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엔 기존사업 다른 손엔 신사업… '양손잡이 경영' 하라

입력 2016.09.24 03:05

[Cover Story] '기업 혁신 연구 40년' 찰스 오라일리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

찰스 오라일리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
찰스 오라일리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 /스탠퍼드대 제공
시어스(Sears)는 1970년대 초 미국 전역에 매장 3500개를 운영하는 최대 유통 업체였다. 1900년대 초 작은 시계 점포로 출발한 시어스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 국민이 TV와 냉장고, 세탁기, 식기세척기 같은 가전제품을 구입하는 대표 쇼핑몰로 자리 잡았고, 50년 가까이 미국 유통 업계 1위 자리를 지키며 '유통업의 거인'으로 불렸다. 시어스 직원들은 은퇴할 때 수백만달러의 퇴직금을 받았고 회사 내부엔 시어스의 최고 전성기를 일궈온 노장 임직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유통 업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홈디포·베스트바이처럼 특정 분야 제품을 파는 소매 업체와 월마트·타깃 같은 할인 매장을 찾는 소비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반대로 시어스에서 가전제품을 사는 소비자는 줄어들었다. 그러나 시어스 경영진은 변화를 애써 외면했다. 저가 제품을 판매하는 월마트는 고품질 제품을 제공하는 시어스의 경쟁 상대가 아니라고 봤다. 창고형 매장으로 성공을 거둔 코스트코를 인수할 기회가 왔을 때에도 시어스 경영진은 "창고형 매장은 구식"이라며 거절했다. 시어스의 점유율이 낮아지자 경영진은 제품 광고에 패션모델을 등장시키고 기존 매장을 더 화려하게 꾸미는 데 투자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월마트와 타깃처럼 다양하고 값싼 제품을 파는 할인 매장으로 차를 돌렸다. 결국 시어스는 1989년 월마트에 '미국 1위 유통 업체' 타이틀을 내줬다. 1992년부터 2000년까지 시어스의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아트 마티네즈는 "시어스는 100년 동안 쌓아올린 거대한 관료주의와 옛 시절 영광의 노예가 된 회사"라고 말했다. 시어스는 2005년 헤지펀드 매니저 에디 램퍼트(현 시어스 CEO)에게 팔렸지만 여전히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어스처럼 한때 업계 선두를 달리던 기업이 시장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반대로 민첩하게 변화를 감지하고 사업을 재정비할 줄 아는 기업의 비결은 무엇일까.

"선두 기업들은 돈·직원·자원·고객이 많고 브랜드도 갖췄다. 혁신하고 실험하기 좋은 환경을 다 갖춘 셈이다. 하지만 이런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혁신하지 못하고 쓰러지는 것은 잘나가는 기존 사업을 유지하는 일에만 매달리기 때문이다."

40년 넘게 기업의 성공과 실패 요인을 연구해 온 찰스 오라일리(O'Reilly·74)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시어스처럼 변화를 읽지 못하는 기업들이 "성공 증후군에 빠져 혁신에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대기업들이 오랫동안 업계 선두를 지키며 살아남으려면 '기존 사업의 유지'와 '미래 사업의 실험'이라는 두 가지를 동시에 잘하는 '양손잡이 경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라일리 교수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 마이클 터슈먼 교수, 스탠퍼드대 제프리 페퍼 교수 등과 함께 기업 혁신 연구 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손꼽힌다. 이달 초 캘리포니아주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사무실에서 오라일리 교수를 만났다. 그는 인터뷰 도중 강의용 자료를 꺼내어 보여주고, 구체적인 사례도 들면서 답변했다. 이메일을 통해 추가 문답도 주고받았다.

그래픽
사진=토픽이미지, 그래픽=박상훈 기자
성공 증후군에서 벗어나라

―잘나가던 기업들이 시간이 지나면 쇠퇴하고 혁신에 실패한다. 이유는 무엇인가.

"'성공 증후군'의 덫에 갇히기 때문이다. 기업은 일단 성공하면 그 분야에 나머지 조직과 문화, 프로세스를 맞추기 시작한다. 잘하는 것을 계속 잘하기 위해 조직 전체가 그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직원들 사이에도 '이렇게 하면 보상받는다'는 기업 문화가 깊이 자리 잡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잘하던 것은 더 잘하게 된다. 하지만 외부 환경 변화에 무뎌지고 내부 혁신에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하던 일을 계속하려는 관성이 강해진다. 이것이 성공 증후군이다. 기업이 성공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태세를 갖추고 기업 문화까지 형성했으나, 그 성공이 오히려 덫이 되어 발목을 잡게 되는 것이다. 수많은 대기업이 성공 증후군에 빠져 쉽게 변화하지 못하고 밀려나곤 한다. 시어스 경영진이 그랬다. 월마트라는 새로운 경쟁 업체가 등장했는데도 시어스 경영진은 위기라고 느끼지 않았다. 시장이 어떻게 변할지 내다보는 혜안도 없었다. 오직 회사를 크게 키우는 일에만 매달렸을 뿐 변화에 적응하고 새롭게 혁신할 줄은 전혀 몰랐다."

―세계적인 혁신 기업인 애플에 대해서도 성공 증후군을 조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는데.

"애플도 성공 증후군에 걸려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지난 5~6년간 애플이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 적이 있는지 생각해보라. 애플은 이전에 개발한 제품을 계속 만들고 있을 뿐이다. 이달 8일 미국에서 출시된 아이폰 신모델도 기존 제품의 후속 제품에 불과하다. 애플의 기업 문화는 스티브 잡스 때부터 폐쇄적이기로 유명했다. 회사 내 조직들이 서로 의사소통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폐쇄적 조직 문화는 회사 내 실험 정신을 약화시킨다. 모든 업무 절차가 중앙집권적이고, 간부들이 CEO 한 사람에게 모두 보고해야 한다. 한때 잡스에게 직접 보고하는 간부 숫자가 17명이 넘었다. 한 사람의 리더가 내리는 결정이 언제나 옳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절대 그럴 수 없다."

―성공한 기업이 성공 증후군에서 벗어나 변화하고 혁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기업이 혁신하기 위해선 기존에 하던 사업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라 신규 사업을 위한 실험을 꾸준히 해야 한다. 품질 개선, 비용 절감처럼 기존 사업을 지속하기 위한 '관리' 업무와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비하고 새로운 시장을 발굴하는 '탐사' 업무를 동시에 능숙하게 할 줄 알아야 한다. 기존 사업을 관리하는 것과 혁신을 가져올 사업을 탐사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이 두 가지 다른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양손잡이 경영'이 필요하다."

오라일리 교수가 말하는 '양손잡이 경영'의 대표적 사례는 넷플릭스다. 1997년 설립된 넷플릭스의 초기 사업 모델은 매월 일정 금액을 받고 우편으로 DVD를 대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DVD 대여 시장엔 이미 1992년부터 1위를 지켜온 블록버스터가 자리 잡고 있어, 후발 주자인 넷플릭스가 점유율을 확대하는 일은 좀처럼 속도가 붙지 않았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창업자는 정보통신기술 변화를 예의 주시하다 인터넷 속도가 충분히 빨라진 것을 확인하고 2007년 동영상 스트리밍(주문형 비디오) 사업에 전격 진출했다. 소비자들은 DVD를 주문하고 도착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는 스트리밍 서비스로 몰렸다.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는 인터넷을 타고 국경을 넘어 전 세계로 시장을 확대하면서 가입자가 급격히 늘었다. 2016년 현재 전 세계 넷플릭스 가입자는 8300만명에 이른다.

넷플릭스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동영상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는 완전히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우스 오브 카드' 등 인기 드라마를 만들어 HBO 같은 전통적인 콘텐츠 제작사와 경쟁하고 있다.

오라일리 교수는 "기존 시장에서 경쟁하면서 동시에 미래를 내다보고, 필요하면 기존 사업 매출 감소를 감수하며 혁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찰스 오라일리
찰스 오라일리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대기업이 계속해서 업계 선두를 지키며 살아남으려면 기존 사업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미래 사업의 실험을 하는 ‘양손잡이 경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현 기자
회사의 자원을 신규 사업에 활용하라

―양손잡이 경영에서 지금 잘하는 사업도 잘하고, 동시에 미래 성장 사업도 실험하라는 것은 다소 원론적인 얘기로 들린다.

"당연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이를 실천하지 못해 쇠락하는 대기업들이 늘고 있다. 경영진이 둘 다 잘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일본·독일·영국 등 선진국에서 전통적으로 강했던 기업들이 갑자기 파산하거나 헐값에 팔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내가 컨설팅하는 미국 기업의 경영자들만 봐도 '지금 이익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 회사 내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는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최고 경영자들이 단기 실적에만 매달려왔기 때문이다. 2000년 초반 미국 DVD 대여업체 블록버스터 경영진은 넷플릭스가 나타났을 때 얕보고 무시했다. 결국 넷플릭스는 성공했지만 블록버스터는 2010년 파산했다. 위기의식을 가지면 잠재적 경쟁업체를 보는 관점이 달라진다."

―양손잡이 경영을 잘하는 기업이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첫째, 꾸준히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내는 기업 문화를 갖춰야 한다. 민첩하고 변화를 잘 파악하는 직원을 키우고, 외부에서도 아이디어를 받아들여야 한다. 둘째, 신사업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실험할 수 있어야 한다. 대기업은 다양한 사업을 실험할 수 있는 자본과 직원, 고객 네트워크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 멈추지 않고 실험해야 한다. 셋째, 최고경영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실험 결과 좋은 사업이 될 것으로 판단하면 이를 사업화하기 위해 조직의 자원을 조정하고 재분배하는 것이다. 대부분 기업이 첫째와 둘째는 잘하지만 셋째 과제에서 막힌다. 사업 아이디어가 성공할 수 있다고 예상되면 예산을 새로 책정해 투자해야 하는데, 조직 내 갈등이 많이 발생한다. 이때 경영진의 역할이 중요하다. 다른 비용을 절감하고 조직을 재정비하는 동시에 기업 문화를 크게 흔들지 않으면서 성장 가능성 있는 사업을 아낌없이 밀어줄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신사업 탐사를 맡는 혁신 조직은 기존 사업과 별도로 운영되더라도 같은 경영진 아래에서 시작해야 기존 조직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다. 기존 조직과 완전히 분리된 혁신 조직을 만들면 기존 조직의 자본을 끌어다 쓸 수 없고, 브랜드·마케팅·인사 역량도 활용하기 어렵다."

신사업 실험에 실패해도 보상하라

―신사업 실험이 성과를 내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IBM은 2000년대 초 사내에 '신흥 기회' 조직을 따로 만들어 크고 작은 신사업 실험을 했다. 실험이 실패해도 그 실험을 시도한 직원을 적극적으로 승진시켰다. 이런 방식으로 직원들에게 새로운 사업 실험에 성공하지 않아도 직장에서 잘리지 않고 오히려 승진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실험 정신을 고취한 것이다. 그 결과 IBM의 신흥 기회 조직은 2000년부터 2005년까지 152억달러 이익을 냈다. 실리콘밸리 벤처투자자들은 스타트업에 투자할 때 단계적인 성과를 보고 투자 여부를 결정한다. 사전에 정해 놓은 목표 수준까지 성과를 내지 못하면 추가 투자를 집행하지 않는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실험이 어느 정도 단계까지 성과를 내면 계속해서 투자하면 된다. 그러나 너무 단기 성과에만 치중하면 안 된다."

―기업 임직원들이 미래 통찰력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리더가 통찰력을 갖추지 못했더라도 조직은 미래를 내다보는 습성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직원들이 미래 회사를 위협할 잠재적 위험이 있다는 것을 서로 터놓고 의논할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는 얘기다. 기업 문화는 회사 내에서 직원들이 특정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도록 하는 사회적 통제 시스템이다. 혁신적인 기업들은 대부분 적응력, 민첩성, 개인의 적극적인 추진력, 도전 정신을 고취하는 기업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직원들에게 '빠르게 움직이고 혁신을 꾀하라'고 격려한다. 매출, 신규 고객 수, 이익률, 고객 유지율처럼 통상 몸집이 큰 기업들이 성장 속도를 가늠하는 데 쓰는 수치들은 페이스북 직원들에게 별다른 의미가 없고, 직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판매 실적에 따라 고과를 매기고 당장 눈앞의 소비자에게만 초점을 맞추며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조직을 더 중앙집권화하려는 행위들은 모두 혁신과 멀어지는 기업 문화를 만드는 나쁜 버릇이다."

―지금 위기의식을 가져야 하는 산업계는 어디인가.

"당연히 기술 산업이다. 경영자들은 스스로 '지금 우리 기술을 대체할 신기술이 나올까' '새로운 사업 모델이 나올까'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파괴적 혁신은 주로 저가 시장에서 일어난다. 한국 기업들의 경우 삼성전자나 LG전자는 글로벌 위상도 갖췄고 프리미엄 전자제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런 대기업일수록 저가 시장에서 뒤통수를 칠 만한 경쟁 업체들은 없는지 긴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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