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 혁신 앞으로 10년간 게임업계 지각변동"

입력 2016.11.12 03:05

세계 최대 게임 엔진 개발사 에픽게임스 '팀 스위니' 창업자
천재만 할 수 있었던 게임 개발… 초등생도 만들 수 있게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캐리에 있는 에픽게임스(Epic Games) 본사. 'ㄷ'자 형태의 4층짜리 건물에 들어서자 복도 양쪽에 5평(약 16.5㎡) 남짓한 크기의 소형 개발실이 줄지어 나타났다. 개발실 한 곳의 문을 열자 40인치 크기의 모니터 앞에서 직원 한 명이 머리에 가상현실(VR) 헤드셋을 쓴 채,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쉴 새 없이 허공을 휘젓고 있었다. 닉 도널드슨 게임디자이너는 "우스꽝스럽게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VR 게임을 개발하고 있는 모습"이라며 "에픽게임스가 만든 게임 엔진(게임 개발용 프로그램)을 작동해보며 실제 게임을 개발할 때 불편한 점은 무엇인지 체크하고 있다"고 말했다.

(작은 사진) 팀 스위니 에픽게임스 최고경영자. / 에픽게임스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컴퓨터게임 개발은 난해한 프로그래밍 언어를 능숙하게 다루는 일부 엔지니어의 영역이었다. 게임 캐릭터를 옮기는 단순한 동작도 최소 1시간 이상 프로그래밍 언어를 일일이 입력해야 가능했다. 단 한 글자라도 잘못 입력하면 컴퓨터 화면이 뒤틀리거나 먹통으로 변했다.

복잡한 작업을 반복해야 하는 탓에 게임 제작 과정은 가내수공업에 비유됐다. 수십 명의 디자이너와 전문 프로그래머가 밤낮으로 컴퓨터에 매달려도 게임 하나를 개발하는 데 평균 3~4년이 걸렸다. 너무 많은 비용과 시간이 요구되는 탓에 컴퓨터게임의 발전 속도는 느렸다.

이런 게임 개발 환경에 혁명적인 변화를 불러온 것이 에픽게임스가 1998년 개발한 게임 엔진 '언리얼(Unreal) 엔진'이다. 게임 엔진은 게임 제작에 필요한 각종 소프트웨어를 모아 놓은 프로그램을 말한다. 언리얼 엔진이 수십만 행(行)에 달하는 코딩(컴퓨터 프로그램 작성) 작업을 대신하면서 게임을 만드는 데 필요한 노력과 시간은 수십 분의 일로 줄었다. 일류 프로그래머가 아니라도 화려한 컴퓨터그래픽 화면을 쉽게 만들 수 있게 됐다. 언리얼 엔진은 현재 세계 최대 게임회사 텐센트를 비롯, 일렉트로닉아츠(EA), 유비소프트, 스퀘어에닉스, 넥슨, 엔씨소프트 등 국내외 유명 게임회사가 개발 엔진으로 사용하고 있다.

에픽게임스를 창업하고 언리얼 엔진을 직접 개발한 팀 스위니(Sweeney·46) 최고경영자(CEO)는 "과거 개발 프로그램을 익숙하게 다루려면 1년 넘게 걸렸지만, 언리얼 엔진을 사용하면 초등학생도 쉽게 게임을 만들 수 있다"면서 "현실에 가까운 그래픽을 게임 화면에 구현하게 된 것도 게임 엔진 덕분"이라고 말했다.

스위니 CEO는 수줍음을 많이 타, 공식석상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게임 개발자들 사이에서 그는 '게임 업계의 스티브 잡스'로 불린다. 그가 만든 게임 엔진이 PC게임과 콘솔, 모바일 게임에 이어 최근 VR 게임에 이르기까지 개발의 기본도구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중순 에픽게임스 본사에서 스위니 CEO를 만났다. 후드 티와 청바지 차림에 대형 콜라 컵을 들고 나타난 그는 "조금 전까지 코딩 작업을 했다"며 다소 피곤한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게임 개발과 관련된 질문이 시작되자 금세 얼굴이 환해졌다.

'게임 엔진' 개발해 새로운 시장 열어

―게임 제작에 사용하는 기본 프로그램인 게임 엔진을 만든 계기는.

에픽게임스의 게임엔진을 이용해 개발된 주요 게임들. 1 엔씨소프트 ‘리니지2’, 2 넥슨 ‘써든어택2’, 3 워너브라더스 ‘배트맨: 아캄 어사일럼’, 4 에픽게임스 ‘기어즈 오브 워’, 5 일렉트로닉아츠 ‘메달 오브 아너’, 6 바이오웨어 ‘매스 이펙트’. / 각 회사 제공
"처음부터 게임 엔진 개발을 목표로 했던 것은 아니다. 1991년 창업 당시엔 세계 최고의 게임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몇 개의 게임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1995년 3차원 슈팅게임 '언리얼'을 만들 때에는 게임 제작을 도와줄 게임 엔진도 만들기로 했다. 나중에 비슷한 형식의 게임을 만들 때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였다. 3년간 언리얼 슈팅게임을 개발해 1998년 발표하면서 별 생각 없이 게임 엔진(언리얼 엔진)도 함께 공개했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전 세계 게임 제작회사들로부터 우리가 만든 게임 엔진을 쓰고 싶다는 문의 전화가 쏟아졌다. 그것을 보면서 게임 엔진에 대한 수요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언리얼 엔진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지금도 나는 과거의 엔지니어처럼 지루한 코딩을 반복하고 있었을 것이다."

―게임 엔진의 주 고객은 누구인가.

"게임 제작사다. 복잡하고 난이도가 높은 게임을 만드는 회사가 우리 제품을 많이 쓴다. 올해 초에는 언리얼 엔진을 누구나 내려받아 쓸 수 있도록 개방했다. 게임 엔진을 개발한 당초 목표가 누구나 쉽게 게임을 만들 수 있도록 한 것임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10살짜리 초등학생도 언리얼을 사용하면 쉽게 게임을 만들 수 있다. 다만 게임 제작회사가 언리얼을 사용해 게임을 만들어 돈을 벌면 일정 수익을 로열티로 받는다. 현재 '언리얼 엔진 버전4'의 누적 이용자 수는 210만명에 이른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는데, 컴퓨터게임 개발에 뛰어든 이유는.

"기계공학 엔지니어는 특정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에 실망했다. 예를 들어 자동차 엔지니어는 자동차 전체를 만드는 게 아니라 자동차의 일부를 만드는 데 투입된다. 그러나 게임은 달랐다. 복잡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직접 만들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다. 게임을 좋아했지만 게임을 작동하는 기술과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더 큰 관심이 있었다. 열한 살 때 프로그래밍을 시작해 10년 동안 메신저 프로그램, 스프레드시트 등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만들면서 실력을 쌓았다. 상업용 게임을 처음 만든 것은 스물한 살 때였다. 내가 만든 게임이 시장에서 모두 성공하지는 않았지만 완성작을 볼 때마다 큰 보람을 느꼈다. 지금은 우리 회사의 게임 엔진으로 만들어진 게임을 볼 때 뿌듯한 생각이 든다."

"VR 기술 발달로 게임 시장 지각변동 올 것"

현재 스위니 CEO의 최대 관심사는 VR 기술이다. 올해 초 VR 게임을 제작하는 데 사용하는 게임 엔진을 출시한 데 이어, 지난 3월 샌프란시스코 게임개발자대회(GDC)에선 사람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게임 화면에 구현하는 기술을 공개해 큰 관심을 모았다. 에픽게임스가 개발한 VR 프로그램은 지금까지 나온 소프트웨어 중에 가상공간을 현실에 가장 가깝게 구현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게임 업계뿐 아니라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할리우드 영화 제작소에서도 활용하고 있다.

―VR 게임 시장 전망은.

"사실 10년 전에도 VR 헤드셋이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지난 10년 동안 VR을 잊었다. VR 기기 성능과 컴퓨터 성능이 낮아 제대로 된 VR 제품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VR 관련 기술이 일정 수준에 이르면서 본격적인 시장이 열리고 있다. 앞으로 10년간 게임 업계에 거대한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으로 본다. 3년에서 5년 동안 마니아층과 얼리어답터(early adopter·새로운 기술에 관심이 많고 신제품을 남들보다 빨리 경험하는 소비자)를 중심으로 발전하고 이어 일반인들도 사용하게 될 것으로 본다. 다만 게임 제작사 입장에선 VR 게임 개발에 막대한 비용이 드는 반면 현재의 시장 규모는 한계가 있어 투자비 회수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현재 VR 시장의 한계는 무엇인가.

"하드웨어 기술이 더 발전해야 한다. 현재는 스마트폰용 부품 기술을 VR 기기에 적용하다 보니 부족한 부분이 많다. 고도의 기술을 적용한 VR 기기가 나와야 한다. 예를 들어 VR 헤드셋의 데이터를 컴퓨터에 전송하는 기술이 지금보다 훨씬 빨라져야 한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제품 개발에서 출시까지 최소 3년은 걸리기 때문이다."

―5~10년 사이에 VR 시장은 어떻게 바뀔 것으로 보나.

"현재의 VR 기기는 매우 커, 착용하기가 무겁고 불편하다. 그러나 10년 안에 VR 기기는 안경 크기로 작아지고, 지금보다 많은 사람이 VR 기기를 접하게 될 것으로 본다. 서로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들과 회의를 하는 등 VR을 체험하면서 시장이 급격히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VR 게임은 사용자의 표정과 몸의 움직임을 잡아내는 기술이 상용화될 때 새로운 전환점을 맞을 것으로 본다. 현재의 게임은 당신이 현실에서 어떤 표정을 짓든, 어떤 몸짓을 하든 이를 반영하지 못한다. 당신의 표정과 몸짓을 게임에 반영할 수 있다면 더 흥미로운 게임이 개발될 것으로 생각한다."

블리자드, EA 등 미국 주요 게임회사의 본사는 서부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 근처에 있다. 게임 개발에 필요한 우수 프로그래머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장점 때문이다. 그러나 에픽게임스는 동부 노스캐롤라이나주 캐리에 자리 잡고 있다.

―실리콘밸리가 아닌 노스캐롤라이나에 본사를 설립한 이유는.

"대학(메릴랜드대)을 졸업한 후 학교 근처에서 회사를 시작했으나 물가가 너무 비싸 이곳 노스캐롤라이나 캐리로 옮겼다. 실리콘밸리 근처에 우수한 개발자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곳 캐리는 실리콘밸리보다 생활비가 훨씬 낮다. 실리콘밸리에서 작은 스튜디오를 하나 얻을 돈이면 이곳에선 넓은 집 한 채를 구할 수 있다. 게다가 교통체증도 없고 공기도 좋다. 그래서인지 최근엔 실리콘밸리에서 우리 회사로 이직하고 싶다는 개발자가 늘어나고 있다."

―미래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조언한다면.

"프로그래밍에 왕도는 없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 실제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 특별한 보상이 없더라도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하기를 권한다. 내 경험으론 프로그래밍보다 더 사랑스러운 일은 없었다. 잠자는 것보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프로그래밍에 더 많은 시간을 썼다. 내가 (스물한 살 때) 첫 상업용 게임을 만들기 전까지 프로그래밍에 최소 1만5000시간을 투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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