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1920~1930년대 고립주의 채택했다가 대공황 악화시켜

    •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입력 2017.01.07 03:00

미국의 고율 관세법으로 시작된 보호주의는
경제 보복과 환율 전쟁으로 이어져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을 단순히 세계화에 저항하는 포퓰리스트들의 반발로만 볼 일은 아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 교역과 공동 안보를 양대 축으로 유지돼 온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미국 주도 국제 질서)'의 종언일 수 있다.

세계는 미국 주도 국제 질서에서 70년간 번영을 누렸다. 이 질서는 자유 무역, 자본 이동성 증대, 적절한 사회 복지 정책을 바탕으로 한 시장경제 체제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리고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 동맹 체제를 통해 유럽, 중동, 아시아의 안보를 지켜준다는 보증 덕에 유지됐다.

그러나 트럼프는 무역을 막고 노동과 자본의 이동을 제한할 것 같다. 대중에 영합하는, 세계화에 반대하는 보호주의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그는 미국의 동맹국들이 방위비를 더 많이 내놓아야 한다고 했다. 기존 안보 질서를 흔들겠다는 뜻이다. 트럼프가 진지하게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추구하면, 트럼프 행정부는 오로지 미국의 국익만 염두에 둘 것이다. 고립주의와 일방주의가 미국의 지정학적 전략이 될 것이다.

미국은 1920~1930년대에도 비슷한 전략을 택했다. 결국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미국의 대표적인 고율 관세법인 스무트-홀리법으로 시작된 보호주의는 경제 보복과 환율 전쟁으로 이어졌다. 결국 대공황을 악화시켰다. 당시 미국은 태평양과 대서양이라는 두 개의 큰 바다가 자국을 안전하게 보호해주리라 믿고 고립을 택했다. 미국의 잘못된 믿음은 독일의 나치와 제국주의 일본이 전쟁을 일으킬 기회를 줬다. 미국은 1941년 진주만 공격을 받고서야 고립주의에서 깨어났다.

미국의 고립주의와 우선주의는 오늘날에도 국제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이 유럽연합(EU)에서 당장 손을 떼지 않더라도, EU와 유로존의 분열은 이미 시작된 것 같다. 더구나 올해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극좌·극우 성향의 정당들이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 다른 유럽 국가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만약 미국이 유럽의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 러시아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올 것이다. 러시아는 이미 우크라이나, 시리아, 발트해 연안, 발칸 반도 등에서 미국과 EU에 도전하고 있다. 앞으로도 옛 소련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장하고, 유럽 내 친(親)러시아 운동을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에서 미국의 '안보 우산'이 점차 사라지면, 누구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수혜자가 될 것이다.

트럼프 공약이 실행되면 중동 상황도 악화될 위험이 있다. 트럼프는 미국을 에너지 독립국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 중동에 개입하지 않고, 미국 내에서 화석연료를 생산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극단적 이슬람주의는 물론, 이슬람 자체가 위험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주장하는 '문명의 충돌론'에 힘을 실어준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경제·군사적 개입은 수십년간 지역의 안정을 보장했다. 하지만 중국이 도전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아시아 등 12개국을 경제적으로 묶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제정해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전략을 공식화했다. 그런데 트럼프는 취임 첫날 TPP를 폐기하겠다고 했다. 이에 반해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신개발은행(NDB)으로 아시아와 태평양, 중남미 지역에서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또 TPP에 맞설 자유 무역 체제도 제안했다.

미국이 필리핀·한국·대만 등 아시아 동맹국을 포기한다면, 그 나라들은 어쩔 수 없이 중국의 힘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본·인도는 무장을 강화하고 중국에 맞설 것이다.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철수는 필연적으로 군사적 충돌을 촉발시킬 것이다.

1930년대 미국의 보호주의와 고립주의 정책은 세계경제 성장과 무역을 저해했다. 현 질서를 갈아엎자는 세력이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토양을 마련했다. 1930년대와 거의 비슷한 정책이 실행된다면 새로운 세력이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를 훼손할 판을 깔아주는 것이다. 고립주의적인 트럼프 행정부는 양옆으로 펼쳐진 태평양과 대서양을 보면서 러시아·중국·이란과 같은 나라가 미국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 없으리라 오판할 수도 있다.

세계는 촘촘히 연결되어 있고, 미국은 여전히 세계의 경제와 금융을 주도하는 강대국이다. 미국이 손을 놓고 있는 사이에 다른 나라들이 핵이나 사이버 전쟁 능력을 키우면, 미국의 경제와 안보 이익은 위협받을 수 있다. 역사는 분명히 말하고 있다. 보호주의와 고립주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은 경제·군사적 재앙을 키우는 씨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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