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예언가'의 부활

    • 레오니드 버시스키 블룸버그 칼럼니스트

입력 2015.07.11 03:03

"현금 쌓아두면 세금 물려 돈 돌게 해야" 마이너스 금리시대 맞아 실비오 게젤 주장 주목

유럽 일부 지역에서 금리가 마이너스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특이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일부 회사채 투자자가 회사채 발행 기업에 오히려 이자를 지급하고 있다. 변동금리로 이자를 받기로 한 상황에서 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지다 보니 생긴 일이다. 스웨덴, 덴마크, 스위스 은행들은 마이너스 금리로 예금자들을 위협하고, 쫓아내고 있다. 현 상황이 더 오랫동안 유지된다면, 19세기 경제학자 실비오 게젤(Gesell)이 꿈꿨던 '공짜 돈(free money·시간이 지나면서 가치가 낮아지는 돈)'의 세상이 도래할 것이다.
[Weekly BIZ] '19세기 예언가'의 부활
독일에서 태어난 게젤은 아르헨티나에서 수입상으로 일하면서 약간의 돈을 벌었다. 유럽으로 돌아온 후에는 바바리안 소비에트공화국의 재무장관이 됐지만, 1919년 쿠데타 세력에 의해 반역죄로 체포, 기소됐다. 게젤은 이후 방면됐고, 1930년 사망하기 전까지 독일 베를린에서 저술 활동에 전념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게젤을 '이상하고 과격한, 잊힌 예언자'로 불렀다. 게젤은 현금을 빌려주지 않고 비축만 할 경우 세금을 물려 돈을 돌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게젤은 현금 보유자에게 1주일에 0.1%, 연 5.2% 세금을 물릴 것을 제안했다.

'게젤세'는 화폐를 쌓아 두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세금이다. 이 경우 화폐는 교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지만,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의 효력은 잃을 수 있다. 중앙은행들이 낮은 수준의 금리를 유지해서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도 바로 이것이다. 이를 위해 중앙은행들이 때때로 '제로 금리'보다 더 금리를 낮추는 경우도 있다. 중앙은행들은 은행계좌에서 잠자고 있는 돈이 사용되기를 바란다. 소비가 수요를 늘리고, 이것이 결국 디플레이션보다는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젤세가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은 최근의 상황에서 특히 시사점이 있다. 가령 채권 투자자가 채권 발행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이자가 현금 보유로 인해 낼 세금보다 적다면, '돈을 세금으로 날리느니 이자를 적게 내는 마이너스 금리 채권을 사자'는 이들이 나올 수 있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블룸버그 기사에 따르면 프랑스 기업회계담당자협회의 법률분과 위원장인 알렉상드르 아카비는 기관 투자자들이 오히려 이자를 내고도 채권을 사는 이유로 '안전성'을 들고 있다. 기관 투자자들 입장에선 제로금리 아래서 안전하게 돈을 보관하는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경제학자 어빙 피셔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게젤의 아이디어를 극찬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후 경제가 살아나고 금리가 상승하자 수십년 동안 게젤의 아이디어는 잊혔었다. 가장 인기 있는 거시경제 교과서를 쓴 일이 있는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경제학과 학장조차 6년 전 똑똑한 대학원생이 마이너스 금리가 가능하다는 아이디어를 들고 왔을 때 '게젤세'를 떠올리지 못할 정도였다. 이 대학원생의 아이디어는 돈을 찍어내면서 생기는 여러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1년 후 0부터 9까지 숫자 중에서 하나를 골라 이 숫자로 끝나는 일련번호가 있는 모든 화폐는 법적 효력을 잃게 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화폐를 보유할 때 기대할 수 있는 수익률은 -10%가 되는 셈이다. 이런 조치를 하면 연준은 금리를 제로금리 이하로 자유롭게 낮출 수 있을 것이다. 투자자들은 -2%의 금리로 돈을 빌려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게 될 것이다. 10%의 손실보다는 2%의 손실이 낫기 때문이다. 일부는 새로운 차를 사는 데 돈을 쓰기로 결심할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를 정책의 오류로 볼 필요는 없다. 금리 인하의 목표는 원래 총 수요를 늘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현 상황을 보면 '게젤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덴마크처럼 작은 나라들은 물론이고 프랑스같이 경제 규모가 큰 나라들도 이에 해당된다. 경제 하위 계층인 소규모 자영업자와 노동자에게 돈이 흘러가는 시스템은 이미 붕괴됐다. 통화 당국은 소매 경제(retail economy)에 돈이 흘러가기를 원하지만, 기관 투자자들은 이자를 내더라도 채권을 사기를 원한다. 스웨덴 중앙은행은 기준 금리를 -0.25%에서 -0.35%로 인하했다. 크로나화 강세가 경제 회복과 인플레이션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마이너스 금리로 중앙은행이 원하는 수준의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정부는 게젤세의 적용을 진심으로 생각해보기 시작할 것이다. 정부가 게젤세를 고려한다면, 앞으로 닥칠 위기에 대비해 보석, 부동산처럼 시간이 지나도 가치가 유지되는 대체재에 돈이 몰릴 것이다. 케인스는 이를 게젤 모델의 결함으로 지적했다.

마이너스 금리 상황이 널리 퍼지면서, 게젤의 실험은 이미 시작됐다. 미지의 영역을 향해 가면서, 우리들은 돈의 기능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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