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평등·박애… 不動의 신념으로 홀로 선 영웅들

    • 박종호 풍월당 대표·정신과 전문의

입력 2012.03.03 03:07

박종호 풍월당 대표·정신과 전문의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는 남녀의 애정극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하지만 '토스카'에 나오는 화가 카바라도시는 우연히 친구인 정치범을 숨겨주고 경찰에 체포된다. 그는 모진 고문 앞에서도 그동안 가슴에 숨겼던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당당히 표출하며 공화정을 찬양한다. 그런 그의 행동으로 인해 그와 그의 연인은 경찰에 의해 죽게 된다.

정치 계절을 맞아 정치꾼들이 여기저기서 자신을 알리기 위해 혈안이다. 이 정당 저 지역구를 넘나들며 이합집산하다가 한 자리를 차지한 후에는 거수기 역할만 하는 그들에게 정치를 맡겨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언제부터 이들이 정당을 만들고 뭉쳐서 놀았던가? 자고로 영웅은 홀로 섰었고, 지성인은 외로웠으며, 교양인은 자신을 내세우려 하지 않았다.

혼자서 움직이는 자유인, 다시 말해 간판이나 타이틀보다 부동(不動)의 신념으로 1인 기사도(騎士)적 삶을 사는 이들이 오페라 명작에서 많이 등장한다.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에 나오는 만리코, '에르나니'의 에르나니, 폰키엘리의 '라 조콘다' 중의 엔초 등은 모두 그런 영웅들이다. 만리코는 백작의 잃어버린 아들이지만, 자기 혈통을 모른다. 집시의 손에서 자란 그는 자유분방한 지성인이 되어서 군대를 만들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병력을 지휘한다. 에르나니는 원래 백작이지만 산적이 돼 반정부활동을 펼친다.

게르만 신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독일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는 기사도 정신에 입각한 영웅담을 생동감있게 담고 있다. / 액상 프로방스 페스티벌 조직위 제공
멸망한 나라의 공작 출신인 엔초는 선원이 돼 뜻을 펼칠 기회를 기다린다. 이처럼 이들은 모두 나라나 정부의 타이틀 없이 스스로 고독한 신념에 의한 인생을 살아간다. 진정한 지식인의 모습들이다. 그들이 모두 귀족 혈통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은, 귀족이 아니라면 교양을 터득할 기회가 없었던 당시의 시대상황 때문이다.

바그너의 '탄호이저'에 나오는 탄호이저나 볼프람, '니벨룽의 반지'에 나오는 지그문트와 지그프리트가 그런 형태의 홀로 선 영웅들이다. '방황하는 네덜란드 인'에 나오는 선장이라는 인물 역시 비록 무대가 땅이 아니라 바다지만, 그런 기사도의 연장선상에 있는 바다의 기사라고 할 것이다. '투란도트'의 칼라프, 마스네의 '돈 키호테'에 나오는 돈 키호테도 그렇다. 이는 '살로메'의 요하난으로 이어진다.

이들 영웅과 기사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섬기는 주인이 없으며 자유인이라는 것이다. 원래 기사란 하나의 권력에 종속된 집단이었다. 그러다가 주군이 죽고 주인을 잃으면서 다른 집단으로 들어가지 않고 홀로 자신의 길을 걷는다. 이들은 권력과 권위를 부정하는 아나키스트(anarchist·무정부주의자)면서 진정한 자율적 인간이 된 것이다.

그들이 가장 큰 가치를 두는 것은 개인의 자유, 정의, 평등, 박애 등이다. 오페라에서 우리는 과거 자율적 지성인들의 모습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당의 권력자가 시키거나 백성들의 인기에 영합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대신 자신의 교양과 신념에 비춰 옳은 행동을 고수한다. 지금 우리 지도자들 중에 진정한 자유인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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