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화력과 경청의 리더십으로… 스무살 바텐더 테리 '거래소 제왕' 되다

입력 2016.04.30 03:06

[Cover Story] 세계 최대 거래소 CME그룹 테런스 더피 회장

1978년 미국 위스콘신주(州) 제네바 호숫가의 고급 바 '척스'.

위스콘신주립대 화이트워터캠퍼스에 다니던 스무 살 테리는 낮에는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밤이면 이곳에서 바텐더로 일했다. 가난한 시카고 남서부 지역에서 태어나 블루칼라 집안에서 자란 그였다. 스스로 학비와 생활비를 버는 건 당연했다. 손님들의 이름과 좋아하는 음료를 척척 외우고, 특유의 친화력과 유머 감각을 가진 그는 이곳에서 꽤 잘나가는 바텐더였다.
세계 최대 거래소 CME그룹 테런스 더피 회장
테런스 더피 CME그룹 회장.
척스 바는 제네바 호숫가에 여름 별장을 가진 시카고 젊은 부자들의 아지트였다. 많아 봐야 서른 살인 그들은 비싼 옷을 차려입고 나타나 자신들의 부(富)와 인맥을 과시하기 바빴다. 테리는 자신과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 그들이 무슨 일을 하길래 저렇게 많은 돈을 버는지 궁금했다.

이들은 시카고의 양대(兩大) 선물거래소인 시카고상업거래소(CME)와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의 트레이더들이었다. 바텐더를 하며 트레이더의 삶을 동경하게 된 그는 단골손님이었던 퇴직 트레이더 빈센트 슈라이버(Schreiber)와 친해지게 되고, 그의 도움으로 거래소 판에 진출하게 됐다.

대학까지 중퇴하고 고향인 시카고로 돌아가 구한 첫 일자리는 주당 58달러 받던 '러너(runner)'. 전자 거래가 도입되기 전 트레이더들의 주문지를 상대방에게 전달하기 위해 뛰어다니던 사람이다. 그리고 1년 후 테리는 드디어 트레이더의 빨간 재킷을 입게 된다.

이 청년이 바로 세계 최대 거래소 CME그룹을 이끄는 테런스 더피(Duffy·58) 회장이다. 2002년 44세 나이로 회장직에 올라 14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는 경쟁사인 CBOT와 뉴욕상업거래소(NYMEX)를 인수해 CME그룹을 지금의 모습으로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미국 금융업계를 대표하는 거물 중 한 명으로 워싱턴 정가에도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미 경제 전문 방송 CNBC는 그를 최근 25년간 세계경제를 대표한 비즈니스 리더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그는 요즘 말로 흙수저 출신이다. 흔히 말하는 명문대 아이비리그 출신도 아니고, 그마저도 졸업하지 못했다. 그런 그가 어떻게 미국 정·재계를 움직이는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

지난 12일 미 시카고의 금융가(街) '루프' 중심에 있는 CME그룹 본사 4층 회장실에서 만난 그는 잔뜩 긴장한 마음을 1분 만에 풀어버릴 정도로 친화력이 대단했다. '적(敵)이 없는 사람'이라는 별명이 실감 날 정도였다. 살갑게 "테리"라고 부르라고 했다. 바닥서부터 정상에 오르기까지 그의 성공에는 7가지 계단이 있었다.

①절제를 알려준 멘토

―바텐더를 하다가 트레이더 일을 제안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제안받은 게 아닙니다. 제가 하고 싶다고 슈라이버에게 부탁했습니다. 저는 (범죄율이 높은) 시카고 남서부 출신입니다. 제 꿈은 소방관이나 경찰관이었습니다. 그 외에 다른 직업이 있는 것도 몰랐거든요. 슈라이버와 친해진 후 술이나 한 잔 더 하러 그의 집에 놀러 갔는데, 정문에서부터 저는 깜짝 놀랐어요. 미국의 유명한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드가 설계한 거대한 맨션이었거든요. 제가 '이 집주인은 누구예요?'라고 물으니 '내 거야'라고 말하더군요. 그는 저보다 겨우 열 살 많을 뿐이었어요. 하지만 이미 트레이더 생활로 큰돈을 번 후 은퇴한 상태였지요. 집 벽면은 트레이더 시절 로널드 레이건 당시 캘리포니아주지사 등을 비롯해 유명인들과 같이 찍은 사진들로 가득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제발 나를 트레이더들의 세계로 이끌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꿈꾸던 트레이더의 삶은 재미있었나요.

"그럴 리가요. 현실은 꿈꾸던 것과 다른 법이지요. 힘든 순간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습니다. 저는 트레이더가 된 후 선물거래를 하기 위해 어머니를 설득해 집을 담보로 5만달러를 대출받았습니다. 이거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어요. 하지만 저는 피트(트레이더들이 거래하는 단상)에 선 지 몇 주 만에 5만달러를 잃었고, 이 빚은 순식간에 15만달러로 늘어났어요. 집이 날아가 버릴 위기였지요. 이 사실을 부모님께 전하러 가는 길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정말 말 그대로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어요. 얼마나 힘들었는지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는데 눈물도 안 나더라고요.

방법이 없던 저는 슈라이버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저에게 1달러도 주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의 명성으로 돈을 빌릴 수 있게 보증을 서줬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아르바이트를 몇 개씩 해서라도 돈을 갚으라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3년간 낮에는 트레이더 일을 하고, 밤에는 바텐더 등 아르바이트를 3개씩 하며 돈을 갚았습니다. 이 일로 저는 트레이더의 삶에서 가장 잊기 쉬운 '절제'를 배웠습니다. 이때 배운 그 교훈은 아직도 제 몸속에 박혀 있습니다. 슈라이버는 절 이쪽 세계로 이끈 은인일 뿐만 아니라 평생의 멘토가 돼 줬습니다."

②친화력의 비결… 남의 말을 잘 들어라

세계 최대 거래소 CME그룹 테런스 더피 회장
시간이 흐르면서 테리는 CME그룹을 대표하는 곡물 트레이더로 성장했다. 1995년 CME그룹 이사회 임원으로 선출됐고, 1998년 부회장으로 임명됐다. 그리고 2002년 회장직에 올랐다. 그가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이유로 많은 사람은 타고난 친화력을 든다. 전임자인 레오 멜라메드(Melamed) CME그룹 명예회장은 회고록에서 '테리는 트레이딩 현장의 일을 소상히 알고 있었고, 모든 사람의 호감을 샀다'며 '차기 회장감으로 완벽한 인물이었다'고 말했다.

―타고난 친화력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제가 가장 중시하는 건 열린 마음을 갖고 주변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저 개인이나 회사에 대해 하는 말을 듣는 걸 좋아합니다. 좋은 이야기든 나쁜 이야기든 그들의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많은 걸 배우는 방법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객과 직원, 다른 분야에 있는 사람들까지 되도록 많이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듣습니다. 특히 전 제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자리에 있습니다. 그만큼 그들이 제게 무엇이 옳고, 제가 무엇을 했으면 좋겠고, 무엇을 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말하는 것을 듣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③지름길을 찾지 않는 인내

―회장님뿐만 아니라 푸핀더 길 CEO까지 CME그룹에는 입지전적인 인물이 많은 것 같습니다.

(2012년 임명된 길 CEO는 말레이시아 이민자 출신으로 거래소의 말단 직원부터 시작했다.)

"CME그룹뿐만이 아닙니다. 미국이라는 국가는 튼튼한 기반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진 것이 없어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튼튼한 기반은 든든한 가족을 말합니다. 든든한 가족은 돈이 많은 가족이 아니라 사랑과 존경을 가지고 있는 가족을 말합니다. 저는 제 아이들에게도 매일 이것을 가르치려고 노력합니다. CME그룹은 엔트리 레벨(말단 직원)부터 CEO가 될 기회를 주진 않습니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먼저 많이 배우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히 해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젊은이들은 '지름길(short cut)'부터 찾으려고 하고, 그것만 따라가려고 합니다. 기회를 이해하고 잡는 건 전적으로 본인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 기회가 주어질 때까지 그들이 할 일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1898년 시카고 강변에서 버터와 계란을 팔던 상인들이 만든 ‘시카고 버터 앤드 에그 보드’. 이 작은 비영리 단체가 지금 전 세계 선물거래 시장을 장악한 CME그룹의 전신이다.

CME는 2000년 11월 회원제를 폐지했고, 2002년 12월 주식시장에 상장했다. 그리고 2007~2008년 경쟁사인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와 뉴욕상업거래소(NYMEX), 캔자스시티상품거래소(KCBT)를 차례로 인수했다. 현재 미국 내 상품 선물과 선물 옵션 대부분은 CME의 배너를 달고 거래된다.

CME의 변화를 이끈 인물이 테런스 더피 회장이다. 한때는 미국 내 독점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전 세계 거래소의 합종연횡(合從連橫)이 활발한 상황에서, CME뿐 아니라 미국 거래소 시장을 한발 앞서 글로벌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60%. 2012년 이후 최고다. S&P500 종목 가운데 신용카드사 비자(VISA), 한 알에 1000달러 하는 간염 치료제를 판매하는 길리어드 사이언스와 함께 최고의 수익성을 자랑하는 3대 기업이다.

④M&A

―CME그룹은 M&A를 통해 규모를 키운 대표적 회사입니다.

“CME는 (금융 위기가 발생한) 2007~2008년 M&A를 가장 활발하게 했습니다. CBOT를 인수했고, 연이어 NYMEX도 사들였습니다. 이 과정은 CME그룹이 미국 기업이 아닌 세계적 기업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줬습니다. 세계시장은 점점 스마트해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영국 런던증권거래소(LSE)와 독일 도이체뵈르제(DB)가 합병을 발표했습니다. 유럽에 거대한 거래소가 탄생하는 거죠. 기업으로서는 이런 상황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합니다. 고객 입장에서도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M&A는 필요합니다. 그들에게는 다양한 상품과 편리한 시장 접근성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고객의 니즈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회사는 항상 성장하고 확장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 종종 M&A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M&A를 할 때 기준은 무엇입니까.

“고객과 비전을 공유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히 주주들의 관심까지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저는 M&A를 고려할 때 이 건에 대해 고객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는지, 주주들에게 어떠한 가치를 설명할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기본적으로 M&A는 큰 비용이 걸린 결정이기 때문에 멀리 보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거래소 규모를 키우는 것이 (독점 등으로) 시장의 독립성을 해칠 우려가 있지 않을까요.

“거래소 사업은 매우 역동적입니다. 글로벌하고,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합니다. 돈을 벌고 싶어 하는 투자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전문 투자자들이 현금 거래든 선물 투자든 가격을 책정하고 상품을 거래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시장이 공정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최대 거래소 CME그룹 테런스 더피 회장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⑤핵심 업무만 집중… 유지비 많이 드는 건물은 매각

―M&A를 통해 회사를 합병한 후 CBOT 본사 건물 등은 매각하셨습니다.

“저희는 부동산 업체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큰 빌딩을 소유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특히 CBOT 본사는 100년이 넘은 유서 깊은 건물입니다. 멋지긴 하지만 유지비가 많이 듭니다. 이는 CME 본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건물을 매각하고 임대하는 것이 회사 수익성 차원에서 훨씬 이득이고 자금 유동성을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특히 요즘엔 전자 거래 등으로 자택 근무가 많아지면서 회사가 굳이 큰 빌딩을 소유하는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다들 컴퓨터로 집에서 일하는 시대잖아요.”

⑥해외 진출

―최근 CME그룹은 한국·중국·인도 등 아시아 시장 공략을 본격화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아시아는 CME그룹의 장기적인 성장 측면에서 중요한 지역입니다. 올 1분기에도 아시아 시장의 거래 규모가 13%나 증가했습니다. 현재 저희는 아시아 시장을 전략적으로 키우기 위해 베이징(北京)과 홍콩, 서울, 싱가포르, 도쿄(東京) 등에 사무실을 열고 직원 90명을 두고 있습니다. 인도에서도 지난해 벵갈루루에 테크 센터를 열었는데, 앞으로 지점을 더 많이 만들 계획입니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상품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 중국 정부뿐만 아니라 시장 참여자들과도 긴밀하게 공조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지난해 10월에는 중국 건설은행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역외 위안화 선물 거래를 런던에서 결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성과가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글로벌화하는 과정에서 감안하는 세계경제의 가장 큰 위험 요소는 무엇입니까.

“테러리스트의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테러는 인명 피해를 낳을 뿐 아니라 큰 경제적 손실을 낳기도 합니다. 현재 미국에서는 경찰, 군대뿐 아니라, 기업에서도 테러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CME그룹을 비롯한 금융업계에서도 사이버 테러리즘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⑦강한 정치력

더피 회장은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워싱턴 정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대선 후보로 공개 지지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건 8년 전입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이지요. 이후로 저는 누구도 지지한 적이 없습니다.”

―현재 미국 대선을 어떻게 보십니까.

“버니 샌더스 후보는 자기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미국에서 사회주의는 절대 성공한 적도 없고 성공할 수도 없습니다. 이건 성경 같은 것입니다. 물론 공짜를 외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런데 돈이 고갈되고 나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이런 마인드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막는다고 생각합니다.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샌더스 후보의 정책으로 예전보다 진보적 성향이 강해진 것 같습니다. 이는 그의 본래 모습과 사뭇 다릅니다. 도널드 트럼프와 테드 크루즈 후보는 미국이 그동안 들어보지 못한 극단적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인뿐만 아니라 세계도 대통령 선거에서 지금과 같은 후보들을 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유일하게 덕을 보는 곳은 TV뿐입니다. 저는 어느 당에서 대통령이 나오든지, 대통령이 매우 훌륭한 각료들을 내세워 그들의 도움으로 미국을 잘 이끌어 나가길 바랍니다.”

―제가 더피 회장을 인터뷰한다고 하니, 많은 시카고의 유력 인사가 정계 진출은 언제 할 건지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하하. 주변에서 그런 제안이 많이 들어오긴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열세 살짜리 사내 쌍둥이와 사랑하는 아내와 보내는 생활이 너무 행복합니다. 자식들이 잘 자랄 때까지 앞으로 5년간은 CME그룹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CME 직원들과 주주들에게 어제보다 더 나은 기업을 남겨주고 떠나고 싶습니다.”

☞상품거래소

콩·옥수수 같은 곡물이나 구리·동 같은 금속, 원유 등 상품(commodity)을 전문적으로 거래하는 시장이다. 이런 상품들은 장기간 저장해야 하거나 대량으로 사고팔기 때문에 실물로 거래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은 거래 단위와 거래 가격, 거래 시점을 표준화한 후 상품거래소를 통해 상품을 사고판다.

☞선물거래소
선물(futures)은 파생상품의 한 종류다. 선물거래는 주식이나 채권, 통화, 원자재 등 다양한 기초 상품을 ‘미래의 일정 시점에 정해진 가격에 사고팔기로 약속하는 것’으로 선물거래소를 거쳐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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