⑭ 세상에서 가장 슬픈 남자의 목소리… 그 화려한 부활

    • 오페라 평론가·정신과 전문의

입력 2012.02.04 03:02

오페라 평론가·정신과 전문의
여자의 목소리 중 낮은 소리를 알토라고 부르고, 남자의 높은 소리가 테너인 것은 다들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알토와 테너 중에서는 어느 쪽이 더 높을까? 정답은 알토다. 적지 않은 분들이 "그래도 남자의 가장 높은 소리라면 여자의 낮은 소리보다는 높겠지"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남자는 늘 여자보다 낮은 소리를 내야만 하는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예외를 얘기하고자 한다. 남자임에도 여성처럼 높은 음성을 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중세 이전부터 유럽의 가톨릭교회에서는 여성들이 교회나 수도원에서 성가를 부르는 것이 금기시되었다. 신성한 미사는 남자들만의 것이었다. 그런데 성가를 위한 합창단을 만들 때 남자들만으로는 고음이 문제가 됐다. 그래서 고음부는 소년들을 이용했다. 변성기 이전 소년의 음성은 소프라노처럼 높이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소년들을 사용해 소프라노나 알토 같은 높은 성부를 유지해갔던 것이다.

종종 뛰어난 '보이소프라노(boy soprano)'들도 있었는데, 문제는 그들의 활동기간이 너무 짧았다는 것이다. 잘 부르는가 하면 어느 날 변성이 되어버리곤 하니, 합창단 측으로서도 난감했다. 이런 여러 이유로 보이소프라노들을 거세(去勢)하는 일이 생겨났다. 2차 성징이 나타나는 것을 미리 막아서, 그들의 미성이 영원히 계속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런 이들을 가리켜 '거세한 남자가수'라는 뜻의 '카스트라토(castrato)'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지금 상상하면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카스트라토가 생겨나던 즈음 유럽에서는 오페라가 탄생하여, 오페라에 카스트라토가 많이 기용되었다. 바로크시대의 오페라에서는 카스트라토를 위한 많은 역할들이 만들어졌고, 더불어 카스트라토들은 오페라하우스의 스타가 되었다. 영화로도 알려져 있는 파리넬리 같은 오페라 스타들이 이때 탄생한 것이다. 그들은 부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쥔 인기인들이어서, 가난한 가정의 부모들이 아예 아들을 거세시켜서 극장에 데려오곤 하였다. 자식을 통해서 빈곤을 퇴치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알려졌으며, 집안의 신분 상승도 할 수 있는 길이었던 것이다.

당시의 유명 카스트라토들로는 파리넬리를 위시하여 카파넬리, 니콜리니, 세네시노 등이 있었다. 그들은 비록 고음이지만 성인 남자의 넓은 흉곽을 통하여 여자소프라노와는 다른 독특한 뉘앙스와 애수 어린 빛깔을 띠는 묘미가 있었다. 그들의 비감한 음성은 마치 그들의 인생을 노래하는 듯 슬펐다.

현대에도 여성과 같은 고음을 내는 남자 가수들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카스트라토란 말은 사용하지 않고, 대신에 '카운터테너(counter-tenor)'라는 말로 부른다. 카운터테너는 카스트라토처럼 거세하지 않는다. 요즘에는 굳이 거세하지 않아도 훈련에 의해서 남성이 고음을 낼 수 있다고 보고 있으며, 그런 남성 성악가들이 적지 않게 나와 있다. 이들이 카운터테너다. 즉 그들은 거세를 하지 않은, 훈련에 의한 고음 성악가들이다. 물론 그 중 카스트라토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런 신체적인 구별은 더 이상 묻지 않으며, 모욕적인 단어이기도 한 카스트라토란 말은 사용하지 않는다.

현재 세계적으로 수많은 카운터테너들이 배출되고 있다. 그들은 과거 작곡가들이 카스트라토들을 위해서 썼던 많은 오페라 배역들을 훌륭하게 소화해 내고 있다. 그래서 카스트라토가 사라진 이후 한동안 여성들이 남장(男裝)을 하고 맡아 불렀던 역할들을 다시 남자들이 되찾아오게 된 것이다. 지금 널리 활약하는 카운터테너로는 안드레아스 숄, 데이비드 데니얼스, 베준 메타, 브라이언 아사와 등이 있다. 그들은 지금 세계 오페라계에서 최고급 대우를 받고 있으며, 뛰어난 실력과 높은 예술성을 보여준다.

그들의 곡목은 카스트라토의 전성시대였던 바로크 오페라들이 근간을 이룬다. 즉 헨델의 '줄리오 체사레', '리날도' 등을 비롯한 몬테베르디, 비발디 등의 오페라에서 맹활약하고 있으며, 모차르트의 '미트리다테', 글루크의 '오르페오와 유리디케' 등도 카운터테너의 역할로 유명하다. 여성에게 넘어갔던 역할을 다시 되찾아오는 극장, 역(逆)성차별에 대한 현대의 새 흐름을 상징하는지도 모른다.

관련기사를 더 보시려면,

[박종호의 오페라 이야기] 맥베스·시몬 보카네그라… 권력의 유혹에 굴복 비극으로 치닫는 운명 정신과 전문의·풍월당 대표
[박종호의 오페라 이야기] 자유·평등·박애… 不動의 신념으로 홀로 선 영웅들 박종호 풍월당 대표·정신과 전문의
[박종호의 오페라 이야기] ⑨ 아이를 죽인 엄마… 자신의 목숨을 끊은 엄마 관객은 두 비극 중 누구에게 더 공감하겠는가 박종호 정신과 전문의(풍월당 대표)
[박종호의 오페라 이야기 ①] 老慾은 비극의 시작… 나이 들수록 지혜와 절제가 필요 박종호 정신과 전문의, 오페라 평론가
[박종호의 오페라 이야기] ⑮ 왜 여자가 남자 역을 노래할 때 더 멋져 보였을까 박종호 정신과 전문의·풍월당 대표
[박종호의 오페라 이야기] ⑬ 클라이맥스 직전 흐르는 간주곡처럼 한번 멈춰가는 삶의 지혜를 박종호 오페라평론가(풍월당 대표)
[박종호의 오페라 이야기] ⑫ 유럽 문화의 그늘 '버려진 아이'… 오페라의 주요 소재로 오페라 평론가(풍월당 대표)
[박종호의 오페라 이야기] ⑪ 서양 사극에 자주 나오는 결투 장면 그것은 그들에게 '신의 재판'이었다 박종호 오페라 평론가(풍월당 대표)
[박종호의 오페라 이야기]⑩ 이별을 다룬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추방은 사색의 원천이며 창작의 조건 박종호 (정신과 전문의, 풍월당 대표)
[박종호의 오페라 이야기] ⑧ 사건의 진행을 설명하고 해설 합창은 무대 위 세상의 여론 정신과 전문의·오페라 평론가
[박종호의 오페라 이야기] ⑦ 오페라에 나오는 의사들은 왜 하나같이 추악할까 박종호·정신과 전문의(오페라 평론가)
[박종호의 오페라 이야기 ⑥] 권력의 비참한 종말 알려주는 오페라의 교훈 오페라 평론가(정신과 전문의)
[박종호의 오페라 이야기 ⑤] 위기 상황에서조커처럼사용되는오페라 속의 약 박종호·오페라 평론가(정신과 전문의)
[박종호의 오페라 이야기 ④] 오페라 무대 위 미친 여인들… 그 황홀한 광란 박종호·오페라 평론가(정신과 전문의)
[박종호의 오페라 이야기 ③] 처절한 사랑의 아리아… 비정한 사회를 고발하다 박종호·오페라 평론가(정신과 전문의)
[박종호의 오페라 이야기 ②] 오페라는 웅변한다… 올라간 다음은 추락이라고 오페라 평론가·정신과 전문의

놓치면 안되는 기사

팝업 닫기

WEEKLY BIZ 추천기사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