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에 놀라울 정도로 관대한 獨기업 이사회

    • 레오니드 버시스키 블룸버그 칼럼니스트

입력 2015.10.03 03:04

독특한 지배구조
노동자·지방정부·채권자도 참여, 폴크스바겐 이사회 절반은 노동자 대표
勞·社 공동 결정 방식 통해 강력한 단결심

독일 자동차 회사 폴크스바겐의 본사가 있는 볼프스부르크의 건물 옥상에 폴크스바겐 로고가 새겨진 설치물이 놓여 있다.
독일 자동차 회사 폴크스바겐의 본사가 있는 볼프스부르크의 건물 옥상에 폴크스바겐 로고가 새겨진 설치물이 놓여 있다. / 블룸버그 제공

배출가스 조작 파문을 일으킨 독일 자동차 업체 폴크스바겐의 감독이사회는 지난 23일 마르틴 빈터코른 최고경영자(CEO)의 사표를 수리했다. 감독이사회는 이를 발표하며 빈터코른 전(前) CEO가 회사에 기여한 공로를 칭송했다. 회사가 370억달러(약 43조원)에 달하는 현금 보유액의 상당 부분을 그의 재임 중 일어난 사기 사건에 대한 보상금으로 날릴 판인데도 말이다. 독일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광경은 독일의 기업 지배구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폴크스바겐 감독이사회는 "빈터코른 전 CEO는 배출가스 데이터 조작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 발표했다. 배출가스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 폴크스바겐이 특수 소프트웨어를 사용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후 회사가 그 짧은 시간 동안 빈터코른 전 CEO가 조작을 알았는지 여부를 규명할 방법이 있었을까? 폴크스바겐 감독이사회는 올해 4월 빈터코른 전 CEO와 페르디난트 피에히 전 이사회 의장의 권력 다툼 당시 빈터코른 전 CEO를 지지했었다. 폴크스바겐의 주가가 지난달 18일 이후 28% 떨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감독이사회는 빈터코른 전 CEO에게 놀라울 정도로 관대하다.

이는 독일 산업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안슈 자인 도이체방크 공동 CEO는 지난 6월 사퇴했다. 당시 도이체방크는 잇단 거액의 벌금과 자인 전 CEO가 주도한 잘못된 구조조정 계획 탓에 주가가 올 4월의 연중 최고치보다 17% 하락한 상황이었다. 이때도 폴 아흘라이트너 도이체방크 감독이사회 의장은 폴크스바겐 감독이사회가 빈터코른 전 CEO를 향해 말했던 표현 그대로 자인 전 CEO를 치켜세웠다.

2013년에는 독일 재계 순위 5위인 지멘스의 감독이사회가 피터 뢰셔 전 CEO의 사임을 발표하며 "뢰셔 전 CEO의 리더십 아래 지멘스의 실적과 수익성이 상당히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실제로는 뢰셔 전 CEO 재임 중 회사의 중요한 프로젝트들이 연기됐고 한심한 전략적 실수도 많았다. 뢰셔 전 CEO의 전임자인 클라우스 클라인펠트 전 CEO 역시 뇌물 스캔들로 물러나면서도 감독이사회로부터 "클라인펠트 전 CEO의 리더십 덕분에 지멘스는 큰 성장을 이뤄냈다"는 칭찬을 받았다.

이는 단순한 덕담의 문제가 아니다. 수년간 폴크스바겐과 도이체방크, 지멘스에서 벌어진 부정행위와 경영진의 책임감 결여가 독일의 기업 지배구조 시스템에 깊숙이 박혀 있는 문제일 수도 있다. 독일 기업의 지배구조는 일반 주주 말고도 노동자나 지방정부, 채권자 등 다른 이해 당사자들의 이해가 반영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독일 법에 따라 폴크스바겐 이사회의 절반은 직원들이 뽑은 노동자 대표들로 구성된다. 더군다나 20명의 이사 중 2명은 니더작센주(州) 대표들이다. 빈터코른 전 CEO가 4월 권력 싸움에서 승리한 데는 노동자 대표와 지방정부의 지지가 한몫했다. 노동자 대표들은 지멘스와 도이체방크 이사회의 의석 절반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경영진과 노동자, 다른 이해 관계자들의 이익은 '공동 결정(co-determination)'이란 방식을 통해 밀접하게 엮여 있다. 독일 기업에서는 강력한 단결심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깨끗한 기업 문화 형성에 유익하지만은 않다. 데이비드 헤스 미시간대 교수는 최근 낸 보고서에서 지멘스의 뇌물 스캔들과 관련해 "독일 법은 외국 정부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는 것이 불법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밝히는 쪽으로 바뀌었지만, 독일 기업들은 계속 뇌물을 건넨다. 이는 직원들이 외국 공무원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으면 회사가 망할 거라 믿기 때문"이라고 했다.

부정 행위 스캔들이 터지면 모든 회사는 재발 방지를 약속한다. 폴크스바겐은 부정 행위가 입증된 직원들에게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약속했다. 도이체방크와 지멘스는 반(反)부패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약속이나 프로그램이 효과적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도이체방크는 벤치마크(기준지수) 조작과 돈세탁 사건을 조사한 후 러시아 사업을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지멘스는 브라질과 이스라엘, 그리스 등에서 발생한 예전 뇌물 스캔들의 여파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다.

독일 기업들의 불법 행위를 적발하려면 외국 당국의 개입이 필요한 모양이다. 폴크스바겐과 지멘스 사건은 미국 환경보호청의 조사로 밝혀졌다. 도이체방크의 부정행위도 미국과 영국 금융 당국의 개입이 없었다면 지금도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독일 기업들은 폐쇄적인 시스템을 갖고 있다. 이 아늑한 시스템을 외부인이 (불법 행위 적발로) 뒤흔들게 되면 주주 이익은 곤두박질치고 여파는 수년간 계속된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10여년간 독일 사회를 가치 중시 사회로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독일 기업들은 쉬운 먹잇감이다. 독일 매체에 실린 한 칼럼은 빈터코른 전 CEO가 아무런 제재 없이 회사를 떠나게 된 것을 두고 "가치 있는 자동차는 기업이 가치를 중시할 때만 만들어진다. 이제 관건은 폴크스바겐이 언제 다시 가치를 되찾을 것인가다. (빈터코른 전 CEO의) 사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쓰기도 했다.

독일 사회는 20세기에 저지른 잘못을 적극적으로 속죄하고 있지만, 독일 기업의 지배구조는 이런 움직임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독일 기업들이 스스로 바뀔 수 없다면, 투자자에게 더 큰 역할을 주고 다른 회사 관련자들에게 더 큰 목소리를 주는 쪽으로 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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