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비참한 종말 알려주는 오페라의 교훈

    • 오페라 평론가(정신과 전문의)

입력 2011.10.08 02:59

박종호 오페라 평론가(정신과 전문의)
많은 사람이 오페라에는 사랑 이야기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양으로 따지자면 맞는 말일 수도 있으나, 개념으로 본다면 꼭 옳은 말은 아니다. 오페라는 '사랑'이 아니라 '사람'을 다루는 이야기다.

예술이라고 다 사람을 다룬 것은 아니다. 고전주의 이전까지 많은 예술이 인간이 아닌 신을 찬미했으며, 자연과 세계를 즐겨 다뤘다. 그러나 오페라만은 오직 인간의 모습을 무대 위에 그려냈다.

오페라에 나오는 인물들이 설혹 신화에 나오는 신이나 우화에 나오는 동물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사람의 모습이라는 것을 모르는 관객은 없었다.

권력을 향한 욕망 또한 우리 인간들의 모습이다.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권력욕이 강하며, 권력을 갖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하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얼마나 악행을 일삼는지, 오페라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베르디의 '시몬 보카네그라'는 이탈리아 제노바 공화국의 총독이었던 시몬 보카네그라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그린다. 서두에 나오는 두 정치가의 대화를 엿들어보자.

한 사람이 자기 후보를 지원해달라고 하자, 다른 사람이 묻는다. "이 선거에서 이긴다면 나에게 주어지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돌아오는 대답은 세 단어 "돈, 권력, 명예"다. 그렇다. 그들의 내밀한 대화에 국민이나 국가 같은 것은 없다. 그들은 오직 힘을 좇고, 돈을 원하며, 나아가 개인적인 영달을 바랄 뿐이다.

권력을 다룬 대표적인 오페라가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일 것이다. 4일 동안 공연되는 이 4부작에서는 권력을 향한 여러 부류의 모습을 보여준다. 제1부에 해당하는 '라인의 황금'에서는 세상을 모두 지배하는 절대 권력을 가질 수 있는 황금이 나온다. 라인 강의 바닥에 있는 이 황금으로 반지를 만들어 끼는 자는 세상을 다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누구도 이 황금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이유는 바로 반지를 가진 자는 권력을 얻지만, 대신에 사랑은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그는 평생 누구와도 진정한 사랑을 나눌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황금을 손에 넣으려는 생각을 아무도 감히 하지 못한다.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권력과 사랑을 양손에 쥘 수는 없다.

그런데 알베리히라는 난쟁이가 나타난다. 그는 외모가 너무나 추해 라인의 처녀들로부터 놀림을 당한다. "어떤 여자도 너 같은 못난이를 사랑하지 않을 거야"라는 처녀들의 말에 충격을 받은 그는 "어차피 사랑을 못할 바에야 권력이라도 쥐자"는 생각으로 황금을 취하여 반지를 만든다. 그리고 오페라가 진행됨에 따라 이 반지는 여러 주인을 거친다.

그런데 반지를 손에 넣게 되는 자는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맡는다. 과연 반지에 저주가 내린 것일까? 아니다. 반지가 아니라, 권력을 가진 자는 결국 파국을 맞는다는 뜻이다. 권력을 탐한 끝은 비극이다. 권력자가 비극을 피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오페라가 교훈으로 던져준다.

오페라에서는 종종 권력의 종말을 보여준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으로 잘 알려진 베르디의 '맥베스'에서는 남편을 권력자로 만들기 위한 부인의 야욕과 아내의 욕심에 휘말려 인생을 망치는 남편 이야기가 잘 그려져 있다.

이 부부는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데 성공하지만, 둘 다 비참한 죽음으로 최후를 맞는다. 베르디의 '포스카리가(家)의 두 사람'에서는 평생을 최고 권력자로 살아온 남자가 개인적으로 세 아들을 모두 잃는 비극을 보여준다. 도니체티의 '루크레치아 보르자'는 지배층인 여성이 남용했던 권력이 결국 자기 아들의 죽음으로 돌아온다는 비극이다.

요즘 지상에는 자리를 향해 출사표를 던지는 많은 선량이 보도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도전이 다만 국민을 위한 것만은 아닌 개인의 욕심으로도 보이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권력을 향한 사다리를 정신없이 오르기 전에, 한 번이라도 명작의 교훈을 생각해본 사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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