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버려라… 핵심만 빼고

입력 2015.01.31 03:03

[Cover Story] 바쁜 건 나쁜 것… '에센셜리즘' 저자 그렉 맥커운의 조언

에센셜리즘
Getty Images/멀티비츠
삶에서 직장이 가장 중요한 한 남자가 있었다. 아내가 병원에서 딸을 출산하던 때도 그는 안절부절못한 채 복도를 서성였다. 그의 정신은 다른 곳에 있었다. 아내가 지친 팔로 아기를 안고 있을 때조차 그는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는 이메일을 확인하고 있었다. 직장 상사의 전화가 울렸다. 그는 미안한 얼굴로 아내를 한 번 쳐다보고, "바로 가겠다"고 답했다. 상사는 그를 칭찬했다. "고객들이 자네를 대단하다고 여길 거야." 하지만 그는 회의에 참석한 어느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오히려 안절부절못하던 자신을 고객들이 불편하게 여긴다는 느낌을 받았을 뿐이었다.

그는 화가 났다. 직장을 위해 헌신하려고 했지만, 결국 가족의 마음에는 상처를, 고객과의 관계에서는 불편함을 남겼다. 대신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삶의 우선순위를 스스로 정해놓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이 내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게 된다.

컨설턴트인 그렉 맥커운(Mckeown·38)은 그날 이후 왜 똑똑한 사람들이 일과 삶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는지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게 됐다. 그리고 지난해 '에센셜리즘(Essentialism)'이란 책을 썼다. 글로벌 리더 150명의 특징을 분석한 전작 '멀티플라이어'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그는 이번 신작을 통해 성공하기 위해선 '본질적인 소수'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에센셜리즘은 '더 적게, 하지만 더 좋게'의 사고방식을 실천하는 삶을 의미한다. 그는 "삶의 지혜는 중요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데 있다"고 조언한다.

캘리포니아주 팰러앨토의 한 호텔 로비에서 맥커운 씨를 만났다. 고향 런던을 떠나 미국에 산지 10년이 지났지만, 대화 중간에 섞인 약간의 영국 억양이 매력적이었다.

―에센셜리즘이 무엇인지 설명 부탁 드립니다.

"가장 중요한 일들을 선별적으로 하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것을 다 하려는 생각, 모든 사람의 요청을 수용하려는 생각을 멈추어야 정말로 중요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시간 관리 방식을 바꾸거나, 읽지 않고 지우는 이메일의 숫자를 늘리는 것 정도를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지금 나는 제대로 된 중요한 일에 나의 시간과 자원을 투자하고 있는가?'라고 자신에게 계속 질문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은 일과 기회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중 대부분은 사소한 것일 뿐, 정말 중요한 것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에센셜리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많은 일과 기회 중에서 정말로 중요한 소수를 가려내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부인이 딸을 낳을 때 많은 것을 느끼셨던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다음과 같은 의문들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우리는 저마다 지닌 잠재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선택하는 걸까?' '어떻게 해야 우리 자신과 주변 사람들과 잠재력을 더욱 크게 활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을까?' 이러한 의문들에 대한 고민은 너무나 크고 중요해 저는 스탠퍼드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새롭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책에 따르면 현대 사회에는 비(非) 에센셜리스트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유는 하나입니다. 모든 일을 억지로라도 일정에 끼워넣어 해내면 다 해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 진실이 아닙니다. 이런 식의 삶을 지속하다 보면 첫 번째로 스트레스를 받고, 두 번째로 지치고, 세 번째로 원치 않는 일을 하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살다 보면 결국 생각할 시간을 가질 여유가 없고,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궁리할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는 지난 50년간 이런 인생이 옳다고 믿어 왔습니다. 사회가 계속 그렇게 말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인생은 거짓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렉 맥커운
그렉 맥커운
―한국 사람들은 매우 바쁘게 삽니다. 우리는 비 에션셜리스트인가요?

"이 세상 어느 나라보다 한국 사회는 열심히 일하면 뭐든지 이룰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는 모든 국가가 마찬가지입니다. 현대 사회는 '바쁨'에 지나친 가치를 부여합니다. 저는 최근에 한 여성을 만났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고 묻자 그녀는 활짝 웃으면서 '요즘 너무 바빠 죽겠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마치 바쁘다는 걸 자랑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어 그녀는 '나는 2주 동안 매일 밤 4시간밖에 못 잤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가 바쁘다는 사실로 증명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

그는 마치 강연을 하듯 속사포 같은 열변을 이어갔다. "이것은 일종의 버블(bubble)입니다. 인터넷 버블과 부동산 버블이 터지면서 2000년과 2008년 경제를 망가뜨린 적이 있듯 오늘날에는 '바쁨의 버블'이 존재합니다."

―'바쁨의 버블'은 무슨 뜻인가요?

"모든 버블은 사람들이 실제보다 높은 가치로 어떤 대상에 대해 평가할 때 발생합니다. 그린스펀이 말한 비이성적 과열이죠. 하지만 모든 버블은 언젠가 터지고, 그동안 숨겨져 왔던 비용이 드러나게 됩니다. 많은 사람은 '그동안 의미 없는 것에 내 인생을 바쳤구나. 그동안 평생 힘들게 살았는데, 진정 행복한 게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살기 힘들어진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어느 정도는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만약 제가 게으르다면 어느 정도 수준의 삶도 영위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여기에는 한계점이 있습니다.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열심히 일한다 해도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저 피곤하고 불행해질 뿐입니다."

―책에 '성공의 역설'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에 대해 더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제가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왜 어느 정도 성공한 사람들이 그다음 단계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할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했습니다. 성공하기 전까지 소수의 선택만 주어지기 때문에 몇 가지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뒤에는 '일을 믿고 맡길' 사람이라는 좋은 평판을 얻기 때문에 많은 기회가 생깁니다. 처음에는 긍정적으로 해석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기회가 많아진 만큼 에너지가 분산되고, 포기하지 못하는 일이 많아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할 수 없게 됩니다. 결국 맨 처음의 성공이 결과적으로 성공을 방해하고 실패로 이어지는 촉매가 되는 겁니다. 성공은 자칫 '규율이 없는, 많은 것에 대한 추구'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무리한 요구는 우아하게 거절하라


―책에서 쓸데없는 요구는 거절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직장 상사 요청에 '아니오'라고 말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거절의 기술이 있나요?

"물론 거절하는 게 언뜻 이기주의나 방종으로 비칠 수도 있습니다. 나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고요. 이를 위해 저는 '아니오'라고 말하기보다 새로운 제안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아한 거절(graceful no)'법입니다. 예를 들어, 직장 상사가 지나친 업무를 줄 경우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요. '지금 5가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잘(good) 할 수 있지만, 4개의 업무라면 훌륭하게(great)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걸 원하시나요?'라고요. 태도와 말투도 중요합니다. 망설일 필요 없이 간결하게 의사를 전달해야 상대방도 기분 상하지 않고 당신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상사가 무례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10가지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전부 훌륭하게 수행할 수 없습니다. 상사에게 트레이드 오프(trade off·상충 관계)를 알려야 합니다.

그걸 잘 보여주는 게 바로 이 그림입니다. 왼쪽과 오른쪽 모두 같은 크기의 에너지를 쓰지만, 왼쪽은 에너지가 사방으로 분산되면서 어느 방향으로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오른쪽은 한 방향으로만 에너지가 집중되면서 크게 나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석 달에 한 번 가장 중요한 일을 정하라


트레이드 오프
트레이드 오프
―에센셜리스트가 되기 위한 연습이나 훈련이 있습니까.

"가장 좋은 방법은 적어도 석 달에 한 번 정도는 현실에서 한 발짝 떨어져 생각하고 뒤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겁니다. 그간 무엇을 해왔고, 어떤 일이 중요했는지, 어떤 중요하지 않은 일에 시간을 허비했는지 곰곰이 생각하고 다음 분기를 계획합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목표 세 가지를 구체적으로 정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현재 추진 중인 프로젝트를 끝낸다든지, 가족과 저녁 식사를 10번 이상 함께 한다든지, 이런 식이요."

―중요도를 결정하는 방법으로 책에서 소개한 '90퍼센트 법칙'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을 하나 선정한 다음, 그것을 기준으로 0점부터 100점까지 점수를 매기십시오. 만약 어떤 선택의 대상에 90점 미만의 점수가 매겨진다면 그건 0점과 다름없다 판단하고 버리십시오. 이러한 방식을 통해 판단을 내리지 못해 머뭇거리거나, 60점이나 70점짜리의 선택들에 발목을 잡히는 나쁜 상황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 정도 점수에 낮은 선택의 대상에 여러분의 소중한 시간과 노력을 쓸 이유가 없습니다.

'최우선순위'라는 의미의 영어 단어 'priority'가 처음 등장한 것은 1400년대입니다. 그 후 500년 동안 priority는 단수형으로만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900년대 이후 'priorities'라고 복수형이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 자체가 현실을 왜곡한 비논리적인 현상이라고 봅니다. '가장 우선시되는 것'이 어떻게 여러 개일 수 있습니까?"

열변을 토하는 그는 다소 상기되어 있었다. 주변에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들이 중요한 일을 선별하지 못한 채 스트레스받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기색이었다.

"문제는 한정된 우리의 노력과 시간을 분명한 목적의식을 갖고 중요한 곳에 투입하지 못한다면 직장 상사와 동료, 고객 등 남에게 끌려 다니게 되고, 결국 우리 자신에게 의미 있고 중요한 것을 알아볼 수 있는 시각 자체를 잃게 된다는 겁니다.

다른 사람의 요청을 덥석 받아들이고 나서, 일도 잘 진척되지 않고 바쁘기만 한 상황을 원망해 본 적이 있을 겁니다. 단지 다른 사람의 기분이 나쁠까 봐, 혹은 그 사람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길까 봐 무작정 요청을 수락하는 일이 얼마나 자주 있나요? 혹시 '알겠습니다'라는 대답이 사람들의 사고 회로에 내장되어 있어 자동적으로 응답하는 건은 아닐까요?"

―아이를 낳는 아내의 곁을 지켜주지 못해 '실패'를 경험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일이 더 에센셜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일을 선택하는 게 맞나요?

"한 호스피스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녀가 임종을 앞둔 사람들에게 '무엇을 후회하나요?'라고 물었을 때 대답은 대부분 비슷했다고 합니다. 사회가 원하는 일만 했을 뿐 스스로 진정으로 원하는 일은 못한 것과 이 때문에 가족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입니다. 제가 아는 한 친구는 생일날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포기하고 일을 했습니다. 그런 결정을 할 당시에는 그게 맞는다고 느끼겠지만, 버블이 터지면 결국 후회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책에서 이런 주장에 대해 강조하진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의 가치관은 다르니깐요."

―하지만 성공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희생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일 이외의 가치를 우선시하면서 일에서 성공을 거두기란 어려울 것 같은데요.

"성공이란 건 상당히 주관적이고 불안한 개념입니다. 인생을 놓고 보았을 때 사회적인 성공이 얼마나 큰 행복을 주는지에 대해 우리는 지나친 가치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화목한 가정과 좋은 친구가 줄 수 있는 행복에 대한 담론은 아직 우리 사회에서 많은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자신이 세운 컨설팅 회사 대표인 맥커운 씨는 네 명의 아이의 아버지다. 기자와의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걸음을 재촉하며 빠르게 걸어나갈 정도로 치열하게 살지만, 매일 아침 반드시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인문학 서적이나 성경을 읽는다. "제게 가장 에센셜한 가치는 가족과 종교입니다. 이 두 가지를 지키기 위해 오늘도 바쁘게 살 뿐, 바쁜 삶 자체가 제 우선순위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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