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결정 빠른 기업이 매출액 성장률 5%포인트 높아… 구글은 1년에 두 번만 팀 회의

입력 2016.05.28 03:06

日 자존심 샤프 몰락 이유는 꼼꼼한 의사 결정 때문일지도
비효율적인 의사 결정 과정 로봇이 대체하는 시대로

"전략 기획 부서에 들어갔으나 하루 종일 보고서 줄 간격 조절하고, 사람들 자료 취합하고, 파일바인더 정리하고 회의실 콘퍼런스콜 전화기 고치는 게 일이었다. 회의가 끝나면 두 시간 이내에 회의 참석자 이름을 전부 파악해 직급 순으로 회의록 공유 메일을 발송했다. 이때 센스가 필요하다. 각 발언자의 뉘앙스를 고려해 토의 내용을 순화하지 않으면 상사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에서 전략 기획, 글로벌 세일즈 및 사내 벤처 부서에서 근무하다 퇴사해 '초일류 사원, 삼성을 떠나다'를 펴낸 티거 장(Jang)이 묘사한 삼성전자의 회의 모습이다.

기업들은 현재 기업이 처한 상황과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회의를 한다. 이른바 '경영 전략 회의'라는 의사 결정 과정을 통해 미래 먹거리를 예측하는 것이 효과적인 때도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경영 전문가들은 이젠 시대가 변했다고 말한다. 의사 결정 시간이 줄어들면 특정 사안에 대해 충분히 검토할 시간이 부족해지고 이로 인해 실패 확률이 높아지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이 많지만, 변화의 속도가 중시되는 현대사회에서 회의를 통해 미래에 다가올 리스크를 대비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의사 결정 시간과 일의 효율성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그때그때 즉각 즉각 결정하는 '즉단즉결(卽斷卽決)'이 필요한 시대, 회의가 불필요한 시대다.

회의실에서 리스크 대비하던 시대 끝났다


일본 디스플레이 업계를 대표해온 샤프는 올해 4월 대만 훙하이(鴻海)그룹에 팔렸다. 전문가들은 샤프가 수요 감소와 경쟁 심화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채 액정 투자를 늘린 탓에 중소형 LCD(액정표시장치) 부문 적자가 불어났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샤프는 미래를 내다보지 못했던 경영진의 무능함으로 인해 회사가 넘어가게 된 것일까.

일본 닛케이비즈니스지(誌)는 샤프의 실패 원인이 오히려 경영자들의 지나친 꼼꼼함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샤프는 세밀한 시뮬레이션 회의를 통해 히트 상품을 내놓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샤프가 1980년대 이미 포화 상태였던 카메라 일체형 VTR(현재의 캠코더) 시장에 진출해 성공을 일군 것도 경영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철저하게 준비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나타난 액정 패널 단가 하락, 한국과 중국 업체의 급성장과 같은 변수를 샤프 경영진이 정확하게 예측하기란 어려웠다. 상상하지 못한 변수들이 차례로 일어나자 샤프는 이에 따라가지 못한 채 우왕좌왕했다.

회의에 할애하는 시간이 적은 기업일수록 좋은 성과를 거뒀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베인앤컴퍼니는 2014년 한 글로벌 기업에서 주 1회 경영 회의를 위해 경영진과 전 종업원이 소비한 시간이 연간 30만 시간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베인앤컴퍼니는 또 매출액 1조원 이상의 글로벌 기업 760개사를 대상으로 의사 결정 효율성을 평가한 결과 높은 점수를 받은 기업이 그렇지 못한 기업에 비해 과거 5년간 매출액 성장률이 5%포인트 높았다고 발표했다. 의사 결정 속도가 빠를수록 결정안의 질이 높았으며, 결단 사항의 실행도 원만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회의 소집 어렵게 만들자 회의 없어져

이 때문에 아예 회의를 어렵게 만드는 기업이 나오고 있다.

반도체 회사 인텔에서는 회의를 소집하려면 경영진부터 말단 직원까지 누구나 회의를 하고자 하는 이유를 자세히 적어 담당 부서에 제출해 허락을 구해야 한다. 이 과정이 매우 번거롭기 때문에 인텔에서는 대규모 회의가 열리거나 회의 시간이 길어지는 일이 거의 없다.

세계 최대의 인터넷 기업인 구글은 팀원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서 하는 회의를 1년에 2회 정도만 실시한다. 예를 들어 최초로 팀이 꾸려지게 되면 회의를 소집해 전체 목표와 팀원 각자의 개별 목표를 설정해주고, 약 1~2주 후 다시 모여 지난 회의의 문제점을 수정하는 식이다. 이후 팀원들 간 의사소통은 전화나 이메일 등을 통해 진행된다. 별도 회의는 없다.

회의 참석자들이 회의 시간에 발언했던 내용으로 인해 응징이나 보복을 당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심어 주는 것도 좋은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회의에 필수적인 요소다.

애니메이션 회사 픽사의 회의 방식인 '브레인트러스트(Braintrust)'는 실리콘밸리 내에서도 창의력을 끌어내는 최고의 회의 방법으로 꼽힌다.

에드 캣멀(Catmull) 픽사 CEO는 "브레인트러스트에서는 그 누구도 지휘권을 갖지 않는다"며 "주제와 관계없이 무조건 논쟁에서 이겨 만족감을 얻으려고 하기보다는 오로지 작품에 집중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빠른 의사 결정 돕는 인공지능 등장

핵심적인 경영 판단까지는 아니더라도 경영 판단의 근거가 되는 자료 도출이나 의사 결정 과정은 로봇이 대체할 수도 있다.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i CEO'가 기업의 의사 결정 과정에 깊숙이 개입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미국의 미래연구소(IFTF:Institute for the Future)는 i CEO가 도입되면 사내 불만을 감수해야 한다는 부담으로부터 회의 주재자가 자유로울 수 있고, 의사 결정 속도도 빨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의 종합 제조 회사인 히타치(日立)는 i CEO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히타치가 2013년부터 개발 중인 소프트웨어는 '동남아 시장에 진출할까'라는 의제를 입력하면 인터넷상에서 1000만건의 자료를 수집해 독자적인 가치 체계를 거쳐 80초 만에 결과를 도출해낸다. 일본의 소프트뱅크그룹도 인재 활용과 배치에 AI를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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