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빚 부추기는 정부정책

    •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입력 2017.02.11 03:00

1300조원 한국 가계부채는 저금리보단 담보 대출 완화 탓

올해 우리 경제의 가장 큰 위험 요소는 가계 부채이다. 가계 부채는 2016년에 1300조원을 넘었고 가처분소득의 150%에 달했다. 이렇게 가계 부채가 급증한 이유부터 짚고 넘어가자.

우선 낮은 금리를 들 수 있다. 가계 부채는 한국은행이 설정한 기준금리가 3%대였던 2012년에는 5%대 증가율을 보였다. 그러다 기준금리가 인하됐고 가계 부채 증가율도 꾸준히 높아졌다. 2015년에는 기준금리가 1%대로 내려왔다. 가계 부채 증가율은 10%대에 육박했고 부동산 가격도 끌어올렸다.

美 금리 인상으로 위기 맞은 가계 부채

하지만 가계 부채의 증가 요인을 저금리에만 돌릴 순 없다. 2014년 7월 취임한 최경환 부총리가 '초이노믹스'라고 하는 대규모 부양 정책을 시작했다. 그 중심엔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부동산 담보대출에 대한 규제 완화가 있었다. 결국 초이노믹스는 가계가 빚을 내어 부동산에 투자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부동산 가격을 띄워 경기 부양을 노린 정책이라 할 수 있다. 단기적으로 손쉽게 경기를 부양할 수 있지만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두고두고 부담을 줄 수밖에 없는 하책이다.

저금리와 느슨한 규제 중 가계 부채 급증에 더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무엇일까. 국내 경제는 저금리와 규제 완화가 동시에 진행됐기 때문에 어느 정책이 더 큰 문제인지 알기 어렵다. 이에 대한 답은 미국의 경험에 관한 최근 연구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미국에서도 우리와 비슷하게 2000년대 초반부터 1%대 저금리가 한동안 유지됐고, 부동산 규제가 느슨해지면서 가계 부채가 급증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한 시점은 저금리가 시작되기 전인 1990년대 후반이다. 글래스-스티걸법이 1999년 폐지되면서 금융 분야의 규제 완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때다. 결국 미국의 경험은 서브프라임 등급의 저신용자들에게 부동산 가격보다 더 큰 규모의 대출을 허용했던 느슨한 금융 규제가 가계 대출 증가, 부동산 가격 급등의 좀 더 직접적 원인이었다는 걸 보여준다.

[Weekly BIZ] 가계 빚 부추기는 정부정책
Getty Images / 이매진스

사실 저금리가 항상 가계 부채 증가와 부동산 가격 급등이란 결과를 가져오는 것도 아니다. 부동산 대출에 대한 규제는 강화하면서 금리를 내렸다면, 풀린 돈은 부동산이 아니라 더 생산적인 쪽으로 흘러갈 수도 있었다. 그랬다면 가계 부채가 급증하지 않았을 것이고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에 도움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가계 부채 수준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이제는 막대한 가계 부채를 어떻게 관리해 큰 위기를 피할지 고민해야 한다. 지난 12월에 이어 올해도 미국의 금리 인상이 예고돼 있다. 미국을 따라 한국 금리도 오르면 가계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진다.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일부 가계가 집을 본격적으로 처분하면서 부동산 가격이 급락할 수 있다.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 멀쩡했던 가계도 어려워진다. 주택 가격이 대출금에 못 미치는 깡통 주택이 속출해 상당액의 가계 부채가 부실해질 것이다. 만약 금융기관이 부실해진 가계 부채를 버텨내지 못하면 우리 경제는 금융 위기 초기 단계로 몰릴 수 있다. 다행히도 최근 연구에 따르면 부동산 가격 하락이 극단적이지만 않으면 금융기관이 이를 버텨낼 수 있을 것으로 보여 미국처럼 대규모 금융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

한국가계부채증가율

저소득 가계 파산 사태 대비해야

가계 부채가 불러오는 위험 또 하나는 저소득층 문제다. 우리나라는 금융 부채가 금융 자산보다 많고 원리금 상환액이 가처분소득의 40%를 넘는 한계 가구가 저소득층에 집중돼 있다. 금리 인상이 본격화하면 이런 가계의 대규모 파산이 우려된다. 이런 일이 현실화할 경우 소득 불평등은 더욱 악화되고 사회적 갈등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일각에선 저소득층에 집중된 가계 부채 부담을 줄여 주기 위해 조건 없이 부채를 탕감해주자는 의견을 내고 있다. 하지만 가계 부채 문제를 이런 식으로 해결하는 것은 또 다른 단기적 땜질밖에 되지 않는다. 부채 탕감을 위한 재원도 문제지만 형평성 측면에서도 사회적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정부가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가계 부채를 대신 갚아준다는 믿음이 생긴다면 그 어느 누구도 빚을 제대로 갚으려 하지 않을 것이고 장래에 가계 부채는 더욱 악화될 수 있다.

가계 부채 문제는 지금이라도 원칙을 가지고 정상적 방법으로 대처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미 부동산 경기가 식으면서 가계 부채 증가세도 주춤하고 있지만, 계속 경계심을 늦추지 말고 가계 부채 총량을 관리해야 한다. 이를 위해 부채가 많은 가구에 큰 충격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점진적으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동시에 정부는 재정정책을 저소득층에게 일자리를 늘려주는 방향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저소득층이 소득을 늘릴 기회를 제공해 한계 가계로부터 탈출하도록 도와야 한다. 또 비효율적 파산 제도를 재정비하고 이 과정에서 생활에 곤란을 겪는 사람들에게는 사회복지 혜택을 확대하여 어려움을 최대한 덜어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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