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열심히 사는데 우린 왜 항상 죄책감에 시달릴까

입력 2015.07.04 03:08

'타임 푸어' 저자 브리지드 슐트가 말하는 시간강박 벗어나는법

'타임 푸어' 저자 브리지드 슐트가 말하는 시간강박 벗어나는법
플리커

우리나라의 10세 이상 국민 10명 중 8명은 '일상생활이 피곤하다'고 느끼며, 10명 중 6명은 '평소에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5년 전보다 일하는 시간, 책 읽는 시간, 공부하는 시간이 줄었는데도 그렇다. 지난달 29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4년 생활 시간 조사' 결과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란다"는 불만은 우리 사회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전 세계 현대인이 함께 겪는 현상이다. 미국 최대 언론사 가운데 하나인 워싱턴포스트의 기자 브리지드 슐트(Brigid Schulte·53·사진)의 삶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두 아이의 학교, 학원, 병원 진료를 챙기면서 복도에 쪼그리고 앉아 전화로 취재하고, 새벽 4시에 기사를 마감했다. 그런데도 그는 늘 죄책감에 시달렸다. '좋은 기자' '좋은 엄마'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는커녕 자다가도 해야 할 일이나 미처 못한 일들을 떠올리며 벌떡 일어나는 일상이 반복됐다.

"항상 한 번에 두 가지 이상 일을 처리하곤 했어요. 그중 훌륭하게 해내는 일은 하나도 없었죠. 하루 4~5시간밖에 못 자서 멍한 상태로, 최대한 빨리 달리지만, 아무 데도 도달하지 못하는 기분이었어요."

어느 날 슐트는 취재를 위해 만난 '시간 관리 전문가'에게 뜻밖의 진단을 받았다. 슐트와 같은 '워킹 맘'의 삶에는 무려 일주일에 30시간에 이르는 여가가 있지만 활용을 못 할 뿐이라는 이야기였다. 충격을 받은 그는 자신의 삶 속에서 사라진 '여가(leisure)'를 찾아 나섰다. 미국과 프랑스, 덴마크를 오가며 시간 활용 전문가, 뇌 과학자, 여가 전문가를 취재했다.

"바쁜 삶은 어느새 사람들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사회적 규범이 됐어요. 바쁘게 살고,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고, 온종일 분주하게 움직이면 그 사람은 성공한 걸로 보이죠. 뭔가 성취하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하지만 이렇게 쫓기는 삶, 정보 과잉의 삶은 눈앞의 일에 온전하게 집중하거나 몰입할 수 없도록 만듭니다. 시간에 쫓기는 사람은 무력해집니다. 방해받지 않는 시간, 평온한 삶의 비밀은 일과 사랑, 여가의 균형에 있어요. 그 균형은 개인이 노력해 찾는 것은 물론 조직과 사회, 문화적 차원에서 함께 지원해야 이룰 수 있습니다."

그 주장을 담은 책이 지난달 한국에 번역돼 나온 '타임 푸어'다. 작년 3월 미국에서는 'Over whelmed: Work, Love and Play When No One Has the Time'이란 제목으로 출간됐으며, 아마존이 뽑은 '이달 최고의 책'에 올랐다. 지난달 24일, 워싱턴포스트 본사 건너편의 한 커피숍에서 그와 만났다. 시간 강박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인지를 물었다.

개인의 노력: 자신을 우위에 둬라
더퀘스트 출판 제공

[개인의 노력: 자신을 우위에 둬라] 

①일하는 리듬을 찾아라

효율적으로 일하는 방법을 찾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심장에 박동이 있고 폐가 숨을 들이쉬고 내쉬듯, 뇌도 파도처럼 움직여요. 사람이 일할 때엔 '리듬'을 타야 합니다. 고도로 집중하는 시간이 있으면 휴식과 충전 시간이 필요하지요.

우리는 흔히 '1만 시간의 법칙'(전문가가 되려면 1만 시간을 투자하라)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플로리다 주립대 심리학자 앤더스 에릭슨은 최고의 음악가가 되는 데에 필요한 조건이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베를린 음악 학교에서 바이올린 전공 학생들을 관찰했습니다. 그 결과 최고의 학생들은 효율적으로 연습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집중적으로 연습했고, 한 번에 90분을 넘기지 않았으며, 4시간 이상 연습하는 경우가 드물었죠. 실력이 최상급인 학생은 오히려 낮잠도 오래 자고, 더 많이 쉬었습니다.

우리 뇌도 마찬가지입니다. 쉼 없는 연습, 쉼 없는 공부, 쉼 없는 노동은 우리 뇌의 리듬과 자연스러운 재편성 주기를 엉망으로 만듭니다. 두뇌를 충전하고 재가동하는 일을 반복해 리듬을 타야 집중력이 높아집니다. 휴식은 창의력을 높이는 데에 특히 도움이 되지요. 최고의 아이디어나 순간적 통찰은 열심히 일할 때가 아니라, 샤워할 때 떠오른다는 겁니다.

이런 '리듬 타기'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고, 일정한 시간에 집중해서 일합니다. 그 뒤엔 휴식합니다. 타이머를 일정한 간격으로 맞춰 놓고 쉬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나도 처음엔 45분간 일하는 것부터 시작했고, 이제는 90분 동안 일한 뒤 휴식하는 리듬을 맞추게 됐습니다.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 걱정거리는 떠오르는 순간 메모해두고 원래 내 일에 집중하지요. 내가 지금 연습하고 있는 것은 이메일에 무심해지는 겁니다. 특정 시간에 몰아서 이메일을 확인하고 그 시간에 바로 답장하는 것이죠. 아직은 연습이 더 필요한 부분입니다.

②우선순위를 정하고 소중한 것에 시간 투자

현대인에게 필요한 건 '시간 관리'라고 합니다. 그런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꿔야 합니다. 우리는 시간을 관리할 수 없어요. 일주일은 168시간이고, 앞으로도 영원히 168시간일 겁니다. 우리가 관리하는 건 그 시간 안에서 선택하는 활동뿐이죠. 그렇다면 내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을 위해 살며 어떤 것이 우선인지를 생각하는 게 첫째입니다.

어떤 일이 중요한지 찾았다면, 그 일에 투자할 시간을 조금씩 내보세요. 처음부터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일주일에 한 번, 30분씩 투자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내가 정말 내 삶에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부분에 시간을 투자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겁니다. 아주 작은 변화지만, 그날 하루를 돌아볼 때엔 엄청나게 다른 느낌이 될 겁니다.

그렇게 시간을 투자할 때에도 중요한 건 집중입니다. 고대 그리스인은 시간을 두 가지 단어로 표현했어요. 시계에 적힌 숫자로서의 시간은 크로노스(chronos)라는 단어로, '특별한 순간'을 말할 때엔 카이로스(kairos)라고 했지요. '카이로스'는 한정된 순간, 그 시간 속에서 우리가 어떤 것을 경험하느냐로 환산됩니다. 현대 신경과학자들은 순간의 일에 정신을 집중할 때 우리 뇌가 성장한다고 주장합니다. 뉴런의 새로운 연결이 많아지고, 명확한 결정을 내리는 데에 필요한 회백질도 증가한다는 겁니다. 뇌가 성장하면 '쫓기는 삶'에 휩쓸리지 않고 더 명료하게 기억하며 사고할 수 있습니다.

③'좋은 직원' '좋은 엄마' 콤플렉스를 버려라

나는 오랜 기간 '죄책감을 느끼는 엄마(guilty mother)'였습니다. 아이에게 제대로 시간을 쏟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내 월급이 가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컸고 일도 좋았기 때문에 그만둘 수도 없었어요. 완전히 덫에 빠진 느낌을 받았어요. 내가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습니다.

'몰입'의 중요성을 주장한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Csikszentmihalyi)가 2007년 발표한 시간 활용 연구에서는 남자들이 집에 있을 때 더 행복해하고, 여자들은 직장에 있을 때 더 행복해한다는 결과가 나왔지요. 여러 미디어가 "일하는 엄마가 아이를 떼어놓으면서 기뻐한다"고 몰아세웠습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다르죠. 부부가 집에 함께 있을 때, 보통 남편은 편히 쉬고 아내가 집안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습니다.

이 상태를 벗어나려면 죄책감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칙센트미하이의 연구에 따르면 여성은 어디에 있든, 무슨 일을 하든 머릿속으로 쉴 새 없이 아이들, 집안일, 잡다한 볼일을 생각하며 정신노동을 합니다. 그러고도 늘 아이와 함께 충분히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느끼죠. 하지만 최근 발표된 시간 활용 연구 결과를 보면 엄마들이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 그것도 양질의 시간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일하는 엄마는 가정에 신경을 못 쓴다'는 통념 때문에 압박에 시달리는 겁니다.

세계에서 가장 엄마들의 여가가 많다고 하는 덴마크에는 '휘게(hygge)'란 덴마크식 행복의 열쇠가 있습니다. 휘게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라'는 말입니다.

차 한잔 마실 때엔 진짜 차를 즐기고, 지금 가진 것을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생각하는 겁니다. 다른 사람을 앞세우거나 자신이 할 일을 자신보다 먼저 생각하지 마세요. 일할 때는 물론, 놀 때에는 순전히 놀이에만 집중하는 '몰입'의 순간이 필요합니다.

[회사의 노력: 직원에 '여유' 줘라]

①장시간 일하는 직원을 높게 평가하지 말라

나는 전통적인 직장 문화에서 요구하는 노동자 모습을 묘사하기 위해서 '이상적 노동자(Ideal Worker)'라는 용어를 씁니다. 이런 노동자의 생활은 일에 밀착돼 있죠. 밤 11시, 새벽 3시에도 수시로 이메일을 확인하고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야말로 이상적인 삶이에요. 이런 노동자를 원하는 조직은 사무실을 '일찍 떠나는' 직원을 참아내지 못하죠. 하지만 이런 직원이 정말 일을 잘할까요?

미국 노동통계국 자료를 보면 각 국가의 국내총생산(GDP)을 노동 시간으로 나눠 시간당 생산성을 계산한 것이 있습니다. 30일 유급 휴가를 가고 충분한 휴식을 보장하는 노르웨이의 생산성이 가장 높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노동시간 길기로 유명한 한국은 꼴찌네요. 미국인은 프랑스인이 게으르다고 조롱하지만 두 국가의 생산성은 큰 차이가 없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점심 먹으러 늘 카페로 나가고 휴가 땐 누가 뭐라든 사라져 버리지만, 일할 땐 바짝 조여 일합니다. 여가는 절대적으로 많은데 일단 일을 시작하면 철저하게 집중해요. 그리고 놀라운 생산성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밀레니얼세대(millennials·1980~95년에 태어나 2000년대에 성장기를 거친 세대로, 컴퓨터와 함께 자라나 정보통신에 익숙하며 소통·협력의 의사 결정을 중시한다)는 부모 세대처럼 '일에 미쳐 살기'를 원하지 않아요. 그리고 다양한 기술을 활용해 더 생산적이며 창의적인 업무 형태를 보여주죠. 이런 직원이 머무르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선 기업과 최고경영자(CEO)가 나서서 조직을 바꿔야 합니다. 사무실에 얼굴 비치는 시간을 측정하는 비생산적 문화를 뿌리 뽑고, 전 직원에게 탄력 근무를 허용하세요.

②명확한 임무를 주고 성과를 측정하라

기업들이 쉽사리 직원의 탄력 근무를 허용하지 못하는 건 성과를 측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에요. 야후의 마리사 메이어 CEO는 취임 직후 "원격 근무 제도가 엉망이 됐다"며 이를 금지했지요. 그건 아무도 명확하게 직원의 성과를 측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회사는 직원이 해야 할 임무를 명확하게 정의하고 지시하는 것은 물론 성과를 명확하게 평가할 기준까지 갖추고 있어야 하지요.

워싱턴 DC에 있는 혁신적 로펌 클리어스파이어를 예로 들어 볼까요. 이 로펌에서 특정한 프로젝트를 맡는 변호사는 각자 자기 업무를 끝내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계산해 회사에 보고합니다. 로펌은 그 시간을 기준으로 비용을 산정해 고객에게 견적을 보여줍니다. 만약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업무가 바뀌거나 할 일이 늘어나면, 실시간으로 시간과 비용을 다시 계산해서 고객에게도 보여줍니다. 만약 일이 예상보다 빨리 끝나면 절감된 비용을 3등분해 변호사와 회사, 고객이 나눠 갖습니다.

③모든 직원의 삶과 시간은 소중하다

젊은 남성 위주로 돌아가는 실리콘밸리는 '이상적 노동자'의 기준을 초인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실리콘밸리의 기업 문화는 거의 '가족을 돌봐야 하는 사람은 입사 지원도 하지 말라'는 식이 됐지요. 하지만 직원에게도 생활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직장에서 일하면, 개인의 삶은 물론 건강도 악화합니다. 미국 국립보건원이 연구한 결과, 이런 직장에서 일하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급증해 면역체계가 손상됩니다. 또 다른 연구 결과가 있어요. 미 국립보건원은 전자제품 소매업체 베스트바이의 'ROWE(result only work environment·결과물만 내면 되는 환경)' 프로그램을 살펴봤어요. 직원들이 제시간에 좋은 결과물만 제출하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하는지는 개인에게 맡기는 겁니다. 그 결과 이 프로그램 적용을 받는 직원이 일반 직원보다 더 건강한 데다 회사에 대한 충성도 역시 더 높았습니다.

조직의 변화를 이끄는 건 개인이 아닙니다. 관리자야말로 변화의 핵심입니다. CEO나 관리자가 조직 문화를 바꾸는 데에 어려움을 느낀다면, 관련 분야 전문가나 컨설턴트를 영입하세요. 충분히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니까요.

☞쫓기는 삶(Overwhelmed)

자신의 시간을 완전히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상태다. 슐트의 주장에 따르면 많은 현대인이 '초긴장 상태'로 살아간다. 매 시간, 분 단위로 해야 할 일 목록을 점검하고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해내며 바삐 움직인다. 그렇게 열심히 살고도 하루를 마무리할 때면 "할 일을 다 못 했다"고 좌절한다. 이런 상태에 빠지면 직장과 가정 양쪽에서 죄책감을 느낀다. 일터에서 해야 할 일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는 강박을 느끼고, 가정에서 아이들과 충분히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고 느낀다. 또 삶 속에선 자신을 위한 시간은 조금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상실감에 시달린다.

☞이상적 노동자(Ideal Worker)

산업혁명 초창기부터 형성된, 전통적인 직장 문화에서 요구하는 노동자의 모습을 표현한 말이다. 이상적 노동자는 집안일과 육아 대신 직장에만 온 마음을 쏟는다. 아침에 가장 먼저 출근하고 저녁엔 가장 늦게 퇴근한다. 출장 아닌 여행은 잘 가지 않으며, 여행을 가도 일거리를 가져간다. 회사 지시가 떨어지면 언제 어디로든 기꺼이 이동하며, 갑자기 급한 일을 처리하라는 지시를 받으면 밤을 꼬박 새운다. 슐트는 "약간 과장 섞어 설명했지만, 이런 '이상적 노동자'란 개념은 현대인의 노동 환경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며 "현대인은 '이상적 노동자'가 되지 못하면 괴로워한다"고 말한다.

관련기사를 더 보시려면,

中 주가 띄우기 10개월… 이제 시진핑 정부가 꺼낼 카드는 없다 윌리엄 페섹 블룸버그 칼럼니스트
리더가 빠지기 쉬운 3가지 덫
개인 힘들게하는 저금리… 더 큰 문제는 계속된다는 것 하워드 데이비스 프랑스 파리정치대학교 교수·前 영국금융감독청(FSA) 청장
미국 시장만 30억불… 혁신 이끄는 'Why not?'의 마술 에머리빌(미국)=윤형준 기자
리더라면…예산안 짜듯 인맥 계획표 짜라 윤형준 기자

놓치면 안되는 기사

팝업 닫기

WEEKLY BIZ 추천기사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