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해외기업 쇼핑 왠지 불안해보이기만…

입력 2016.01.30 03:04

1980년대 일본 기업·1990년대 한국 기업들과 닮은 꼴
현금 풍족했던 일본 기업들 미국 기업·트로피 자산 수집, 돈 많이 주고 사업구상 없어

마이클 슈만 타임지(誌) 베이징 특파원
마이클 슈만 타임지(誌) 베이징 특파원
중국이 기업 쇼핑에 나섰다. 지난 12일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 완다그룹은 미 할리우드 영화 제작사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를 35억달러(약 4조20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사흘 후 중국 최대 가전업체 하이얼은 미 제너럴일렉트릭(GE)의 가전사업부를 54억달러(약 6조5000억원)에 사들였다. 중국은 최근 연이어 해외에 돈을 쏟아붓고 있다. 지난해에는 1180억달러를 해외에 직접 투자했다. 이는 2014년보다 15% 증가한 것이다. 하이얼-GE, 완다-레전더리 거래도 그 중 하나다.

중국 기업 입장에서 해외 업체 인수는 당연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정부가 기업 투자를 적극 격려하고 있고 마침 유동성도 넘쳐나는 상황이다. 중국 기업들은 기술, 브랜드, 점유율 등 부족한 요소들을 글로벌 시장에서 사올 수 있는 실탄을 충분히 갖췄다. 연구개발(R&D)에 투자하고 브랜드 힘을 키우고 영업망을 가꾸는 데 공을 들일 필요가 어디 있겠나. 그냥 현금으로 해결하면 되는데 말이다.

그러나 과거 사례를 들춰보면 인수합병(M&A)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다. 1980년대 일본으로 가보자. 높은 경제성장률 덕분에 현금이 풍족했던 일본 기업들은 미국 기업과 트로피 자산(특정 지역의 상징적인 건물)을 마구 사들였다. 당시 사들인 대표적인 트로피 자산이 뉴욕 록펠러센터다. 하지만 대부분 거래는 인수 금액이 과하게 책정되거나, 제대로 된 구상이나 관리 계획 없이 이뤄진 경우가 많았다. 한 컨설팅 업체는 "인수의 전략적 근거는 흐리멍텅했다"며 "'인수하는 게 폼 나니까, 돈을 쓸 여유가 있으니까 산다'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1990년대 한국 기업들도 비슷한 수순을 밟았다. 한국 기업들도 세계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M&A라는 카드를 꺼냈다. 삼성전자는 1995년 글로벌 PC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AST리서치를 샀다가 수억달러 손실을 봤고 AST리서치는 자본 잠식 상태에 빠졌다. LG전자는 1997년 미국 TV업체 제니스(Zenith)를 인수했다. 제니스는 실적 악화로 고전했고, LG의 해외시장 진출에 제대로 된 도움을 주지 못했다.

하이얼과 GE 가전사업부 합병도 불안한 구석이 있다. 하이얼은 지난 수년간 미국 시장 내 저변 확대를 노렸다. GE 가전사업부를 등에 업고 순식간에 미국 시장 안에서 메이저 플레이어로 활약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 대가는 싸지 않다. 하이얼은 스웨덴 가전업체 일렉트로룩스가 불과 몇 주 전에 제시했던 금액보다 20억달러의 웃돈을 얹어줘야 했다. 일렉트로룩스는 작년 12월 GE 가전사업부 인수가액으로 33억달러를 제시했지만, 반독점 규제 우려로 거래가 무산됐다. GE 가전사업부의 2014년 기준 매출은 50억달러, 세전 영업이익은 4억달러다. 저마진 사업부라는 뜻이다.

하이얼-GE 건을 보면 2005년 레노버가 IBM의 PC 사업 부문을 인수한 사례가 떠오른다. 레노버는 이후 세계 PC 시장에서 1위 점유율을 기록하며 강자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PC 시장은 매년 급속하게 쪼그라들고 있는 산업이다. 2015년 전 세계 PC 출하량은 전년 대비 8% 줄었다.

완다그룹이 영화 '다크나이트' 시리즈와 '인터스텔라'를 만든 레전더리를 사들인 것은 1989년 일본 소니의 컬럼비아픽처스 인수 건을 연상케 한다. 소니는 콘텐츠를 강화하기 위해 영화 제작사를 매입했다. 소니 경영진은 TV와 같은 전자제품 제조엔 능숙했지만, 영화 제작에 대해선 감이 없었다. 이미 다른 영화사와 계약을 맺은 영화 제작자들을 고용했다가 소송에 휘말려 수십억달러를 날렸다. 컬럼비아에서 만든 영화의 흥행 실패도 이어졌다. 소니는 인수 5년 후 30억달러에 가까운 손실을 냈다.

왕젠린(王健林) 완다그룹 회장은 중국에서 부동산을 개발해 고급 아파트와 쇼핑몰을 지으면서 거액을 벌어들인 부호다. 왕 회장이 지금까지 잘 쌓아온 비즈니스를 해외 진출에 대한 자부심 때문에 망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과거 다른 아시아 기업들은 인수 실패를 통해 교훈을 얻어갔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수년간 R&D에 투자해 각자 직접 만든 대표 제품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글로벌 브랜드 인지도를 키워나갔다. 중국 기업들도 수억달러의 손실을 보기 전에 이런 교훈을 깨닫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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