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이 가르쳐 주지 않는 경제, 실험실 밖에 있다

입력 2016.06.04 03:07

[Cover Story] '실험경제학의 大家' 존 리스트 시카고대 교수

자선 단체를 위해 기부금을 모으는 세 조직이 있다.

한 조직에는 다른 혜택 없이 자선 단체에 기부하는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지 만 강조했다. 다른 조직에는 모금한 기부금의 1%를 조직원들에게 보상으로 지급하겠다고 말했다. 마지막 조직에는 모금한 기부금의 10%를 조직원에게 보상으로 지급하겠다고 말한다. 어떤 조직이 가장 많은 돈을 모았을까?

경제적인 측면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본인에게 가장 큰 혜택이 돌아오는 세 번째 조직이라고 예상할 것이다. 하지만 실험해본 결과 가장 많이 돈을 모은 것은 아무런 혜택이 없는 첫째 조직이었다. 보상이 없는 조직의 직원들은 타인을 위해 좋은 일을 한다는 보람으로 일을 했지만, 기부금의 일부를 보상으로 준다고 하면 자신의 일과 그 값에 대한 가치를 계산하게 돼 딱 그 값만큼만 일했던 것이다. 보상금이 좋은 일을 하게 만드는 인센티브로 작용하지 않고 고귀한 동기만 몰아낸 셈이다.

이번엔 기부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같은 고액 기부자들은 일부의 비판처럼 세금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 기부한 것일까. 아니면 정말 순수한 마음에서일까. 실험 결과 기부자 대부분은 경제적 혜택보다는 본인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자부심 때문에 기부를 했고, 세금 혜택은 이를 자극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결국 기부 정책은 '도덕적 허영심'을 자극해야 되는 셈이다.

모든 학문은 세상을 이롭게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다. 경제학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일상 생활 속에서 종종 학문과의 괴리를 느낀다. 왜 그럴까.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 전 세계를 돌며 실험을 통해 경제학을 연구하는 학자가 있다. '실험경제학의 대가' 존 리스트(List·46) 미 시카고대 경제학과 교수다. 노벨상 족집게로 불리는 조사기관 톰슨로이터가 지난해 강력한 노벨경제학상 후보 중 한 명으로 선정하면서 화제가 됐다. 최근 20년간 후보자 중 최연소다.

작년엔 수상에 실패했지만 2010년 미국 전미경제연구소(AAEA)가 선정한 존 케네스 갈브레이스상, 2012년 유럽경제학회가 선정한 위뢰 얀손상 등 수상 경력이 화려해 '언젠간 노벨경제학상을 받을 사람'으로 꼽힌다.

존 리스트
존 리스트 교수
스타들이 즐비한 시카고대 경제학과에서 학과장을 맡고 있는 리스트 교수의 이력은 특이하다. 위스콘신주 시골에서 트럭 운전사의 아들로 태어나 골프 장학생으로 위스콘신대 스티븐슨포인트캠퍼스에 입학해 주말마다 아르바이트로 마트에서 물건을 팔면서 경제학에 흥미를 느꼈다. 와이오밍대에서 박사를 받은 후 명문대가 아니란 이유만으로 150곳 이상에서 퇴짜를 맞으며 센트럴플로리다대 등에서 비상근 교수로 일했다. 2004년 시카고대에 정교수로 부임했다.

그를 미 시카고대 사무실에서 만났다. 흰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그는 듣던 대로 힘이 넘치고 유쾌했다. 리스트 교수는 자신을 '패커스팬(위스콘신을 연고로 하는 프로 미식축구팀)'이라며 소개를 시작했다.

―어떻게 실험경제학을 시작하셨습니까.

"스무 살 때 전 대학에서 경제학을 배우며 주말마다 아르바이트로 물건을 팔았습니다. 그때 전 '경제학 이론을 아르바이트에 적용한다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생각했어요. 그래서 졸업을 하고 경제학을 계속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다른 친구들처럼 실험실에서 가설을 세우고 그에 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실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실험실 안과 현실 세계는 일치할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다들 밖으로 나가지 않는 거지? 저는 현장실험을 통해 여태껏 배운 경제지식에서 벗어난다면 다루기 힘들고 변덕스러운 현실에 통하는 진정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실험실보다는 현장에 답이 있다고 생각했고, 훨씬 더 많은 데이터와 사례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실험실 밖에서 하게 될 경우 조사 대상을 제외한 다른 조건들이 통제가 안 되지 않나요.

"현실도 통제가 안 되는 세계입니다. 그러니 실험실 내에서 조건을 통제하는 건 의미가 없어요. 평소 다른 생각을 갖고 있던 사람들도 실험실로 들어오면 과학자들이 어떤 답을 원할까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여기에서 실험 결과에 심각한 오류가 발생합니다."

―연구 주제에 빈부격차, 인종차별, 남녀평등 등 사회적 문제가 많습니다.

"정부는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해 경제학의 도움을 받아 정책을 만듭니다.제 연구 전체를 꿰뚫는 핵심은 '왜(why)'입니다. 왜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돈을 더 적게 버나, 왜 미국에서는 흑인들이 차별받나, 왜 미국의 공교육은 실패했나. 전 이런 질문들에 흥미를 느끼고 현장에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런것이 일어나는지를 안다면 정부는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더 정확하게 제시해줄 테니까요."

과학계에서 여성 종신교수가 드문 것은 최상위 수준에서는 남녀 간 선천적 소질에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2005년 1월 로런스 서머스 당시 하버드대 총장이 한 회의에서 한 발언은 미국 여성계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미국 전역에서 그의 해고 요구 운동도 일어났다. 이듬해 결국 그는 총장직을 사임했다.

서머스 교수의 발언은 성차별적이고 부적절하다. 하지만 학문적으로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기반을 둔 것이다. 다윈은 수컷은 짝짓기 경쟁에서 승리해야 하기 때문에 여성보다 공격적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직장 내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연봉을 적게 받고 고위직에 오르지 못하는 이유로 거론된다. 존 리스트 교수의 연구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대부분의 직장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연봉을 적게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미국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연봉을 20% 정도 적게 받습니다. 그 이유를 실험해보니 사실 고정관념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예상대로 남성은 여성보다 경쟁을 좋아했고, 인센티브에 적극적으로 반응했습니다. 연봉 협상이나 고위직을 두고 싸우는 상황에서 적극적이었지요.”

―정말 선천적인 요소가 있었던 건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는 그 점을 연구하기 위해 부계사회인 아프리카의 마사이족과 모계사회인 인도의 카시족을 찾아 실험했습니다. 마사이족은 미국에서 진행했던 연구와 비슷한 결과가 나온 반면 카시족은 여성이 남성보다 경쟁을 좋아하고 공격적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어릴 적부터 받는 교육과 문화를 통해 길러진 것이지요.”

―이런 연구가 경제 현상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경제가 발전하고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여성 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경쟁을 싫어하도록 교육받은 그들을 경쟁을 통해 뽑는다면 제대로 뽑을 수 없습니다. 정부나 기업 경영진이 우수한 여성 인력을 뽑고 싶다면 협상을 통해 직급과 급여를 결정하기보다는 상세한 사항을 정해 놓고 뽑는 것이 더 유능한 인재들을 뽑을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컨설팅회사 딜로이트 등이 여성 고위직 비율을 정해 놓는 건 적절한 정책입니다. 물건을 팔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성들은 자동차를 살 때 딜러와 논쟁하는 걸 가장 힘들어합니다. 정액제를 선호하지요. 이런 정책을 쓴 GM의 자동차 새턴은 여성 구매자 비율이 63%에 달했습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지 않나요.

“그래서 전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릴 때부터 아이들은 학교에서 ‘넌 남자애가 왜 체육을 못하니’ ‘여자답게 행동해’ 등의 교육을 받습니다. 이런 교육은 성적 편견으로 이어집니다. 전 0~5세까지 아이들이 받는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이 미국 내 빈부격차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최근 가장 관심을 가지는 분야도 이 부분입니다.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6세부터 공교육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상류층과 빈곤층의 환경에서 가장 큰 차이가 나는 부분은 영유아기입니다. 이 차이가 커서 큰 격차를 만드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공교육을 시작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보입니다.

“전 정부에서 직접 영유아기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보다 아이들의 부모를 교육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것이지요.”

―기업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계십니다. 실험경제학이 기업 경영에 사용될 수 있습니까.

“제가 기업 자문을 맡고 나서 가장 놀란 것은 상당수 경영진이 결정을 내릴 때 ‘그동안 그렇게 해왔으니까’라고 안일하게 생각하거나, ‘저명한 컨설팅 회사가 이렇게 결정했으니까’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실험해 보면 금방 답을 얻을 수 있을 듯한데 말이지요. 이에 실패한 대표적인 경우가 동영상 서비스회사 넷플릭스가 가격제를 성급히 바꿔 주가가 51%나 폭락한 사건입니다. 넷플릭스가 변경 정책을 도입하기 전 일부 고객을 상대로 시범 운영만 해봤어도 이런 사태를 막을 수 있었을 겁니다.”

―실험에는 비용이 많이 들지 않습니까.

“잘못된 정책을 시행해서 실패하는 것보단 적게 들지요. 특히 요즘은 다양한 기술의 발달로 적은 비용으로도 실험을 할 수 있는 도구가 많습니다. 실험경제학을 가장 잘 활용하는 기업이 아마존과 구글, 우버 등입니다. 특히 우버는 실험을 통해 어떻게 하면 고객과 운전자들이 더 좋은 경험을 할지 고민합니다. 대부분 회사의 목적은 돈을 벌기 위한 것만은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모두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지, 더 위대한 기업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전 기업들의 그런 작업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골프 장학생 출신인데 프로 선수가 되지 않은 걸 후회하지는 않나요.

“전 지금도 프로 골퍼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하지만 제 실력은 프로 무대에서 충분한 돈을 벌 만큼은 아니었어요. 제게는 다섯 아이와 아내가 있기 때문에 돈을 많이 벌어야 하거든요. 전 스티븐 레빗(괴짜경제학을 연구하는 시카고대 교수)에게나 돈을 따는 정도지요.”

☞ 실험경제학

실제 생활에서 무작위로 실험을 진행해 자료를 수집, 연구하는 학문이다. 비합리적인 행동을 연구하는 행동경제학과 비슷하다. 행동경제학이 주로 현상 분석에 초점을 맞춘다면 실험경제학은 실험을 통해 얻은 자료를 분석해 결과를 얻는다는 점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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