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승계, 핏줄 아닌 전문경영인을 믿어라

    • 장세진 KAIST 경영대 교수

입력 2015.01.31 03:03

[장세진 교수의 '전략&인사이트']

장세진 한국과학기술원 경영대 교수
장세진 KAIST 경영대 교수
오마하의 현인(賢人)으로 알려진 워런 버핏 버크셔 헤서웨이 회장은 줄곧 가족 경영을 비판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2세 경영자들을 통틀어 '운 좋은 정자 클럽(lucky sperm club)'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버핏이 2014년 자신의 아들인 하워드 버핏을 후계자로 삼는다고 발표했다. 천하의 버핏도 84세가 되니 자식에게 끌리는 정을 뿌리치지 못한 것일까?

그러나 버핏의 발표엔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버핏은 은퇴를 대비해 자신의 기존 역할을 최고경영자(CEO), 이사회 의장, 투자 책임자의 셋으로 나누었다. 버핏은 이미 두 명의 전문 투자 매니저를 고용했고, CEO 역할을 맡을 전문 경영인을 회사 안팎에서 모색하고 있다. 아들에게 맡길 역할은 이사회의 의장으로 "버크셔의 문화와 가치를 유지하는 일"로 명시했다.

하워드 버핏은 대학을 중퇴했으며, 옥수수 농장을 경영하고, 아버지로부터 증여받은 재산을 기부한 자선 단체 운영이 주업이다. 또 지역사회 봉사 차원에서 1년에 225시간 이상 방탄조끼를 입고 권총을 찬 채 무보수 경찰 보조원 역할을 수행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아버지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으며 그 정도의 역할은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버크셔 헤서웨이가 강조해 온 주주 가치의 증대라는 목적을 위해 전문 경영인 CEO에게 권한을 이양하며, CEO가 권한을 남용하지 않게 감시하면서도 간섭하지는 않는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 2세, 3세 경영자의 경영 능력과 자질에 대해 많은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가족 경영이 갖는 장점도 많다.

그러나 문제는 경영자로서의 능력이다. 전문 경영자들이 십수 년 이상 경쟁을 통해 살아남으면서 능력을 인정받은 데 비해, 서른 남짓으로 미국에서 MBA를 받은 학력 달랑 하나밖에 없는 이들의 능력은 검증되지 않았다. 비상장회사는 가족 경영을 하더라도 결국 가족이 모든 책임을 지므로 상관없다. 더욱이 중소기업은 유능한 전문 경영인을 영입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그러나 수많은 인재가 CEO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입사하는 대기업 특히 상장기업은 2세보다 더 유능한 전문 경영인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일본 기업들에 대한 필자의 실증 연구는 전문 경영인을 잘 활용할수록 경영 성과가 높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상장된 일본의 3400여개 기업 중 창업자 가족 지분이 5% 이상이며 창업자 또는 가족이 CEO의 역할을 수행하는 기업은 2146개였는데, 2004년까지 이 중 389개사가 전문 경영인 체제로 전환했다. 이들과 모든 조건이 유사하지만, 여전히 가족 경영 체제를 유지하는 동종 산업의 기업을 뽑아 전문 경영인 체제 전환 후 3년까지의 경영 성과를 비교했다.

그 결과, 전문 경영 체제로 전환한 기업들의 경영 성과는 가족 경영 기업에 비해 평균적으로 높으나, 그 차이는 전문 경영인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워런 버핏 버크셔 헤서웨이 회장(왼쪽)이 아들인 하워드 버핏(중간), 손자인 하워드 워런 버핏(오른쪽)과 함께 가족사진을 찍었다. 버크셔 헤서웨이가 3대에 걸쳐 가족경영을 지속할 수 있을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워런 버핏 버크셔 헤서웨이 회장(왼쪽)이 아들인 하워드 버핏(중간), 손자인 하워드 워런 버핏(오른쪽)과 함께 가족사진을 찍었다. 버크셔 헤서웨이가 3대에 걸쳐 가족경영을 지속할 수 있을지는 아직은 미지수다./블룸버그 뉴스
먼저 창업자 가문의 지분 소유 정도가 높을수록 전문 경영자의 성과가 높게 나타났다. 이는 창업자 가문이 높은 지분 소유를 토대로 전문 경영자에 대한 통제를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전문경영인 CEO의 취임 후에도 전임 가족 경영자가 명예회장이나 고문 등의 명목으로 실제 기업 경영에 관여하는 경우 전문 경영인의 성과가 낮아졌다. 실례로 유통 대기업 세이부의 창업자 츠츠미 회장은 1989년 공식적으로 은퇴했음에도 불구하고, 2005년 증권거래법 위반으로 기소될 때까지 실권을 쥐고 있었다. 그동안 세 명의 전문경영자가 CEO를 역임했지만, 명목에 불과했다 (그중 한 명은 불법 거래에 책임을 지고 자살했다.)

이처럼 전문 경영인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주지 못하면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 한국 기업들이 아직도 가족 경영을 선호하는 것은 전문 경영인이 단기적인 성과나 사리사욕을 추구할지도 모른다는 불신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이제는 능력 없는 2세가 자신이 공들여 키운 기업을 망칠 수 있다는 위험도 고려해야 한다.

워런 버핏이 자신의 역할을 전문 경영인인 CEO와 투자 책임자, 이사회 의장으로 삼분해서 각각 후계자를 정한 것은 눈여겨 볼만 하다. 결국은 한국 기업도 산업화를 먼저 이룬 미국, 유럽, 일본 기업들의 경험에서 우러난 진리를 피해 갈 수 없다. 정답은 "전문 경영인에게 믿고 맡기되 견제의 끈을 놓지 않는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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