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 안 하는 美, 저축 너무 많이 하는 中… 둘 다 문제

    • 스티븐 로치(미 예일대 교수)

입력 2016.05.28 03:06

스티븐 로치
스티븐 로치(미 예일대 교수)
미국 정치인 열 명 중 아홉 명은 중산층의 주적(主敵)으로 무역을 꼽는다. 공화당, 민주당을 막론하고 현재 미 대선 후보들도 다르지 않다. 이들은 중국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같은 무역 협정을 체결하는 것이 미 근로자들의 실업과 저임금을 유발하는 가장 큰 이유로 보고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있다. 이런 논리는 정치적으로 써먹기에 매우 편리하지만, 진실은 무역 적자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

미국의 무역 적자는 한마디로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미국은 수년 동안 가진 것에 비해 훨씬 더 많이 지출하면서 살았고 해외의 과잉 저축을 바탕으로 돈을 흥청망청 써왔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에게 방탕한 소비를 하고 있다고 솔직하게 지적하지 못하기 때문에 외부 요인을 탓하고 있다.

저축 부족 국가는 무역수지 적자를 내는 경향이 있다는 통계 결과도 있다. 미국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은 전 세계 101개국을 상대로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 중이다. 미국의 지난해 말 순저축률은 2.6%로 집계됐는데 이는 1970년부터 2000년까지 30년간 평균치인 6.3%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미국 이외의 다른 국가들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난다. 영국, 캐나다, 핀란드, 프랑스, 그리스, 포르투갈처럼 저축률이 낮은 국가들은 무역수지 적자 규모가 크다. 반대로 한국, 독일, 일본, 네덜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스위스처럼 무역수지 흑자를 내는 나라들은 저축률이 높은 편이다.

저축 부족과 무역수지 불균형은 국제 자본 흐름을 불안정하게 하고 자산 거품을 일으켜 금융위기를 촉발시킬 수 있다. 2008~2009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국가 간 경상수지 불균형은 위험한 수준에 도달했었다. 경상수지 흑자국의 저축 자금이 달러화로 표기된 자산(미 국채)을 구매하는 데 사용되면서 해외의 과잉 저축이 미국으로 흘러들어왔다. 이렇게 흘러들어온 돈이 미국 내 자산·신용 거품을 일으켰고 결국 위기를 부채질했다.

국가 간에도 비난의 손가락질이 멈추지 않는다. 경상수지 적자국은 경상수지 흑자국이 과잉 저축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벤 버냉키 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지난 2005년 3월 연설에서 중국과 같은 개발도상국의 과잉 저축(경상수지 흑자)이 미국 경제를 거의 몰락시킬 뻔했던 자산 거품을 야기했고, 이것이 경상수지 적자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물론 다른 경제학자들은 흑자국의 자본 없이는 미국이 높은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일러스트
/박상훈 기자
결론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저축과 지출의 균형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 아주 단순하게 표현하면, 미국은 저축을 늘리고 소비를 줄여야 한다. 중국은 저축을 줄이고 소비를 늘릴 필요가 있다. 두 국가가 저축과 소비의 불균형을 줄이기 위해서는 기존 사고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중국은 5년 전부터 소비 위주 경제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결과는 아직 더디다. 서비스업 증가, 도시화에 따른 임금 증가로 가계소득이 늘어야 하는데 사회적 안전망에 투자할 자금이 부족하다 보니 가계소득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하지만 어찌 됐든 중국은 모자란 점들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는 13차 5개년 경제 계획을 시작하면서 금리 자유화를 통해 과잉 저축을 줄이고, 예금 보호제도를 보완하고, 주거 자유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1자녀 정책도 완화하는 등 실천으로 옮기고 있다. 중국이 소비 중심 경제로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하는 만큼 중국 경제는 과잉 저축 국가에서 외국의 저축을 흡수하는 국가로 전환할 것이다. 중국의 총 저축률은 2008년 국내총생산(GDP)의 52%에서 올해 44%로 내려온 상태지만,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 그러나 미국은 완전 반대로 가는 모양새다. 미국에선 낮은 저축률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적 도구도 부족한 상태다. 미국 정치인들은 저축이 시급한 상태인데도 과잉 소비를 지속시키는 공약에만 치중하고 있다.

중국 경제와 긴밀하게 상호 의존하는 미국은 중국의 변화를 더 이상 앉아서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다. 결과적으로 중국의 소비가 증가하고 저축이 줄어들게 되면 중국의 외환보유액도 감소할 것이고, 미국으로 돌아오는 미 국채 같은 달러화 표시 자본 규모도 줄어들 수 있다. 미국이 자국 내 저축을 살리는 데 실패하면 미국은 달러 약세, 높은 실질금리 등에 따라 국제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데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그 어느 국가도 저축 없이 무한대로 성장을 이어갈 수는 없다. 미국은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화를 써왔고 또 전 세계가 달러화를 계속해서 샀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실업과 저임금으로 고통받는 미 중산층들도 진실을 깨닫고 있다. 미 정치인들은 미국 경제의 문제는 저축 부족이란 것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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