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경제 중국과 비슷, 내수 부진 탓에 수출에 의존

입력 2015.10.04 10:02 | 수정 2015.10.04 10:03

“독일 경제는 이미 지나치게 수출 의존적입니다. 폴크스바겐 사태에 대한 독일 정부의 민감한 반응은 독일 경제의 약점을 단적으로 보여준 셈입니다”

독일 민간 싱크탱크 마셜(Marshall) 펀드의 한스 쿤드나니(사진) 수석 연구원은 그동안 독일 경제의 약점에 대해 꾸준히 지적해온 사람이다. 영국 버밍엄 대학교에 있는 독일 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도 활동 중인 그는 최근 출간한 책 ‘독일의 역습’에서도 수출 중심의 독일 경제에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쳤었다. 폴크스바겐 사태로 독일 경제가 흔들릴지 모른다는 분석이 연이어 나오면서 그동안 그의 주장도 크게 재평가받게 됐다.

그는 “독일 경제는 내수가 취약한 구조적인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하고 수출에 의존해 성장했다”고 지적했다. 독일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이 좋아진 것은 해외 아웃소싱 증가, 독일 내 실질임금 하락, 유로화 도입 등 외부 요인 덕분이지, 독일 경제가 질적으로 성장했기 때문이 아닌만큼 폴크스바겐 사태로 수출이 타격을 받으면, 독일 경제가 힘든 시기를 보낼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폴크스바겐의 디젤 스캔들이 독일 경제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폴크스바겐이 지불할 수 있는 잠재적인 벌금은 180억유로(약 24조2000억원)에 달합니다. 독일 국내총생산(GDP)의 거의 1%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벌금만 놓고 봐도 독일 경제에 미칠 영향은 결코 적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폴크스바겐 사태로 독일 자동차 산업이 위축되고 다른 산업에도 여파가 미치면서 독일 경제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독일 경제는 지금 상당히 수출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수출 의존형 국가입니다만 독일의 경우 수출비중이 어느 정도인가요?

“독일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33%에서 2010년에는 48%까지 올랐습니다. 독일 경제의 성장이 점점 구조적으로 수출에 의존하게 된 것을 뜻합니다. 게다가 독일의 자동차 산업은 독일 경제 전체의 축소판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통일 무렵 독일은 자동차 생산량의 거의 절반 정도를 수출했는데, 2000년대 들어와서는 생산량의 4분의 3 이상을 수출하게 됩니다. 독일 경제는 그간 성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무너지기 쉬운 취약점을 가지게 된 셈입니다.”

-독일 마르크화보다 저평가된 유로화가 독일의 수출 경쟁력을 올려준 것인가요?

“물론 유로화 도입이 독일 수출 기업에 도움이 된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보다는 독일의 내부 상황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독일은 ‘유럽의 병자’로 불렸고, 독일 기업들도 수출 시장에서는 경쟁력이 없었습니다. 마르크화 가치가 높았던 것도 영향을 줬습니다.

이 상황에서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가 추진한 ‘하르츠(Hartz) 개혁안’ 덕분에 독일 경제가 부활했다는 시각도 있지만, 사실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독일 제조업체들이 중동부 유럽에서 아웃소싱 제작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은 냉전이 종식되고 독일이 통일이 된 이후 찾아온 변화입니다. 2000년대 후반 독일 제조업체들은 체코, 헝가리, 폴란드, 슬로바키아 등으로 생산 기지를 옮기기 시작합니다. 폴크스바겐은 체코에서 대부분의 제품을 생산하고, 독일에서는 제품을 조립만 하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이들 지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리적인 이점을 활용한 것입니다.

기업들이 해외의 싼 노동자들을 이용하면서 독일 내 숙련 노동자들의 임금은 하락합니다. 유럽에서 매우 과격하다고 알려진 독일의 노조들조차 임금 억제 동의 정책에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국제노동기구에 따르면 2000년대 독일 노동자의 실질 소득은 해마다 4.5% 줄어든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 결과 독일 제품의 가격 경쟁력은 크게 올라갔습니다. 이는 생산성 증가 때문이 아니라 단위 노동 비용 하락 때문입니다. 덕분에 독일 기업들은 세계 시장 점유율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덕을 많이 봤고, 폴크스바겐이 이 중에서도 수혜를 입은 가장 대표적인 기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유로화 도입으로 독일 제품의 가격은 마르크화를 사용하던 시절보다 더 싸졌습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독일과 중국은 유사점이 있습니다. 인위적인 통화 가치 절하로 수출이 크게 늘어났고,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됐기 때문입니다. ”

-독일 경제는 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약점이 많다는 이야기로 들립니다

“맞습니다. 실제로 독일 경제의 기초체력은 튼튼하지 못합니다. 독일 내부에서 충분한 투자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아담 투즈(Tooze)가 지적했듯이, 독일 내의 순투자 규모는 대공황 기간을 제외하고 역사상 그 어느때보다 낮습니다. 2000년대 무역 수지가 흑자로 돌아서자 독일 기업들은 내수에 투자하는 대신, 투자처를 찾아 바깥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인도중앙은행 총재인 라구람 라잔이 말하듯, 독일의 잉여 자금이 아일랜드와 스페인, 그리고 미국의 주택저당증권 등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현상이 벌어진 것입니다.

게다가 독일은 고령화와 인구감소라는, 인구학적 문제도 안고 있습니다. 2050년이 되면 독일보다 인구가 적었던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의 인구 숫자를 추월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독일이 시리아 사태로 인해 생겨난 난민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에는 인구학적 문제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럼에도 독일 경제가 강하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부 경제 지표만 보기 때문입니다. 가령 독일은 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비중이 큽니다. 내수가 워낙 부진하기 때문에 이 지표가 좋아 보이는 겁니다. 게다가 독일 경제의 경쟁력 개선은 주로 임금 억제에서 얻어진 것입니다. 대다수 독일인들은 경제 성장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정서 때문에 내수 부진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독일 경제는 철저하게 외부 수요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외부 충격에 그만큼 취약하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독일이 유럽 재정 위기에 대해 일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독일은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질 수가 없습니다. 능력이 없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습니다. 독일이 그리스처럼 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들을 돕는 방법은 크게 3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구제금융을 통해 재정위기 국가를 지원할 수 있는데, 구제금융에 필요한 자금을 독일이 많이 부담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독일 내부에서 이에 대한 거부감이 큽니다. 정치적인 이유로 할 수 없습니다. 두번째는 인위적으로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유발해 상대적인 부채가치를 낮추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것 또한 독일이 선택할 수 없는 옵션입니다. 독일 경제의 중추를 담당하는 것이 수출인데, 고물가는 수출 산업을 뒤흔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독일이 선택한 것이 채무를 탕감하는 방식입니다. “

-독일 경제의 가장 큰 외부 리스크는 무엇이 있을까요?

“중국입니다. 독일 수출 시장 가운데 신흥국 시장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고, 그 중에서도 중국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독일이 강점을 갖고 있는 기계공업·자동차 분야는 중국이 가장 큰 시장입니다. 폴크스바겐은 지난해 순이익의 60% 가량이 중국으로부터 나왔습니다.

게다가 폴크스바겐 스캔들이 터지기 전만 하더라도, 폴크스바겐이 중국에서 더 많은 차량을 팔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습니다. 중국 정부가 반부패 척결에 나서면서 아우디, 벤츠 등 고급 차량의 판매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반면 골프처럼 대중적인 차량을 만드는 폴크스바겐에게는 현 상황이 기회라는 시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독일 자동차 기업을 견제하는 중국 내 움직임이 확산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중국 경제 성장세는 둔화하고 있고, 중국 주식시장은 급락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독일 입장에서는 반갑지 않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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