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중앙은행 역할을 물가 안정에만 묶어두나

    • 하워드 데이비스 RBS 총재·前 영국금융감독청(FSA) 청장

입력 2015.10.24 03:04

전통적 시각은
금융 버블 미리 터뜨리면 막대한 사회적 비용 들어… 중앙銀은 혼란 정리에 그쳐야

2008년의 글로벌 금융 위기를 계기로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과 규제 당국은 금융 위기를 막기 위해 무엇을 해야 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활발하게 논의하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시각을 가진 경제 전문가들은 금융 버블이 지나치게 커지기 전에 미리 터뜨리는 정책이 성공하기 어렵다고 본다. 이런 견해를 가진 대표적인 사람이 앨런 그린스펀 전(前)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다. 거품을 터뜨리면 성장이 어려워질 뿐 아니라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들기 때문에 중앙은행의 역할은 금융시장의 혼란을 정리하는 데 그쳐야 한다는 것이다.

반대 의견도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의 경제학자들은 금융 위기로 인해 치러야 하는 비용이 너무 크고, 금융 위기로 생긴 혼란이 진정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지적한다. 그렇기 때문에 금융시장에 지나치게 많은 자금이 풀리거나 신용 거래가 많아질 경우 선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건물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건물 / 블룸버그

최근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 회의에서는 양 진영 사이에 첨예한 논쟁이 있었다.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가 연상됐다. 걸리버는 두 부족 사이의 전쟁에 끼어들게 됐다. 한 부족은 삶은 달걀은 항상 뾰족한 쪽부터 깨야 한다고 믿고 있다. 다른 부족은 달걀은 둥근 쪽부터 깨야 한다는 믿음의 신봉자들이다.

지난 2008년 이후 관련 논쟁은 진척이 없었다. 다만 중요한 변화가 있었는데, 각국의 경제정책 당국자들이 거시 건전성 규제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금융 당국은 금융 사이클을 고려해 은행들에 자본을 더 확충할 것을 요구했다. 간단히 말하면 대출이 빠르게 늘어나고, 돈이 지나치게 많이 풀릴 경우 은행들이 자본을 더욱 확충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래야 경기가 위축됐을 때 은행들이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개별 금융기관의 위험을 관리하는 미시 건전성 감독보다 더 강력한 규제다.

그렇다면 금융 버블을 터뜨리는 것은 어떨까? 물가 상승률이 목표치보다 낮더라도 대출이 과도하고 돈이 지나치게 많이 풀렸다면 금리를 인상하는 것이 정당한가? 중앙은행들은 물가 목표와는 별개로 금융 안정성이라는 목적을 달성해야만 하나?

스페인 중앙은행 전(前) 총재이자 현 국제결제은행(BIS) 총재인 제이미 카루아나는 '그렇다'고 답한다. 그는 통화 안정성과 금융 안정성을 각각 다른 기관이 담당해야 한다는 소위 '분리 원칙'이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카루아나 총재는 금융시장이 어떻게 움직일지 모른다는 이유로 당국이 선제 대응에 나설 수 없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전문가들이 물가에 대해서도, 버블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올리거나 내리는 목적을 꼭 '물가 안정'을 위한 것만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는 점을 확실히 알아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브누아 쾨르 유럽중앙은행(ECB) 이사는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중앙은행들은 명확하게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경우에만 행동에 나서야 하며, 한번 행동하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중앙은행의 독립 원칙도 고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은행은 달성해야 할 정책 목표가 여러 가지가 되면서 판단을 하기 힘들어지는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쾨르 이사는 금융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고 복잡한 문제라고 봤다. 거시 건전성 규제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표명했다. 금융 당국자의 역할은 개별 기관을 감독하는 데 머물러야 한다고 했다.

네맛 샤픽 영란은행(BOE) 부총재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상황에 대비해 3단계 방어선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그는 미시 건전성 감독이 첫 번째 방어선이라고 주장했다. 모든 은행이 신중하게 여신을 취급한다면 전체적으로 과도한 대출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두 번째 방어선은 위험에 대비해 자본 확충을 요구하는 것이다. 거시 건전성을 관리하는 것이다. 이는 전체 금융시장에 적용할 수도 있고, 모기지 같은 일부 시장에만 적용할 수도 있다. 그리고 첫 번째 방어선과 두 번째 방어선이 실패할 경우에만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조정하자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원인과 결과, 논쟁에 관한 자료를 그동안 많이 쏟아냈다. 따라서 중앙은행 고위 인사들이 금융 안정성이라는 주요 이슈를 놓고 아직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는 것은 이상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카루아나 총재의 주장이 타당했고, 쾨르 이사의 주장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가 상승률이라는 단순한 목표를 정한 후 금리를 결정하는 것은 완벽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중앙은행 관계자라면 복잡한 변수를 고려한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상충되는 목표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줄도 알아야 한다. 항상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없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중앙은행 관계자들은 지난 80년 금융 역사에서 손꼽히는 최악의 위기를 겪으면서 많은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실패한 정책을 고집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놓치면 안되는 기사

팝업 닫기

WEEKLY BIZ 추천기사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