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정책으론 경기 안살아난다

    • 안재욱(경희대 경제학과 교수)

입력 2016.06.04 03:07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는 돈이 많이 풀려 발생
저축이 성장 원동력… 정부, 민간 富창출 환경 만들어야

안재욱(경희대 경제학과 교수)
안재욱(경희대 경제학과 교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은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추고, 일부 국가는 마이너스 금리 정책까지 썼다. 그것도 모자라 양적 완화를 통해 돈을 대폭 풀었다. 이러한 노력에도 세계경제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풀린 돈이 돌지 않는 현재 상황에서는 통화정책의 효과가 없기 때문에 재정정책을 써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은 이미 재정지출을 엄청나게 늘렸다. 재정정책 역시 경기 부양에 효과가 없다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다.

현재 불황의 진원지는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다.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는 돈이 많이 풀리면서 발생했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연준)는 1990년대 말 닷컴버블이 꺼지면서 불황이 오자, 금리를 1%까지 낮추며 돈을 풀기 시작했다. 이는 과잉 유동성 문제를 낳았다. 의도하지 않게 많아진 자금은 미국 정부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정책을 타고 주택 시장으로 쏟아져 들어가 주택 가격을 폭등시켰다. 그러다 연준이 금리를 올리자 주택 대출이 줄면서 주택 가격이 폭락해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발생했다.

결국 글로벌 금융위기는 저금리를 인위적으로 장기간 유지한 데서 비롯됐다. 미국의 예와 같이 중앙은행이 스스로 만들어낸 버블을 인식하게 되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게 된다. 실질적인 자본 축적이 없는 상황에서 금리 인상은 호황의 붕괴와 불황을 불러온다.

이자율을 시장이 아닌 정부가 인위적으로 인하하게 되면 기업도 잘못된 신호를 받는다. 마치 사람들이 저축을 많이 해 이자율이 낮아진 것처럼 오해하는 것이다. 기업은 인위적으로 낮아진 이자율로 대출을 받아 주택 건설과 같은 장기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투자가 증가하므로 고용이 증가한다. 노동자 고용 경쟁으로 인해 임금도 인상되고, 사람들은 이런 호황에 도취된다. 그러나 이런 호황은 일시적일 뿐이다.

시간이 흘러 장기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기업은 노동과 원자재 등이 필요한 만큼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저축이 늘어야 실제 자본량이 느는 법인데 사람들의 저축이 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저축량은 기업의 예상보다 적은 것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장기 프로젝트에 필요한 생산요소가 기업이 원하는 양에 비해 매우 적기 때문에 노동과 자원의 가격이 오르게 되고, 사업에 필요한 비용이 상승한다. 이에 따라 기업이 실행에 옮기려던 장기투자 사업 중 일부는 완수될 수 없게 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화폐(유동성) 증가는 결코 부를 창출하지 못한다. 사회의 부는 재화와 서비스가 증가할 때 증가한다. 재화와 서비스의 증가는 자본재가 증가할 때 가능하다. 그리고 자본재를 증가시키기 위해 필요한 자금은 저축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므로 저축이야말로 경제성장의 원동력이다. 실물이 증가하지 않는데 교환의 매개체에 불과한 화폐를 늘리는 것은, 실제 존재하는 것과 아무것도 없는 것을 교환하게 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기존의 부를 소비만 하게 돼 부가 파괴됨을 의미한다.

화폐 증가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부는 창출되지 못하고 파괴된다. 지금의 상황은 화폐 증가로 인해 부의 창출 과정이 크게 훼손됐고, 신용도가 좋은 차입자를 찾기 어려워 은행들이 대출을 꺼리는 경우다. 이것이 바로 많은 돈을 퍼부었음에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이른바 '유동성 함정'이 나타난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부가 지출을 늘린다고 해서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다. 정부 역시 부를 창출하는 조직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는 민간 부문에서 창출한 부의 일부를 세금으로 걷어 가져다 소비하는 조직이다. 따라서 유동성 함정에 대항하기 위해 정부 지출을 늘리는 것은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각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확대 통화 및 재정 정책을 통해 돈을 푸는 것이 아니라 민간이 실질적인 부를 창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이다. 돈만 풀면 잘못된 투자가 교정되지 않는다. 좀비 기업만 유지시킬 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가 생산적인 곳에서 사용되도록 하는 것이다. 자본이 시장 과정에 의해 정확하게 조정돼야 실질적인 부가 창출되고, 경제가 제대로 성장하게 된다. 그렇게 해야만 지금의 대침체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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