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도 애플도 하지 않는 것 중에 딱 하나만 파고들었다

입력 2015.10.24 03:04

[유니콘이 된 비결] 기업 가치 4조원 핏비트 공동창업자 제임스 박

스마트 헬스케어 브랜드 '핏비트(fitbit)'는 창업 8년 만에 기업 가치가 37억달러(약 4조2000억원)로 성장한 '성공한 유니콘'이다. 올해 6월에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되며 속된 말로 '대박'을 낸 회사이기도 하다. 현재 핏비트의 시가 총액은 79억6900만달러. 공동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제임스 박(39·사진)은 단숨에 6억달러(약 6620억원)를 벌어들였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한 경영인이 평균 2.8번 창업한다. 두 번 정도 실패를 경험하고 세 번째 기업을 통해 성공한다는 얘기다.

박 CEO도 하버드대를 중퇴하고 나서 두 개의 회사를 창업해 실패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2007년 세운 세 번째 기업인 핏비트가 성공했다. 박 CEO는 "내 성공은 실리콘밸리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며 "수차례 주저앉더라도 좋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자금을 조달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건물에서 그를 만나 스타트업을 '유니콘'으로 키워낸 방법을 들었다. 그는 마크 저커버그 등 여느 실리콘밸리 공대생 출신 CEO처럼 청바지에 편한 티셔츠 차림이었다.

핏비트 공동창업자 제임스 박
핏비트 공동창업자 제임스 박 / 박상훈 기자
―핏비트가 유니콘으로 성장해 무사히 상장까지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인가요?

"한 분야의 선구자가 된 것, 그리고 한 분야에 집중한 것입니다. 2007년도만 해도 헬스케어 상품을 웨어러블로 몸에 장착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우리는 '삼성'도 '애플'도 하지 않는 것에 주목했지요. 지금은 애플 워치 등 수많은 웨어러블 기기가 나오고 있지만 당시에는 전무(全無)했거든요. 핏비트를 스마트폰에 연동하면 심박수, 운동량 등을 실시간으로 측정해 건강관리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건강관리라는 한 가지 기능에 집중했습니다."

―좋은 아이디어만으로 성공하기란 어렵지 않나요?

"실리콘밸리에서는 가능합니다. 위험을 감수하려는 투자자가 많기 때문입니다. 같은 미국이라고 해도 제가 과거에 창업했던 보스턴 지역의 투자자들은 위험을 회피하려는 성향이 강합니다.

실리콘밸리의 두 번째 강점은 선후배끼리 서로 키워주려는 문화입니다. 실리콘밸리의 가장 큰 투자자 중 한 그룹은 성공한 스타트업 CEO들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어느 정도 돈을 벌고 나면 다른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그들을 키우려고 합니다. 스타트업 CEO들이 벤처캐피털처럼 다른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문화가 실리콘밸리에서는 당연시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민자인 나 같은 사람에게도 상당히 호의적입니다. 학벌, 집안, 경력 등 백그라운드에 관계없이 누구나 아이디어만 좋으면 성공할 수 있는 환경입니다."

창업, 정부가 무언가 해주길 바라지 말라

―한국은 실리콘밸리와 달라서 '유니콘' 탄생이 어려운 건가요?

"실리콘밸리의 장점을 많이 소개했지만, 환경 때문에 사업을 할 수 없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일이 좀 안 풀린다고 남 탓을 하거나 지금 주어진 환경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 가장 큰 실수입니다. 한국 정부는 현재 창업을 장려하기 위해 이미 많은 정책을 펼친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애당초 정부가 무언가 해주길 바라지 마세요.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우리는 정부의 자금이 아니라 민간의 자금을 얻어서 일합니다. 정부의 정책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아요. 그리고 어느 환경이든 완벽할 순 없습니다. 실리콘밸리가 창업할 때 많은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모이고 있고, 그들과 겨뤄야 하는 부담감도 큽니다."

―두 번의 실패로 좌절하지는 않으셨나요?

"두 번의 실패로 저는 기술이 중요하긴 하지만 수익성을 갖추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회사가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돈을 벌어야 합니다. 이를 위한 회계 지식도 필수적입니다. 단순히 감으로 '조금만 있으면 수익이 날 거야'라고 생각해선 안 됩니다. 내가 지금 얼마의 자본을 가지고, 어느 비중으로 투자했고, 얼마의 결과가 나왔고, 현재의 자금으로 회사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등 모든 과정을 금전적으로 따져봐야 합니다. 제가 대학을 중퇴하고 처음 만든 회사는 전자상거래용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였는데, 자금이 떨어져서 접게 됐습니다. 이어 온라인 사진 공유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를 세웠는데, 좋은 기술은 있었지만,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지 못해 다른 회사에 기술을 파는 데 그쳤습니다. 창업으로 성공하고 싶다면 기술, 상품화 능력, 비즈니스 모델 등 삼박자를 모두 갖춰야 합니다."

최고의 스타트업은 경제 위기에 탄생

―경기 침체기에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어렵지 않았나요?

"최고의 회사는 위기에 탄생합니다. 어려운 시기에 창업하면 회사는 금전적으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나갈지 배울 수 있습니다. 오히려 경기가 좋을 때는 무엇을 해도 잘되기 때문에 창업주가 오만해질 가능성이 있어요. 경제 상황은 날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일하다 보면 자금을 할당하고 투자하는 데도 좀 더 신중할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페이스북은 닷컴 버블이 지나간 직후인 2003년에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최근 스타트업은 기업공개(IPO)를 하지 않는 편이라던데, 왜 상장을 결정했나요?

"기업마다 추구하는 바가 다릅니다. 제가 생각했을 때 모든 투자자는 유동성을 원합니다. 투자한 금액을 언제든지 빼서 현금으로 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업공개는 투자자를 위해서 내린 결정입니다. 더 많은 자금을 얻기 위해서이기도 하고요."

―핏비트가 등장할 때는 다른 제품이 없었지만, 지금은 애플이나 삼성 등도 웨어러블 기기들을 출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경쟁력이 떨어질 위험은 없나요?

"우리는 웨어러블 업체가 아니라 헬스케어 업체입니다. 기술을 통해 사람을 건강하게 해주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따라서 애플은 우리의 경쟁 상대가 아니에요. 헬스케어 산업은 고령화가 지속되고 있는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비즈니스며, 많은 기술이 필요합니다. 이 때문에 헬스케어 내에서 웨어러블 기술을 도입한 것이지, 애플 같은 웨어러블 업체가 되려는 것이 아닙니다. 스타트업은 어차피 대기업이 아니에요. 시간이 지나 몸집을 키우면 그룹처럼 여러 자회사를 두고 다양한 사업을 진행할 수 있겠지만, 우선 한 분야에 집중해야만 더 많은 기회를 창출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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