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콘 경제는 환상이었을까

입력 2015.10.24 03:04

"위기" "옥석 가리기" 스타트업 사회 격론

'유니콘(unicorn·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의 비상장 스타트업)의 시대'는 저무는 것일까.

차세대 유니콘으로 각광받던 신제품 개발 회사 '쿼키'가 지난달 파산했다. 기업 가치 18억달러로 유니콘 순위 82위인 메모저장 서비스 '에버노트'는 최근 인력을 18% 감축하고 대만·싱가포르·러시아 지사를 폐쇄했다. 최근에는 기업 가치 104억달러로 유니콘 순위 10위인 파일공유 서비스 '드롭박스'의 위기론도 흘러나온다. 경쟁사였던 '박스'의 주가가 기업상장(IPO) 후 50% 가까이 떨어지면서, '드롭박스' 가치에 거품이 붙은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기 때문이다.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최근 드롭박스의 지분 가치를 종전보다 24%나 낮춰 발표했다. 드롭박스의 당초 기업 가치가 인정받기 위해서는 내년 매출이 20억달러는 돼야 하지만, 드롭박스의 올해 예상 매출은 5억달러에 불과하다는 설명이 붙었다.

[Weekly BIZ] 유니콘 경제는 환상이었을까
사진=Getty Images Bank, 그래픽=박상훈 기자

주식시장에 상장하기 전에는 쟁쟁했던 유니콘들이 막상 상장 후에는 힘을 쓰지 못하는 현상도 두드러진다.

월스트리트 저널지(紙)에 따르면, 2014년부터 IPO를 한 유니콘 49개 중 11개는 IPO 이전보다 주가가 떨어진 상태다. 핀테크 기업인 온덱캐피털은 공모가가 주당 20달러였다. IPO 이전 장외에서 거래될 때 주가의 3분의 1 수준이다. P2P(개인 간 거래) 대출업체 렌딩클럽도 상장 후 기업 가치가 반 토막 났다.

유니콘들도 자신감을 잃으면서 IPO를 주저하고 있다. 올 들어 상장한 미국 기업 중 스타트업 비중은 14%로, 1995년 이후 가장 낮았다. 스타트업들은 IPO를 하지 않아도 투자를 받으면 되니 문제가 없다. 하지만 투자자에겐 IPO를 통한 투자금 회수가 막혀버린다는 게 문제다.

기업 가치가 매출액이나 사용자 수 등 실제 기초 체력(펀더멘털)보다는 투자자들의 기대감을 근거로 몸값이 부풀려진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가가 떨어질 때의 속도도 빠르다. 최근에는 미국 금리 인상 현실화와 중국 경기 침체 지속으로 유니콘으로 몰리던 자금이 빠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러다 보니 '제2의 닷컴 버블 사태'를 예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마이클 모리츠 세쿼이아 캐피털 회장은 "멸종할 유니콘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며 "스타트업 거품 붕괴가 임박했다"고 경고했다. '유니콥스(유니콘들의 시체)'가 즐비해질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는 전문가도 생겼다.

유니콘이란 2013년 11월 미국 벤처캐피털 회사인 카우보이벤처스 설립자 에일린 리가 언론 기고문에서 처음 사용하며 유행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매우 희귀하다는 뜻으로 이 단어를 사용하며 전 세계 스타트업 39개를 제시했는데, 이 숫자는 불과 1년 반 만에 세 배로 늘어났다.

미국 스타트업 정보업체 CB인사이츠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유니콘은 총 113개사다. 미국 기업이 69개사, 중국은 15개사, 인도는 7개사, 영국은 5개사, 싱가포르는 3개사다. 한국은 쿠팡과 옐로 모바일 등 2개사가 이름을 올렸다. 미국 벤처캐피털인 안드레센 호로위츠는 "이제는 희귀한 '유니콘'이 아니라 흔한 '얼룩말'로 단어를 바꿔야 한다"며 비판할 정도다.

유니콘 위기, 왜 발생했나

①지속 가능한 수익 구조 없어

전문가들은 에버노트와 드롭박스가 위기에 처한 것은 지속 가능한 수익 구조를 못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조광수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는 최근 위기에 처한 유니콘들은 대부분 'O2O' 사업 모델을 갖지 못한 업체들이라고 말했다. O2O는 '온라인 투 오프라인(online to offline)'이란 뜻이다. 조 교수는 "온라인으로 상품을 판매하지만 실질적으로 고객에게 오프라인 제품을 안겨주는 기업들이 아니면 오래 살아남기 힘들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유니콘 순위 1위인 '우버'는 '택시사업', 2위인 샤오미는 '가전제품', 3위인 에어비앤비는 '숙박업'을 통해 직접 고객과 만나는 기업"이라며 "한 스타트업이 잘되면 카피캣(copycat·복제품)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광고와 같은 2차 수익 구조에 기대를 거는 기업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②과도한 자금 몰려 버블 형성

각국의 저금리와 양적 완화 정책 등으로 돈이 유니콘에 너무 몰린 것도 불안 요소다. CB인사이츠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스타트업에 벤처캐피털 자금이 564억달러 가량 들어갔다. 2001년 이후 최대치다.

실리콘밸리 인근 샌프란시스코의 집값은 뉴욕 맨해튼보다 더 비싸졌다. 이 역시 닷컴 버블 이후 처음이다. 집값과 함께 인건비도 급증했다. 유니콘 경제의 유지비가 너무 많이 들게 됐다는 뜻이다.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대표는 "지금 유니콘 위기는 1990년대 말~2000년대 초의 닷컴 버블 때와 상당히 유사한 패턴"이라며 "우버·에어비앤비 같은 '스타'가 나오다 보니 돈이 몰리고, 돈이 몰리다 보니 진짜뿐 아니라 가짜, 무능력자, 사기꾼 등이 모두 몰려 버블이 형성됐다"고 말했다.

도미닉 바턴 맥킨지 회장도 "일부 유니콘 몸값이 지나치게 높게 매겨지는 것은 사실"이라며 "너무 과대 포장돼 있다 보니 기업공개(IPO)를 하고 난 후 몸값이 떨어지는 회사들도 나온다"고 말했다.

③유니콘 고객 충성도 낮아

유니콘 기업들의 고객은 로열티(충성도)가 약하기 때문에 잘나가던 기업이 한순간에 무너질 위험이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통적인 산업 제품의 주기는 30년인데 유니콘 경제 주기는 5년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2의 닷컴 버블 붕괴는 아니야

다만 전문가들은 유니콘 기업에 거품이 있더라도, 닷컴 버블 때처럼 단기간에 많은 기업이 무너져 경제를 뒤흔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번 위기로 거품이 낀 기업들이 정리되고 알짜배기들만 살아남아 더욱 강해질 것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①아이디어 사업이 아닌 진짜 사업

낙관론을 펴는 전문가들은 과거 닷컴 기업들이 단순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인터넷상에서만 사업을 한 반면, 현재의 유니콘들은 대기업처럼 제품 생산과 판매를 같이하는 회사들이 많다는 점을 든다. 종류도 보험, 바이오부터 헬스케어까지 다양하다.

도미닉 바턴 맥킨지 회장은 "15년 전 IT 버블과 같은 사태는 없을 것"이라며 "유니콘의 수익 모델인 드론, 빅데이터 등의 기술은 앞으로 비즈니스 지형을 바꿔놓을 '진짜' 사업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②전 세계에서 자라고 있는 유니콘들

유니콘들이 미국 실리콘밸리뿐 아니라 중국·인도 등 전 세계로 확산돼 있다는 점도 과거와 다른 유니콘 경제의 안정성을 보여준다. 임정욱 스타트업 얼라이언스센터장은 "유니콘이 많을수록 그 나라 경제 기반이 건강하다고 평가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③유니콘 종사자들의 다양성

유니콘 창업자나 경영층이 과거 IT 기업보다 안정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인터넷 강의 업체 '코세라'의 대표는 2012년 예일대 총장을 은퇴한 릭 레빈이다. 68세인 그는 스스로를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CEO"라고 부른다. 그는 "기존 교육 시스템에 20년 넘게 있다 보니 앞으로는 돈이 없어도 누구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플랫폼이 각광받을 것이라고 생각해 창업을 결심하게 됐다"며 "내가 가장 잘 아는 분야로 창업을 하다 보니 투자를 받는 것도 훨씬 쉬웠다"고 말했다.

네이선 블레차르지크 에어비앤비 CTO도 "현재 유니콘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페이스북 등 기존 회사에서 경험을 쌓은 사람들이 많다"며 "이는 회사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 있어서 좋은 요소가 된다"고 말했다.

☞유니콘(Unicorn)

머리에 뿔이 하나 달린 상상 속의 동물. 2013년 미국의 여성 벤처 투자자 에일린 리(Lee)가 기업 가치가 10억달러 이상인 스타트업(start-up·창업 초기 기업)을 ‘유니콘’이라고 부르면서 일반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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