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어러블 집에 놓고 왔다고 다시 돌아가지 않아… 아직은 패션 소품

입력 2015.05.09 03:03

소니 부 '미스핏' 창업자 겸 CEO

지난달 10일, 중국에서 애플이 내놓은 웨어러블(wearable·입는) 기기 '애플워치'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진풍경이 일어났다. 2만달러, 우리 돈 2161만원짜리 '애플워치 에디션'이 1시간도 안 돼 매진됐다. 2만달러면 최고급 시계 브랜드 롤렉스 '서브마리너(스틸 기준 1000만원 상당)' 2개를 살 수 있는 돈이다. 시계 테두리와 끈 버클(고정 장치) 부분을 18K로 만든 이 시계를 놓고 '누가 2만달러를 주고 전자시계 따위를 사겠느냐'는 조롱도 나왔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애플워치 에디션 외에 이날 9개국에서 판매된 애플워치 전 제품은 6시간 만에 다 팔렸다.
샤인
애플워치의 선전은 웨어러블 컴퓨터 대중화의 신호탄이다. 그러나 웨어러블 컴퓨터 시장을 처음 열어젖힌 회사는 애플이 아니다. 직원 150명에, 창업 4년 차인 벤처기업이 앞서 판을 깔아 놨다.

'샤인(Shine)'으로 유명한 미스핏(Misfit)은 웨어러블 컴퓨터 업계서 '작은 거인'으로 통한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1년을 통틀어 웨어러블 기기 120만대를 팔 동안, 미스핏은 하반기에만 샤인 100만대를 팔았다. 500원짜리 동전처럼 생긴 샤인은 이름 그대로 표면이 반짝거리는 기기다. 목에 걸거나 손목에 차면 사용자의 활동량을 분석해 칼로리 소모량을 알려 준다. 이 숫자를 토대로 운동 시간을 늘리거나 식사량을 줄일 수 있다. '중국의 애플'이라고 하는 샤오미(小米)는 지난해 12월 JD닷컴과 공동으로 4000만달러(약 432억원)를 미스핏에 투자했다. 창업 3년 차였던 스타트업(창업 초기 기업)에 베팅한 돈으론 파격적이다. 그동안 중국 회사를 중심으로 투자에 나섰던 샤오미가 미국 회사 지분을 매입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이 회사 제품과 기술이 탐났다는 뜻이다.

소니 부 미스핏 공동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
소니 부 미스핏 공동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
애플보다 먼저 인간에게 컴퓨터를 입히다

지난달 조선비즈가 주최한 '2015 웨어러블 포럼' 참석차 방한한 소니 부(Sonny Vu·42) 미스핏 공동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를 만났다. 짙은 색 캐주얼 바지에 정장 재킷을 섞어 입은 그의 목에서는 금색 샤인이 빛났다. 그가 허공을 응시할 때마다 두꺼운 안경 렌즈와 샤인이 동시에 천장 조명을 반사했다. "언제나 몸에 지니고 다닌다"는 그의 샤인은 캐주얼에도, 정장에도 제법 잘 어울렸다. 중국어, 히브리어, 베트남어 등 12개 언어를 구사한다는 그는 베트남계 미국인이다. 그는 여섯 살 때 베트남에서 말레이시아로, 다시 미국으로 건너간 이른바 '보트피플' 출신이다. 미스핏에는 예전 애플의 CEO였던 존 스컬리(Scully)도 공동 창업자로 참여하고 있는데, 그가 해고한 스티브 잡스 전 애플 CEO를 소니 부가 가장 존경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소니 부 CEO는 인터뷰 내내 디자인을 수차례 강조했다. 그동안 웨어러블 컴퓨터 업체 CEO들이 기기 성능, 스펙(규격)을 줄줄 왼 것과는 사뭇 달랐다. 그는 "지금과 같이 웨어러블 컴퓨터 시장이 성숙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며 "부러움을 살 만큼 아름답거나, 아예 눈에 띄지 않거나…. 어중간하면 도태된다"고 주장했다.

―현재 웨어러블 컴퓨터 시장은 보통 컴퓨터 시장과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계신가요?

"아직 웨어러블 컴퓨터가 사용자들에게 핵심 기능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볼까요? 사람들 대부분은 스마트폰을 집에 두고 나왔을 경우, 다시 집으로 돌아가 스마트폰을 가져갑니다. 저는 이것을 '턴어라운드 테스트(turn-around test)'를 통과했다고 표현합니다. 소비자와 기기 간에 이 정도 의존성이 성립해야 큰 시장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한데 지금 웨어러블 컴퓨터를 집에 놓고 왔다고 해서 다시 돌아가 가져올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웨어러블 컴퓨터는 아직 턴어라운드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것이죠. 이런 초창기 상태라면 집으로 돌아가게 하기보다는 '우회로(by-pass)'로 돌아가야 합니다. 사용이 워낙 간편하고 착용하기 편해서 24시간 차고 있을 수 있으면 됩니다."

―단순히 착용하기 편하다고 해서 쓸모도 없는 기기를 사용할 사람이 있을까요.

"그래서 현재의 웨어러블 컴퓨터는 디자인이 훌륭해야 합니다. 우리가 처음 샤인을 내놨을 때 사람들은 '이걸로 뭘 할 수 있느냐'고 물었어요. 우린 '기능은 별로 없는데 그냥 손목에 차면 됩니다'라고 말했더니 '그럼 예쁘게 생겼으니 차볼게요'라고 하더라고요. 기능이 웨어러블 컴퓨터 구매를 유도하는 유일한 요소는 아니라는 뜻이죠. 물론 패션은 유행을 탑니다. 어제의 유행이 오늘은 유행이 아닐 수도 있죠. 그러니까 시대에 상관없이 수용할 수 있는 디자인이 되어야 합니다."

숨은그림찾기숨은'샤인' 찾기! 소니부미스핏CEO는 “웨어러블기기는아주예쁘거나눈에띄지말아야한다”고강조한다. 신발끈에고정시킨샤
숨은 그림 찾기? 숨은 '샤인' 찾기! 소니 부 미스핏 CEO는 “웨어러블 기기는 아주 예쁘거나 눈에 띄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발끈에 고정시킨 샤인은 사용자의 운동량을 체크, 칼로리 소모량을 계산해준다. / 미스핏 제공
"큰 쓸모 없어도 예쁘면 산다"

애플워치, 삼성전자 기어S 등 시계형 제품에 비하면 샤인의 기능은 초라할 만큼 단순하다. 자체 액정 표시 장치(LCD) 화면도 없고, 응용프로그램(앱)을 내려받아 새로운 기능을 더할 수도 없다. 물론 전화 통화, 문자 대화도 안 된다. 테크하이브 같은 IT 전문 블로그는 이 제품을 놓고 "아름답다(gorgeous), 그러나 바보(dumb) 같다"고 평가절하할 정도다. 그러나 이처럼 기능이 간단한데도 판매량은 공룡 업체들의 시계형 웨어러블 제품을 넘어선다.

―기기 성능보다는 디자인에 더 주력한다는 얘기로 들립니다.

"현재의 웨어러블 컴퓨터는 IT 기기보다는 패션 소품에 가깝습니다. 매일 몸에 차고 다니며 사용하기 위해서는 밖에서 보이는 모습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웨어러블 컴퓨터가 턴어라운드 테스트를 통과해 사용자에게 핵심 기능을 제공할 때까지는 말입니다. 그래서 미스핏은 보석 브랜드 스와로브스키와 협력 관계를 맺었습니다."

스와로브스키 샤인은 "웨어러블 컴퓨터는 아주 예쁘거나 눈에 띄지 말아야 한다"던 소니 부 CEO 지론의 결정체다. 큼지막한 보석 아래 사용자의 활동량을 측정하는 샤인이 숨겨져 있고, 이 보석은 큐빅 수백 개가 박힌 가죽끈에 붙어 있다. 요란한 가죽끈이 부담스럽다면 보석만 떼내어 옷깃, 가방 등 어디에나 붙일 수 있다.

수익을 거두는 방식도 독특하다. 미스핏은 제품 가격을 비교적 싸게(기본 손목시계형 샤인 기준 99.99달러) 내놓는 대신 관련 액세서리를 팔아 돈을 번다. 그가 디자인 외에 유일하게 강조했던 키워드가 있다면 '영업'이다.

―미스핏에는 예전 애플 CEO로 '마케팅의 귀재'라는 존 스컬리씨가 공동 창업자로 있습니다.

"회사를 창업하자면 많은 사람을 설득해야 합니다. 팀 동료가 우리와 함께 일할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하고, 투자자가 우리에게 돈을 대도록 설득해야 하고, 고객이 물건을 사도록 설득해야 합니다. 심지어 물건이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말이죠. 스컬리는 이런 과정에서 저의 멘토 역할을 해줬습니다."

―웨어러블 컴퓨터는 기술적으로 어떤 부분을 해결해야 할까요?

"더 오랫동안 쓰려면 배터리 용량을 늘려야 하는데 이는 단숨에 해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같은 배터리 용량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여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애플워치는 훌륭한 제품이지만, 배터리를 자주 충전해 줘야 한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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