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불평등 해결 없인 미래 발전은 없다

입력 2015.07.18 03:04

[Cover Story] 50년간 불평등 연구 '피케티 대부' 앤서니 앳킨슨

실업과 비정규직이라는 덫에 빠진 한국 청년들이 기성세대에 도움을 청하고 있다. 기득권을 허물고 일자리를 함께 나눠달라는 것이다. 지난달 청년 실업률은 10.2%로 IMF 쇼크 직후(11.3%) 이후로 16년 만에 가장 높았다.

청년 실업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럽에서는 일자리를 독차지하는 기성세대를 비난하는 청년층의 목소리가 거세다. 심지어 프랑스의 한 유명 가수는 청년들이 기성세대에게 '당신들은 모든 걸 가졌다. 평화와 자유, 그리고 많은 일자리. 우리에게는 실업과 폭력, 그리고 에이즈만 남겼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음반을 내놓기도 했다. 기성세대는 '그래도 너희의 젊음이 부럽다'고 말하지만 청년들은 '미래가 없는 유토피아일 뿐'이라고 받아친다.

세계적인 청년 실업은 세대 간의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세대 간 불평등이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대한 견해를 듣기 위해 불평등 문제의 대가 앤서니 앳킨슨(Atkinson·71) 런던정경대(LSE) 교수를 만났다. 그는 지난해 43세의 젊은 나이로 학계에 열풍을 일으킨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멘토다. 피케티는 앳킨슨 교수에 대해 '소득과 부에 관련한 연구의 대부(godfather)'라고 평했다.

앳킨슨 교수는 반세기 동안 불평등 문제를 연구해왔다. 그는 해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며, 1966년 케임브리지대학을 졸업한 후 지금까지 부와 소득의 분배, 빈곤과 복지국가, 유럽의 사회적 의제, 후생경제학에 관한 강의와 연구를 해 왔다. 1994년부터 11년 동안 옥스퍼드대학 너필드 칼리지 학장을 지냈으며 영국경제학회와 계량경제학회, 유럽경제학회, 국제경제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불평등과 관련해 총 23권의 저서와 350편의 논문을 썼고, 불평등 지표인 '앳킨슨지수'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인근 앳킨스 교수 자택에서 그를 만났다. 벨을 누르니 직접 문을 열어주며 반겼다. 벽에 걸린 사진 속 아들딸과 미국에 사는 손자까지 소개하는 모습이 유명 석학이라기보다는 정 많은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었다. 그는 "50년간 불평등을 연구해왔지만, 지금처럼 많은 주목을 받은 건 처음"이라며 "최근 가장 주목하고 있는 것이 세대 간의 불평등"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경제·사회 전반적인 불평등 문제가 세대 간 갈등을 낳고 있으며 이것이 '발전하지 못하는 미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러스트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최근 불평등에 대한 논쟁이 뜨겁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20~30년간 비슷한 수준이 유지됐던 불평등지수는 1980년 이후로 꾸준히 상승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를 '불평등 회귀'라고 부르지요. 소득 분포 최상위에 있는 1%가 전체 총소득에서 차지하는 몫은 1979년에서 2012년 사이에 두 배를 넘는 수준으로 늘어났습니다. 오늘날 상위 1%의 몫은 100년 전 수준으로 돌아갔는데, 미국의 상위 1%는 전체 총소득의 5분의 1 가까이를 가져갑니다. 평균적으로 인구 비중에 비례하는 몫의 20배를 차지한다는 뜻입니다."

―불평등이 확대되고 있는 이유가 뭔가요?

"한 가지 이유를 꼽기는 어렵습니다. 불평등에는 소득, 성별, 인종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는데, 그중에서 최근에 새롭게 주목받는 것은 세대 간의 불평등입니다. 우선 노령화가 진행되면서 노년 세대가 이전보다 많이 일하게 돼 청년들은 이들과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게 됐습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기계가 인간이 하던 일을 대체하면서 일자리가 줄고 있는 상황이라 젊은 세대의 부담은 이전과 비교하면 더욱 커진 셈입니다. 또 노년 인구가 많아서 이를 받치기 위한 청년들의 세수 부담 역시 커지는 추세입니다. 아마 미래의 세대는 지금보다 더 많은 노년층을 부담해야 하는 불평등을 겪게 될 것입니다. 이런 부담은 출산률 저하로 이어질 것이고, 더욱더 심화될 것입니다."

―세대간 갈등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는데, 새삼스럽게 이것이 불평등 문제의 중심으로 올라온 것은 왜인가요?

"최근 심화된 세대 갈등은 지난 30년 동안 급격히 오른 불평등 수준에 기인합니다. 기성세대가 한창 일할 때는 불평등 수준이 오르지 않았지요. 하지만 지금 젊은 층은 불평등 수준이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수준까지 상승하는 것을 경험하면서 '부모 때와 우리는 시절이 다르다'는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큽니다. 단지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에 혜택받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고생만 한다는 생각을 하는 젊은이들이 많으면 한 세대의 무력감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노력해도 삶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개개인의 생각이 모여 희망 없는 사회를 만들게 되고, 이는 발전하지 못하는 미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앤서니 앳킨슨 교수
앳킨슨 교수〈사진〉 는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정부, 노동자, 고용주 등 초국가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분배'를 중시하는 학자지만, 피케티 등 다른 학자들보다는 훨씬 온건하다.

누구보다 오랜 기간 불평등에 대해 연구해 왔지만, 그런 온건한 태도 때문에 큰 논란이나 화제를 일으킨 적이 없다. 그는 우선 시장에 맡겨서 자연스럽게 분배 문제를 풀어갈 수 있도록 한 다음 국가의 정책으로 불평등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얘기한다. 정책으로는 저소득층의 소득을 보장해주거나 부유층의 세습을 막는 방식이 있는데, 그는 최저임금 보장, 누진세, 상속세, 부유세, 자녀수당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는 최저임금 등의 문제가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라기보다는 개개인의 심리와 관련된 문제로, 이것이 사회 전체의 성장 분위기를 좌우할 수 있다고 본다.

―지금 세대 간의 불평등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선 어떤 방법이 있을 수 있나요?

"어려운 문제지만, 일단 최저임금을 상당한 폭으로 올리면 수입을 어느 정도 보장해줄 수 있겠지요. 젊은 세대가 상대적으로 임금도 적고 비정규직도 많기 때문에 기성세대 때와 다르게 취직해도 먹고살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경우는 최저임금 인상이 세대 간 갈등을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제 주장의 핵심은 세금을 내고 정부의 복지 혜택을 받기 이전에 소득의 불평등부터 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직원의 임금이 올라가면 기업도 혜택을 봅니다. 개인의 업무 능력이 향상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지나치게 단순한 얘기가 되지만, 고임금 육체 노동자는 육류 등 고칼로리 음식을 섭취할 수 있기 때문에 더 강도 높은 노동력을 투입할 수 있습니다. 또 남은 돈을 가지고 교육 등을 통해 자신에게 재투자할 기회도 생길 수 있지요. 사회 전체적으로 예상치 못한 후생 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최저임금 인상은 오히려 일자리 감소로 이어진다는 여러 실증적 데이터가 있지 않습니까? 나라에 따라서는 정치적 문제가 되면서 많은 반론이 나오기도 합니다.

"영국에서는 최저임금을 많이 올렸지만 일자리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최저임금을 올려서 기본급여 자체가 높아지면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었을 때 부담하는 비용이 커지므로 이직이 줄고, 고용주는 더 낮은 수준의 체크만 해도 게으름을 피우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경제학에서 쉽게 간과하는 문제 중 하나가 '인간' 혹은 '개인'의 긍정적인 변화 가능성입니다. 개개인의 좌절감이 모이면 결국 세계적인 불행으로 이어지고 경제가 성장하기 더 어려워집니다."

"그래도 세상을 낙관한다"

앤서니 앳킨슨 교수
앳킨슨 교수는 낙관론자다. 21세기가 세습자본주의로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하는 피케티 교수와 다르게 앳킨슨 교수는 세상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믿는다. 그는 "과거에 국가가 힘을 쥐고 있을 때와 다르게 지금은 민간 기업들이 힘을 쥐고 있고, 앞으로 세상이 또 어떻게 변할지는 가늠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지금처럼 활발하게 불평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다면, 역사적으로 우리가 늘 그래 왔듯이 정답은 아니더라도 지금보다 나은 방식을 찾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불평등 논쟁은 보통 정치적 논쟁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경제학계에서는 전체적으로 반대 의견이 많은 게 아닌가요?

"오랫동안 분배나 불평등이라는 개념은 경제학자들의 큰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일부 경제학자는 불평등 문제에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견해를 지니고 있습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루커스 시카고대학 교수는 '건전한 경제학에 해를 끼치는 여러 경향 가운데 가장 유혹적이고, 가장 유독한 것은 분배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며 '분배를 통해 가난한 이들의 삶을 향상시킬 가능성은 생산 증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과 비교할 것이 못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느 정도 맞는 말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난하게 사는 많은 사람의 삶을 개선하는 데 경제성장이 큰 기여를 한다는 점은 맞습니다. 그러나 무한한 경제성장이 과연 지속 가능할까요?

소득 격차의 크기는 우리 사회 본질에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주 여행 티켓을 살 수 있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공짜 급식차 앞에 줄을 서 있다는 것은 분명히 사회 전반적으로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누구도 개인적으로 우주 여행을 할 여유가 없는 사회, 그리고 모두가 평범한 가게에서 음식을 살 수 있는 사회는 그 조직의 문화 자체가 '이해 관계를 공유한다'는 의식을 더 많이 가질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많이 가지고 있다'라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상대적인 박탈감은 무력감과 절망을 낳을 수 있지요."

앳킨슨 교수는 불평등이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하는 근거는 세계 각국 사회가 비교적 평등했던 시절이 불과 몇십 년 전에 존재했었기 때문이다. 세계 대전 이후 수십 년간 그랬다. 그러다가 1980년대 이후 세계는 다시 불평등으로 회귀했다고 그는 주장한다. 앳킨슨 교수는 '전후 몇십 년의 평등'과 '1980년대 이후의 불평등'을 분석했다.

―역사적으로 불평등이 줄었던 시점은 왜 그랬나요?

"우리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을 주목해야 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에서는 소득 격차가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임금 격차가 커지는 동안 가구소득 불균형은 함께 커지지 않았습니다. 가구소득 불평등이 증가하기 시작한 것은 한참 뒤인 1980년대의 일입니다. 우리는 임금 격차가 벌어지면 자동으로 소득불평등이 커지는 것처럼 말하는 경향이 있지만, 전쟁이 끝난 직후 몇십 년 동안 미국은 이런 연결고리를 끊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그랬을까요? 그중 하나는 바로 기혼 여성들이 일자리 시장에 진출한 것입니다. 1947년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기혼 여성의 5분의 1이 급여를 받는 노동력이었는데, 30년 후 이 숫자는 전체의 절반으로 늘어났습니다. 이때 저소득 남성과 결혼한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는데, 이렇듯 누가 노동시장에 들어오고 있느냐에 따라 불평등이 누그러질 수도 있고 커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1970년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이때 노동시장 참여가 늘어난 것은 주로 고소득 남성과 결혼하고 소득 증가율이 평균 이상인 여성들이 일자리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후에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계속 늘어난 것은 남편과 아내가 맞벌이를 하는 가족들 간 불평등을 키웠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수님께서는 지금의 불평등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보시나요?

"물론이지요. 저는 경제적 성과의 모든 차이를 없애는 것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절대적인 평등이 목표가 아니란 말이지요. 사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본인이 노력한 여하에 따른 차이는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제 목표는 지금의 불평등 수준이 지나치다는 전제하에 현재 수준 아래로 불평등을 줄이는 데 있습니다.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움직이는 방향이지요.

이 때문에 불평등에 대한 논의의 장이 열린 것만으로도 매우 기쁩니다. 우리의 생활수준은 과거와 비교해 놀라울 만큼 좋아졌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빈곤과 불평등 등 사회적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100년 전, 1000년 전과 비교하면 놀라운 발전입니다. 물론 이 세상이 유토피아는 아니지만 우리의 삶은 분명 나아지고 있고, 앞으로 더 나아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피케티 논쟁이란?

지난해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Piketty) 파리경제대 교수가 ‘21세기 자본론’을 출간하면서 벌어진 불평등에 대한 석학들의 갑론을박이다. 피케티 교수는 선진 자본주의가 상속받아 부를 늘리는 ‘세습적 자본주의’로 서서히 후퇴해 19세기 말과 비슷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일을 해서 버는 돈은 물려받은 재산으로 벌어들인 돈을 결코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피케티 교수의 대안은 급진적이다. 소득 상위 1%에게 소득세를 최고 80% 물리고, 자산에 대해서도 매년 세금(부유세)을 최고 5~10% 부과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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