러였던 유가는 현재 35달러까지 떨어졌다. 해당 기간에 수요와 공급의 변화 폭은 합쳐서 2%(하루 평균 약 200만배럴) 정도다. 사우디아라비아가 1일 생산량을 100만배럴 이상 늘리고, 유럽연합(EU)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석유 수요를 연간 1.5% 줄인 결과다. 파리 기후협약을 계기로 각국 정부는 약속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석유 수요 줄이기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유가가 경기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에너지 시장의 구조적 변화로 유가는 크게 상승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전기차·하이브리드·수소연료전지차 등 대체 운송 기술 덕분에 이미 석유의 필요성은 낮아지고 있다.

석유 관련 자산 대부분이 국가 소유라도, 공개적으로 거래되는 자산을 산 투자자들이 보호받을 수는 없다. 정부는 수익이 나지 않는 자산을 전략적으로 쥐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민영화된 국영기업의 주식을 소유한 투자자들은 그럴 수 없다. 더구나 유가가 장기간 하락한다면, 첫 번째 희생자는 고비용 생산자일 것이다. 이 고비용 생산자 중 많은 기업이 주식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다. 투자자들로선 투자 위험이 커지는 셈이다.

원자재 시장은 가격이 하락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기후변화 문제에 대응하라는 정치적 압력을 고려하는 현명한 투자자라면, 석유 가격 하락을 초래할 수 있는 정책과 석유 투자로 큰 손실을 볼 가능성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놓치면 안되는 기사

팝업 닫기

WEEKLY BIZ 추천기사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