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오션' 11년, 블루오션은 없다? 다시 경쟁 없는 시장 찾아라… 레드오션으로 변하기 전에

입력 2016.11.12 03:05

[Cover Story] 블루오션 전략, 그 후… 이론 창시자 김위찬·르네 마보안
스마트폰 기능 더하는 대신… 스마트폰 한번도 써보지 않은 고객 잡아라

"경쟁하지 마라. 극심한 경쟁으로 물든 레드오션에서 빠져나와라. 수요와 기회는 있고, 경쟁은 없는 시장인 '블루오션'을 찾아라."

2005년 초 '블루오션 전략(원제 Blue Ocean Strategy)'이 발간되자 전 세계 기업 경영인들은 충격에 빠졌다. 그때까지 대다수 경영인은 라이벌과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에선 상대방을 올라타는 것만을 유일한 성공 전략으로 추구해왔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경쟁을 피하라"는 블루오션 전략은 신선했다. 이후 전 세계 기업은 물론 각국 정부도 블루오션 전략을 도입하고 새로운 시장을 찾는 데 몰두했다. '블루오션 전략' 책은 전 세계적으로 350만권이 팔리면서 2000년대 최고 경영 혁신 지침서로 자리매김했다.

김위찬 인시아드 교수
김위찬 인시아드 교수
하지만 반론도 많았다. 블루오션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레드오션으로 변하기 때문에 기업으로선 비용만 많이 드는 위험한 도전이란 비판이 컸다. 일본 강소 기업들을 연구한 스에마쓰 지히로 교토대 교수는 "저성장 시대엔 블루오션을 창출해도 순식간에 경쟁자가 몰린다"면서 "블루오션을 찾는 것은 위험한 선택"이라고 지적했다. '붉은 여왕 가설'을 경영 이론으로 발전시킨 윌리엄 바넷 미 스탠퍼드대 교수는 "경쟁은 기업을 더 강하게 만든다"며 "경쟁을 하지 않는 블루오션 시장은 환상"이라고 밝혔다. 리우 징 중국 베이징 창장대학원 부총장은 "경쟁이 심화하면서 이제는 어딜 가든 레드오션뿐"이라고 말했다.

'블루오션 전략'이 나온 지 11년이 지난 지금, 블루오션 전략은 여전히 유효할까. 블루오션을 개척하며 선구자 역할을 했던 기업들이 레드오션에 빠지지 않고 계속해서 수익을 창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블루오션 전략의 창시자 김위찬(64) 인시아드(INSEAD) 교수는 그 해답을 "블루오션 재창출"에서 찾는다. 때가 되면 블루오션을 다시 찾아 나서야 혁신 기업이 성공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일회성 혁신은 한계가 있다. 블루오션 기업이 제공하는 가치가 후발 경쟁 업체와 비슷해진다면, 또 다른 혁신을 추진해 새로운 블루오션을 재창출할 때가 온 것이다."

지난 8월 중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한 호텔에서 김 교수와 그의 학문적 파트너인 르네 마보안(Mauborgne·53) 인시아드 교수를 만났다. 김 교수와 마보안 교수는 말레이시아 정부가 개최한 '블루오션 인터내셔널 콘퍼런스' 참석차 왔다고 했다.

―'블루오션 전략'이 출판된 지 11년이 지났다. 당시 성공 사례로 소개했던 기업들은 지금도 블루오션을 지키고 있나.

김위찬 교수(이하 김) "2005년 당시 블루오션 성공 사례로 소개한 스와치, 스타벅스, 이케아, JC데코 등은 지금도 여전히 업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기업에 속한다. 블루오션 전략의 강점은 상당히 오랫동안 경쟁자들의 모방이나 추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이 착각하고 있는 점은 블루오션 시장을 한번 개척하면 그 효과가 영원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절대 그렇지 않다. 블루오션 연구 초기부터 '푸른 바다'가 평화로운 시기는 10년에서 15년에 불과하다고 분명히 밝혔다.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블루오션 시장은 경쟁자가 몰려 레드오션으로 변하고 만다."

―블루오션의 기업이 레드오션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블루오션 재창출'이다. 블루오션을 단순히 새로운 상품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블루오션 전략은 일회성 성과를 내기 위한 정적 과정이 아니다. 조직이 혁신하기 위해 여러 번 반복하는 역동적 과정이자, 리더부터 조직의 말단 직원들까지 사고방식의 전환을 요구하는 정교한 경영 전략이다. 혁신을 통해 블루오션을 개척한 기업은 모방하는 경쟁사를 최대한 따돌리고 오랫동안 블루오션을 지배하는 것을 목표로 삼다가, 때가 되면 새로운 블루오션을 창출해야 한다."

영국 화장품 브랜드 더바디샵은 1990년~2000년대 ‘자연주의 화장품’이란 블루오션 시장을 새로 개척했다. 이 회사는 주류 화장품 업체들과 달리, 동물 실험에 반대하고 제품을 친환경적으로 생산한다는 점을 앞세워 회사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주의 콘셉트를 모방하는 업체가 늘었고, 더바디샵이 창출한 블루오션은 레드오션으로 변해갔다. 더바디샵은 경쟁업체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 제품 가격을 낮추는 등 전형적인 레드오션형(型) 방어태세를 취했다. 그러나 더바디샵은 경쟁업체에 시장을 내주고 실적 부진을 겪고 있다. 지난해 더바디샵의 영업이익률은 5.7%로 떨어져, 최근 7년간 최저치를 기록했다. 더바디샵이 속한 로레알그룹(2006년 더바디샵 인수)의 40여 개 브랜드 중 실적이 가장 부진한 편에 속한다. 김 교수는 “더바디샵은 자신이 창조한 블루오션 시장을 10년 넘게 지배했지만, 레드오션에 빠지고 나서 또 다른 혁신을 추진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블루오션 전략’을 공동 집필한 김위찬(왼쪽)·르네 마보안 인시아드 교수는 “수요가 공급을 초월하는 초경쟁 사회에선 그 어느 때보다 새로운 가치 혁신을 추구하는 블루오션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블루오션 전략’을 공동 집필한 김위찬(왼쪽)·르네 마보안 인시아드 교수는 “수요가 공급을 초월하는 초경쟁 사회에선 그 어느 때보다 새로운 가치 혁신을 추구하는 블루오션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위찬 교수
―한때 블루오션을 창출한 기업이 새로운 블루오션을 찾아 나설 시기는 언제인가.

“블루오션 기업이 제공하는 가치가 이를 모방한 후발 업체들의 가치와 겹치거나 비슷해지면 새로운 블루오션을 모색해야 할 때라는 신호다. 더바디샵의 경우 차별화된 가치를 더 낮은 비용에 제공하지 못하게 됐을 때, 혁신을 다시 추구했어야 한다. 블루오션 창출이 일회성 성과에 그치지 않고 혁신을 위한 반복적인 과정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혁신을 통해 블루오션 시장을 창출했는데 나중에 레드오션으로 변한다면 이를 진정한 혁신으로 볼 수 있을까.

“수년간 많은 기업 자문에 응하면서 블루오션 전략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는 기업인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블루오션 전략은 어떤 기업이 조직적으로 혁신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고, 사고방식과 관련이 있다. 레드오션 시장에서 경쟁적으로 생각한다면, 블루오션 시장에선 비(非)경쟁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상당수 기업은 관점이나 사고방식은 바꾸지 않으면서 무조건 어떤 처방만 따라 하면 혁신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생각과 사고방식은 레드오션에 남아 있는데, 형식적으로 블루오션 전략을 따라 하려고 한다. 이러면 ‘레드오션의 덫’에 빠진다.”

레드오션의 덫에 빠진다는 것은 레드오션 시장에서의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한다는 뜻이다. 김 교수는 블루오션 창출을 방해하는 레드오션의 덫으로 첫째 비(非)고객이 아니라 기존 고객을 관찰하는 습관, 둘째 혁신하려면 반드시 신기술을 동반해야 한다는 생각, 셋째 틈새(niche)시장과 블루오션이 동일하다는 착각, 넷째 블루오션 시장을 창조하려면 시장의 첫 번째 주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등을 꼽았다.

―블루오션 전략에서 말하는 ‘비고객’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르네 마보안 교수(이하 마보안) “기존 경쟁이론에 따르면 비고객을 정의할 때, 경쟁사의 고객을 빼앗아오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러나 블루오션 전략에서 말하는 비고객은 경쟁사의 고객이 아니라, 아예 시장에 속해 있지 않은 고객을 말한다. 당신이 사업가라면 흔히 머릿속에 떠올리는 비고객이 누구인가 생각해보라.”

―비고객과 기존 고객의 차이를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면.

“블루오션 전략의 핵심은 기존 고객이 아닌 비고객을 조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기업이 기존 고객에 집착해 관점을 바꾸지 못한다. 2000년대 후반 소니는 전자책 단말기 이용자들에게 ‘전자책 단말기를 써보니 무엇이 불편한가’ 물었다. 이용자들은 ‘단말기가 작고 글자 간격이 좁아 스크린이 잘 안 보인다’고 답했다. 소니는 TV 기술을 총동원해 고성능 전자책 단말기를 내놨다. 반면 아마존은 전자책 단말기를 한 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왜 전자책 단말기를 쓰지 않는가’하고 물었다. 그들은 ‘내가 원하는 콘텐츠가 없다’고 답했다. 아마존은 단말기의 크기나 성능보다 콘텐츠를 충분히 갖추는 것이 잠재적 소비자에게 더 높은 가치를 제공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존은 소니보다 4배 많은 콘텐츠를 제공하고, 사용자가 전자책을 내려받기 쉽게 제작했다. 소니는 기존 고객에게 관심을 둔 것이고, 아마존은 비고객에게 초점을 맞춘 것이다. 결국 전자책 시장에선 아마존이 강자가 됐다.”

―혁신을 통해 블루오션을 창출하려면 신기술도 필요한 것 아닌가.

마보안 “더 좋은 기술을 적용하는 것과 소비자에게 새로운 가치를 주는 것은 다르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시장을 보면, 한국 제품은 기술을 혁신해 여러 기능을 향상한 다음 이를 제품에 추가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기술을 향상시켜 경쟁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기술 향상이 반드시 소비자에게 더 높은 가치를 주는 것은 아니다. 이에 반해 애플의 아이폰은 기술 그 자체보다는 소비자가 중요하게 여길 만한 가치를 찾아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애플의 이런 접근 방식은 스마트폰을 한 번도 써보지 않은 비고객을 고객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틈새시장과 블루오션은 어떻게 다른가.

“고객층을 세세하게 나눠 이 중 특정 고객을 공략하는 것이 틈새시장 전략이다. 틈새시장은 커다란 파이(전체 시장) 중 일부일 뿐이다. 블루오션은 반대의 전략이다. 기회가 있는 더 큰 시장을 찾는 것이다. 두 관점의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기업은 틈새시장을 찾아 그것을 블루오션이라고 착각하곤 한다.”

―레드오션 시장에 익숙한 사고방식을 블루오션에 맞게 바꾸려면 어떤 훈련을 해야 할까.

마보안 “자신이 편견이나 관습적인 해석에 빠지고 있지 않은지 계속해서 질문해야 한다. 예를 들어 비고객을 정의할 때 경쟁사의 소비자를 비고객으로 떠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더 나은 기술을 개발해서 제품에 적용하면 새로운 가치를 줄 수 있을지 아니면 기능만 하나 더할 뿐인지 반복해서 질문하는 것이 필요하다.”

―많은 한국 기업들이 블루오션을 창출하고 싶어하지만 실제로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빠른 추격자)’에 그치고 만다.

마보안 “한국 기업들만 겪는 문제는 아니다. 한국은 발 빠르게 모방하는 ‘패스트 팔로어’ 전략으로 산업화에 성공한 국가다. 기업들은 남들보다 빨리 잘 베끼는 것을 치하하는 조직문화를 만들어 왔다. 그러나 블루오션 전략은 ‘모방’이나 ‘경쟁’이 아니라 ‘창조’와 ‘가치 혁신’을 전제로 한다. 한국 기업들은 조직문화가 굳어 있고 주입식 교육방식으로 인해 구성원들의 생각이 곧잘 한계에 부딪힌다. 이런 환경 속의 기업인들에게 하루아침에 창조적인 사고방식을 갖추고 블루오션을 찾으라고 하는 것은 무리다. 경영인들의 관점과 생각하는 방식을 어떻게 창조적으로 바꿀 수 있을지에 관한 방법론을 우리도 계속 연구하고 있다.”

놓치면 안되는 기사

팝업 닫기

WEEKLY BIZ 추천기사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