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 메르켈 구글 발목만 잡지 말고 인터넷 개혁 좀 하지 그래?

    • 필립 르그레인 前 EU 집행위원장 경제 자문

입력 2015.05.16 03:03 | 수정 2015.05.16 03:17

지난달 유럽연합(EU)이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 구글을 반(反)독점법 위반 혐의로 제소한 것을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경쟁 촉진을 위한 조치’란 의견과 ‘미국 기업에 대한 유럽의 견제’라는 비판론이 맞서고 있다. 위클리비즈는 인터넷의 미래를 좌우할 이번 사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전하고자, 유럽 석학의 관련 칼럼을 번역 게재한다. ㅡ편집자주 

미국 IT 기업들은 EU 규제당국으로부터 전례 없는 공격을 받고 있다. EU는 구글이 유럽 내 인터넷 검색 분야에서의 준(準)독점적 지위를 남용해 자사의 쇼핑 서비스를 우대하고 있다고 제소했다. 또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에 대한 조사도 시작했다. 그리고 EU는 최근 발표한 '디지털 단일 시장 전략'의 일환으로, SNS와 앱스토어 등 대부분 미국 회사들이 장악하고 있는 인터넷 플랫폼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도 촉구하고 있다.

기업의 미심쩍은 관행은 그 기업의 국적에 관계없이 공정·불편부당한 방식으로 교정돼야 한다. 그러나 유럽에선 공정한 조치를 기대하기 힘들다. EU가 규제 맹공을 펼치는 데는 평범한 유럽인들의 복지를 위한 고려가 아니라, 보호주의적인 독일 재계와 독일 정부 인사들의 로비가 자리 잡고 있다.

독일 정부는 자국의 세계적 경쟁력을 자랑하면서 EU 회원국들에 '독일의 개혁에 대한 열정을 배우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독일이 자동차 산업 등에서 세계적인 수출국인 건 맞지만 인터넷 산업에선 낙오자에 불과하다. 독일에는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기업이 없다. 규제와 모험회피적 문화 때문에 독일에서 가장 성공적인 인터넷 기업가들은 실리콘 밸리에 산다. 미국 기업들이 클라우드를 정복한 반면, 독일은 진창에 빠져 있다.

독일 디지털 스타트업들이 과잉규제와 투자부족에 질식해 있는 동안, 아날로그 세계의 공룡들은 정책 어젠다를 정하고 있다. 전통적인 미디어 기업들은 자사 사이트의 인터넷 트래픽을 구글에 의존하고, 자사 콘텐츠에 붙는 광고로 구글이 돈을 버는 것을 분하게 여긴다. 독일 정부가 지분을 갖고 있는 도이치텔레콤은 자사 통신망을 이용하는 스카이프(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화상 채팅 서비스), 와츠앱(페이스북의 메신저), 넷플릭스·유튜브(동영상사이트) 등에서 자기들이 수익을 낼 수 없는 상황을 싫어한다. 세계 최대 여행사인 TUI는 트립어드바이저(여행정보사이트)에 위협을 느끼고, 유통업체들은 끝없이 확장하는 아마존을 두려워한다.

독일은 경쟁을 두려워하는 택시기사들의 요구에 따라 차량 공유기업 우버(UBER)에 대해 전국적 금지령을 내린 최초의 EU 회원국이다. 독일 재계는 미국 IT 기업들이 독일 제조업의 과실(果實)을 먹어치운다고 불평한다. 이를 대변하듯 독일 출신인 군터 외팅거 EU 디지털 경제·사회 담당 집행위원은 "우리가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우리가 멋진 차를 만드는 데 돈을 쓰는 동안, 이익을 가져가는 건 그 차에서 쓸 수 있는 새로운 서비스들을 파는 기업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외팅거의 전임자인 닐리 크로스가 소비자를 이롭게 하고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 혁신적 기술을 옹호한 반면, 외팅거는 염치없게도 독일 재계의 이익 증대를 꾀하고 있다.

미국 IT기업들과의 경쟁을 두려워하는 것은 독일 기업만이 아니지만, EU 내에서 그들의 영향력은 결정적이다. 사실 EU 내에서 독일의 영향력은 역대 최고다. 프랑스와 영국이 유럽 재정위기로 집중력을 잃은 사이, 유로존의 최대 채권국 독일은 유럽의 방향타를 조종하는 위치에 올랐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기민당이 이끄는 유럽국민당 덕에 집행위원장 자리에 올랐다. 기민당은 유럽국민당을 통해 결과적으로 유럽 의회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융커 위원장은 독일 최대 일간지 빌트의 모기업인 악셀 스프링거에도 빚을 졌다. 지난여름 메르켈이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주저할 때 빌트는 강력하게 융커를 밀어줬다. 그리고 융커의 비서실장인 독일 출신 마틴 셀마이어도 독일의 이익이 관철되도록 하고 있다.

지난해 독일은 호아킨 알무니아 당시 EU 경쟁담당 집행위원이 독점규제법 위반과 관련해 구글과 합의에 이르지 못하게 했다. 덕분에 알무니아의 후임자인 마그레타 베스타거는 구글에 대한 반독점 제소를 할 수 있었다. 사실 인터넷 플랫폼에 대한 조사는 지그마어 가브리엘 독일 부총리 겸 경제부 장관의 요구로 시작됐다. 결과 역시 사전에 정해진 듯하다. 유출된 정부 문서에 따르면, 외팅거 EU 디지털 경제·사회 담당 집행위원은 인터넷 플랫폼을 규제할 강력한 신설 기구 설립을 제안하고 있다. 그는 최근 "지금의 검색 엔진과 운영 시스템, SNS를 대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무도 유럽인들에게 구글로 검색해야 한다고 강요한 적이 없다. 클릭 한 번이면 구글의 경쟁 사이트로 넘어갈 수 있다. 쇼핑의 경우 유럽인들은 점점 더 구글을 통하지 않고, 직접 아마존이나 이베이, 페이스북을 이용하고 있다. 따라서 구글은 급변하는 인터넷 환경을 독점하긴커녕 조종하지도 못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피해를 본 것도 아니다. 미국 반독점당국이 소비자 피해 여부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EU는 악셀 스프링거가 소유한 쇼핑 포털사이트 등 경쟁사들의 피해 여부까지 신경 쓰고 있다.

EU 차원의 디지털 단일 시장을 만드는 것은 타당하다. 미국 인터넷 스타트업들이 거대한 내수 시장에서 혜택을 받는 반면, 유럽의 스타트업들은 규제 때문에 협소한 국내 시장에 묶여 있다.

불행하게도 EU의 제안은 이탈리아인들이 영국 웹사이트에서 물건을 살 수 있게 하거나, 스페인 스타트업들에 인구 5억명의 유럽 시장을 열어주는 데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그들의 목표는 미국의 디지털 플랫폼을 제한하는 데 있다. 가브리엘 독일 부총리가 지난 11월 EU에 보낸 서한에서 "EU는 매력적인 단일 시장을 가지고 있고, 시장의 구조를 결정할 정치적 수단을 갖고 있다. EU는 글로벌 무대에서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데 이런 요소들을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측 경쟁자들을 방해하고 혁신을 억누르고 유럽 소비자들에게서 인터넷의 혜택을 빼앗으려 노력하는 대신, 독일은 그간 다른 나라들에 훈계해온 개혁에 나서야 한다. 인터넷 기업의 창업과 성장이 용이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브로드밴드와 디지털 기술에 대한 투자를 촉진해야 한다. 실패한 독일 디지털 회사들을 돕는 비밀스러운 산업정책 대신,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고 스타트업들이 번성할 수 있는 EU 디지털 단일 시장을 만드는 데 힘을 실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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