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초인플레이션 우려? 양적완화는 무죄

    • 노아 스미스(스토니브룩대 교수)

입력 2016.02.13 03:04 | 수정 2016.02.13 03:18

경제가 아니라 정치 요인

노아 스미스(스토니브룩대 교수)
노아 스미스(스토니브룩대 교수)
베네수엘라의 물가 상승률이 올해 720%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공식적으로 지구에서 초(超)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가장 심각한 나라가 된 것이다.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휴지, 물 같은 생필품을 사려면 배낭에 현금을 잔뜩 넣고 마트에 가야 할 지경이다.

초인플레이션에 대한 정의를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연간 50% 이상 물가가 상승하는 걸 '초인플레이션'이라고 말한다. 인터넷 금융사전 인베스토피아를 보면 '초인플레이션은 수치로 규정할 수 없다. 초인플레이션은 물가가 통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치솟아서 인플레이션이란 단어 자체의 의미가 없는 상황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초인플레이션이라고 하면, 1979~1980년에 목격했던 연 12~13%의 물가 상승 시기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짐바브웨, 아르헨티나,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처럼 물가가 1000%씩 비정상적으로 상승해야 초인플레이션이라고 볼 수 있다. 경제학자들은 종종 두 가지 현상을 잘 구분하지 않는다.

저명한 거시경제학자 토머스 사전트는 1981년 발표한 '4개국 초인플레이션의 종말(The End of Four Big Inflations)'에서 중앙은행이 대규모 통화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신빙성 있게 선언할 때 초인플레이션이 끝난다고 주장했다. 바꿔 말하면 국민들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가 밑도 끝도 없이 돈을 찍어낼 것이라고 믿으면 물가가 베네수엘라처럼 상승하고 달러가 휴지 조각이 될 것이란 뜻이다.

[Weekly BIZ] 미국이 초인플레이션 우려? 양적완화는 무죄
작년 2월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한 수퍼마켓에서 주민들이 생필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화폐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는 초(超)인플레이션이 지속되면서, 기초 생필품을 구하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AP뉴시스
사전트의 이론을 보면 왜 연준이 물가 상승을 통제하지 못할까 봐 안달복달하는지 이해가 된다. 과거 대공황으로 침체기를 겪을 때도 미국 정부는 물가 상승률이 4%에 가까워지는 걸 두려워했다. 2009년 연준이 대규모 양적 완화 정책을 펼치자, 매파(강경론) 거시경제학자들은 미국 경제가 초인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개인적으로 이런 분위기에 동의할 수 없다. 초인플레이션 우려가 정책 방향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감안하면 초인플레이션에 관한 더 깊은 연구와 이해가 필요하다. 요즘 경제학자들과 정책가들은 1980년대 토머스 사전트의 이론을 의심없이 받아들인 이후, 이를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이제 사전트의 이론을 재검토할 때다.

과거 사례를 보면 초인플레이션은 주로 정치 상황이 매우 불안한 국가에서 발생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기관들을 통제하면서 동시에 자본주의 경제를 사회주의 경제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독일의 경우 제2차 대전에서 패배하고 전후 정치적 소용돌이를 겪을 때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아르헨티나와 짐바브웨 모두 비슷한 정치적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 여기까지만 봐도 초인플레이션은 정치적 원인에 의한 현상이지, 경제적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초인플레이션의 또 다른 특징은 순식간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통화의 가치가 매우 급작스럽고 빠르게 하락한다. 자산 거품이 확 꺼지거나 은행에서 빠른 속도로 예금을 인출해가는 '뱅크런'이 발생하는 것, 혹은 신흥 시장에서 투자금을 급히 회수하는 것과 비슷하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두고 모든 사람이 도망치려고 출구로 몰리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특정 통화에서 빠르게 발을 빼려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초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것이다.

초인플레이션은 1970년대 말 미국에서 발생한 조금 심한 형태의 인플레이션과 다르다. 정상적인 거시경제 모델은 왜 특정 통화에 대해 급격한 뱅크런이 발생하는지를 설명하고 있지 않다.

추측하건대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가 갑자기 증발하면 초인플레이션을 촉발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금, 달러처럼 대체할 수단이 있는 통화를 쓰고 있는 국가라면 해당 국민은 기존 통화를 주저없이 포기해 초인플레이션을 일으킬 수 있다. 또 정치적 불안정성도 큰 역할을 한다. 독재자가 나타나 중앙은행을 그의 입맛대로 조정하기 시작하면 초인플레이션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초인플레이션이 왜 발생하는지에 대해서 다시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일본 같은 국가에선 이런 연구가 더 중요하다. 일본은 정부 부채도 많고 양적 완화 정책도 공격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마이너스 정책 금리를 도입하면서 물가 상승 위험이 높아졌다. 하지만 일본은 정치적으로 매우 안정적이다. 엔화를 대체할 만한 대체 통화 수단도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적 불안정성뿐만 아니라 여러 요소가 더해져야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적자 재정을 돕기 위한 중앙은행들의 양적 완화 정책은 초인플레이션 우려로부터 안전하다고 봐도 된다. 베네수엘라의 공포는 이해하지만 미국이 초인플레이션에 빠질 것이란 우려는 과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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